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곳

by 또딱로드

"어휴. 머리 가운데가 하얗네."

"오늘 집에 가서 염색꼭 하세요. 바로 하면 두피 안좋으니까 저녁때 하세요."


내 머리를 자르기 전에 미용실 디자이너 분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5년전만해도 이렇게 말씀하시진 않았다. 하지만 이젠 미용실 갈때마다 당골멘트로 듣는다. 강도도 세진다. "염색하실때가 되었네요."란 말은 이제 "염색 꼭 하세요."로 바뀌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 여러 징표들이 곳곳에 내 생활속에 등장한다. 그 중에 하나가 흰머리 군집이다. 한때는 과감하게 미용실에서 염색과 커트를 했다. 하지만 머리한번 하는데 드는 비용이 집에서 하는 염색비용을 크게 상회하는 것은 더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미용사도 처음엔 "염색은 안하세요?"라고 넌지시 물었다. 하지만 이젠 염색을 미용실에서 안하는 걸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내 주변에 정년퇴임한 분들은 염색이 지겹다고들 하셨다. 내 직장선배분도 퇴임하면서 한 말이 이제 염색을 안해도 되서 좋다는 말씀이다. 내가 한살이라도 이 일에 적합하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난 아직도 어느정도의 젊음과 기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척도를 보이기위해. 흰머리가 노쇄의 상징이며, 쇠락의 징표임을 알고 이를 최대한 늦추고자 하는 맘에서. 일터에서의 중년으로 접어드는 분들은 염색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의 한두달에 한번의 염색은 세치가 수북한 나 자신과 만나는 순간이다. 내 노쇠함의 증거를 다시한번 만나는 씁쓸함의 현장이다.


염색의 번거로움을 언급조차 할수 없을 때가 있다. 머리숱이 사라지고 있거나 별로 없는 분들이다. 그 분앞에서 이 말을 하는 순간, 어느 분은 웃으시면서, 어느분은 약간의 역정을 내시며 말씀하신다. "없는 것보다 낫지 이사람아."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있을 때 잘 관리해." 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응답을 들을때면 난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바로 다물어버린다. 주변에 있는 분들도 그런 얘기를 왜 굳이 했느냐는 은근한 비판어린 시선을 나에게 보낸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선호하는 정당 다음으로 안하니만 못한 예기가 머리카락 예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다이소에서 산 5000원에 3개 들은 염색약을 뜯는다. 1번 2번 약제를 고이 섞어서 머리에 바르고 바른다. 좀더 온전해 보이는 내가 되기 위해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내가 만약 더 나이들면 염색을 해야될까 말아야할까를 고민한다. 염색이 골고루 잘된 후 한층더 젊어뵈는 내 자신을 마주하면, 그래도 하긴 해야 겠지?라는 생각을 더 굳게 가진다. 조지 클루니도 염색을 더이상 안하기 전까지 염색할까 말까를 고민했을것이다. 하지만 난 그가 아니기에 언젠간 더 깊은 고민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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