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아들키우기

EP.2 B형 2호

by Esther Cho

자~

이제부터는 한지붕 두 종족이 사는 얘길 시작해보려고 한다.


나는 우리집 동거남들을 , B형종족 1,2,3호라고 부른다.


나는,

단순 무식 지랄같은 (솔직히,지랄이라는 표현은 나한테는 굳이 적용하고싶진 않지만..통계에 충실하기로 함),단무지 O형이고,


남편--오이지 B형 1호.

장남--오이지 B형 2호.

차남--오이지 B형 3호.


(※주석/오지랖 넓고. 이기적이고. 지랄맞음)


첫째.

2001년생. 뱀띠.

(당연히 B형)

5월의 어느날 아침 7시30분쯤 양수가 터졌고,

미리 사전공부를 너무 철저히 한 나와,

당황해서 방과,화장실과,또 방만 왔다갔다하는 B형1호를 얼르고 달래가며 짐을 싸고 병원으로 출발~~

내가 누워있던 분만실 침대 정면의 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진통을 겪던 나는,

내가,

예수님과 똑같이--아침9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오후3시에 운명하심--6시간을 고통에 몸부림치고있다는걸 깨닫고,

그야말로 이를 쳐악물고 버팀~


정말로...정각 오후3시에 태어남~


울지않음....ㅜㅜ


탯줄 자른 남편이 움..

입안에 이물질 제거후, 폐로 호흡하는걸 확인하신 의사선생님,


애가 별로 울고싶지 않은가봐요~

숨 잘~쉬고 있으니 걱정마시고, 산모님 먹고싶은거 많이 드시고 회복 잘 하셔서 과.묵.한. 애기랑 얼른 집에 가십시다~~


라고하심.


자연분만했으니 이틀후 퇴원.


산후조리원에 입소--

이틀만에 요로감염으로 신생아 집중치료실 입원.


조리원에서 하도 맨날 펑펑 우는 날 부르신 조리원 원장님--다른 산모한테 산후우울증 전염(?)될수 있다는걸 우려해서, 조리원비 돌려줄테니 집에가서 조리하라고 함...


우리의 과묵한 신생아 B형2호는,

인큐베이터에서 한달하고 보름 더 살다가,

배꼽도 다 떨어지고, 신생아가 아닌 (많이 자란) 상태로 퇴원.


초유.모유.분유...모두...굶어죽지않을만큼씩만 먹음..

(실제로 한번에 먹는양이 20ml~60ml가 최대였음--육아일기 일지에 기록보유.참고로 당시 한번에 100~130ml를 먹는게 정상임.)


잘 안먹으니, 살이 찌지도않고,당연히 모든 발달상황과 키.몸무게가 평균보다 많이 뒤쳐짐.

(당연히, 돌잔치하는날 못걸어서 유모차에서 잠만 잠-)


생후14개월--2002년 6월.월드컵당시,

가족들이 축구게임을 보며 흥분하며 소리지르는걸듣고, 놀라서 나한테로 걸어와서 안김~

걸.어.와.서-

첫 걸음마..임..14개월만에.


약 두달후,

생후16개월...소아 영양실조로 또 입원.


진짜...징글징글 할 정도로 안먹어서...이유식그릇,밥그릇 집어던지면서 울기도 많이 움.(물론,나만...이 놈은 그 와중에 울지도않음..요즘같았음 싸이코패스--공감능력 현저히 결여-검사 받았을듯.)


4세.

말을..안함.

별로 안함.

정말 필요한 말만 함--물.맘마.까까.빠방(최애 장난감)...등.


유치원이며 초등학교를 어찌보낼까싶은 마음에, 놀이유치원과 대안학교를 위주로 알아보러다님.


대인관계에 있어선 딱히 문제점은 없어보임.


(유치원을 정상적(?)으로 졸업하고 초등학교도 멀쩡히(?)잘 다님.)


7세.

초등학교 입학해서

혹,사회성에 도움이 되지않을까싶어서,

집근처 문화센터에서 바이올린을 등록하고 가르쳐봄.

3개월간 데리고 다니며 슬쩍슬쩍 엿본 결과,

무난히 잘 따라하는거 같음.


문화센터 바이올린선생님을 집으로 모셔서 밀착 개인지도를 받기시작함.

(당시로는 흔치않았던 남자선생님이셨음)


그 남자 바욜샘도 수업 이외에는 쓸데없는 사담은 지겹게 안하는 스타일이었음.

수업을 한지 1년후 어느날 수업 끝나고 방에서 나온 바욜샘,

어머니~저, ○○이가 제대로 말하는 목소리 1년만에 오늘 처음들어봐요~


ㅠㅠ



자--;

여기까지가 첫째아이의 바이올린 입문 과정이다~~


첫아이가 아들이었든, 딸이었든,

로망하던 악기인 바이올린을 당연히 시키지않았겠는가 말이다....


그 옛날...나의 로망이었던...

바이올린을 말이다.


운동과 음악은 무슨일이 있어도 꼭 시켜야한다는...울 엄니한테 물려받은 사명감으로 시작했던 운동은,

남들 다 보내는 태권도학원이 아닌 발레학원을 등록시켰고,(발레를 시키게 된 이유와 과정은 나중에 따로 적기로.)


음악은...음...그마저도 피아노학원을 등록시켰어야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던 그때당시에,나는 당연히 바이올린을 선택했다.


왜 안그랬겠는가.

나의 로망이었는데.


그리고,

나중에야 깨달은거지만,


나도,

첫 아이의 바이올린을 미리 사주었고,

키와 팔이 자랄걸 감안해서 그 다음,그 다음 사이즈의 바이올린까지 미리 구입해두는 치밀함을 보였던것이다.


우리엄마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말이다...


좌우지당간에...


뱀띠인 장남-B형2호의 바이올린 영접기는

이렇게 운명적인 남자선생님과 만 3년을 함께하고,

선생님이 늦은 유학을 가시는 바람에,

다른 선생님(그 분도 남자샘~)과 1년...

그러나,

새 바욜샘과는

잘 안맞는듯하여 1년을 쉬고있는중에,

악기 고치러 악기점에 갔다가,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2년만에 귀국하신 첫 바이올린 선생님과 우연히 마주쳐서

다시 운명(?)적인 바이올린수업을 받게

되었다.


엄마인 나조차도 몰랐던...과묵한 사춘기를 이제 막 시작하려던,

초등학교 6학년 장남 B형2호의

두번째 바이올린 영접스토리는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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