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습작... 그리고 다짐
"봄"
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길가 옆 개나리 꽃이 피어나는 길목을 연인끼리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생각나고 가끔은 소싯적 하교 길 풍경 들이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손에 들린 비닐봉지 안 내용물이 궁금했던 그 시절에는 따스한 봄 햇살이 당연하게만 느껴졌다.
내 위치가 어디인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그 시절.
체육시간이 있는 요일에는 하얀 체육복과 신발주머니를 들고 바쁜 걸음으로 회사로 출근하는 아저씨들과 함께 섞여 육교를 건너면서 나에게 아저씨 세상은 먼 나라처럼 느껴졌었다.
무지개 색깔이 칠해진 원형 모양의 이름표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짙은 색깔로 교체되었고 나름 우쭐해진 기분으로 옷핀을 만지작 거리기도 했다.
학교 정문 앞.
(병아리와 학습지)
봄이 오면 어김없이 정문 앞에 삐악 거리는 소리들로 흥분되었고 용돈이 없어 "아저씨 내일 또 와요?"라고
물어보고 집에 오자마자 엄마한테 병아리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다음 날 1마리는 외로울 것 같아 2마리를 사고 3일 후 묻어야만 했었던 기억들이 새 곤새 곤 살아나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험기간에는 정문 앞에 학습지 아저씨들이 팸플릿을 나눠주고 "시험문제는 여기서 다 나온다"라고
했던 말에 흥분되기도 했다.
그것보단 빨리 집에 가서 놀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하교와 퇴근시간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아직까지 또렷이 기억나는 게 있는데 어느 날 엄마가 노란색 스포츠카 장난감을 형한테만 사주었다.
나는 너무 실망스러워서 떼를 쓰면서 나도 가지고 놀고 싶었지만 형은 결단코 내 손에 쥐어주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다음날 똑같은 모형의 주황색 스포츠카를 사주셨을 때 세상을 품에 안은 듯 기뻐했던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아빠는 항상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 그래도 일찍 귀가하시는 편이었는데 내 기억 속에는 형 하고만 놀았던 것 같다.
거의 2일에 1번 꼴로 나를 불러서 손과 발, 그리고 어깨를 밟으라고 하셨고 난 있는 힘껏 지압했다.
선물을 위해서 칭찬을 듣기 위해서.
아빠는 그때마다 흐뭇한 미소와 함께 시원하다는 말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동시에 봄이라는 계절처럼 설렌다.
"다짐"
지금은 자녀들이 바라보고 있고 느끼고 있는 세상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시절 내 기억 속에 아빠가 했었던 행동(일명:직통 밟아드리기)을 무의식적으로 자녀에게 요청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싸우는 남매의 모습에서 나와 형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정문 앞 병아리도 신발주머니도 그리고 원형모형의 학년 배지도 없지만 (현실이라는 거인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파란 하늘과 개나리 꽃, 장난감에 대한 소유욕은 여전히 초등학교 시절의 나와 같은 느낌일 것이다.
그 무엇보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봄에 대한 설렘은 가슴 한 구석에서 여전히 샘솟고 있다.
자녀들이 커서 내 나이가 됐을 때 자신의 유아시절에 대한 생각은 지금 내가 만들어가야 할 가장 위대한 숙제가 되어 내 앞에 놓여있다.
무엇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 줄 것인지?
그리고 소중한 선물을 주기 위해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본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잠시 멍하니 바라본 창 밖 세상의 상념은 상사가 호명하는 순간 현실로 되돌아 온다.
마치 숙면을 취한 나 자신을 확인한 후 잠시 영혼의 시간여행을 떠났다가 급하게 울리는 새벽 출근을 위한 기상 알람 소리에 급히 눈을 뜨듯이.
다시 다짐해본다.
지금처럼 순수한 마음이 유지될 수 있도록
넓은 세계를 보면서 상상할 수 없는 꿈을 꿀 수 있도록
어려운 이웃과 기회가 없는 이들에게 차고 흘러 넘 칠 수 있게 베풀어 줄 수 있도록
그 무엇보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할 수 있도록
아빠가 해 낼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