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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Feb 13. 2021

카라멜 세상, 머스타드색 사랑

2016년 5월


  5월의 캠퍼스는 캬라멜을 질겅이는 사람의 입 속처럼 달큰하고 끈적한 공기로 가득했다. 분수대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햇살 속에 잠겨서 눈을 반만 뜬채로 꿈꾸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수대 앞에, 모자를 쓰고 청자켓을 입은 H가 서 있었다.


  그날은 H와 모네의 그림을 보기 위해 전시장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리고 사적으로 엮일 일이 없는 H와 내가 사적인 장소에 함께 가는 세 번째 날이었다. 나는 그때 진심에서 우러 나오는 웃음도 어색하게 지을 수 있단 걸 깨달았다. 베실베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누르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느라 얼굴 근육이 이상하게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H의 왼쪽 손을 맞잡은 내 오른쪽 손에 땀이 너무 많이 날까봐 걱정하면서, 우리의 걸음소리가 같아질 때마다 속으로 숫자를 새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버스 안은 투명한 겨자색에 가까운 햇살이 길쭉한 창문 모양으로 들어찼고 나는 명치 언저리에 알록달록한 캔디가 우글거리는 기분으로 좌석에 앉았다. 윗배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들어찬 것 같이 묘하게 거북하면서도 목 뒤에서 넘어오는 단내 때문에 침이 바싹 바싹 말랐다. 뒤쪽에 마련된 2인용 좌석엔 자리가 없었기에 우리는 1인용 좌석에 앞뒤로 앉아 있었다. 나는 뒷자석에 앉은 것을 후회했다. H의 뒤통수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잔털 하나 없이 가지런한 뒤통수를 보면 볼수록 명치는 더욱 아파졌다. 오후의 버스는 노란 햇살 속을 게으르게 나아갔고 H의 뒷통수가 좌우로 느리게 흔들렸다. 나는 온몸이 경직된 채로 눈만 꿈뻑이면서 앞쪽에서 흘러 나오는 H의 섬유유연제 향을 맡으며 생각했다. 쟤네 집은 사탕을 녹인 물로 빨래를 하나.


  지금도 겨울이 끝난 초봄의 공기가 볼에 맞닿아올 때면 노랗게 흔들리던 그 버스 안을 생각한다. 지금은 더 이상 명치같은 건 아프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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