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영화에세이

사랑에 의욕이 없다. 모두가 사랑이야기를 할 때도 나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럴싸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도 나는 그와 엮이고 싶지 않다. 알려주고 싶지 않으니,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그 누구에게도 나의 마음을 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잘 보이기 위해 예쁜 옷을 사입을 필요도, 화장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조금은 무력하게 살아갈 뿐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 그저 마음이 닳고 닳아, 더 무감각해졌으면 좋겠다. 너를 봐도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디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사랑은 간사하다. 외롭다고 소리칠 때는 사랑을 가장한 상처를 가져다주고, 혼자이고 싶을 땐 손을 내민다. 더이상 사랑을 할 여력이 없을 때, 남아있는 마음이 없을 때 불쑥 찾아온다. 예의없이, 버릇없이, 지독히 따뜻하게. 한 때는 사랑을 위해 대신 죽을 수도 있었는데, 이젠 내 앞에 나타난 그가 사랑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내게는 남아있는 이름도, 남아있는 사랑도 없다. 안개 낀 마음에는 빛이 들지 않는다. 그런 내게서 그는 햇살을 보았다고 한다. 이상한 사람, 때로는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위로가 되기도 한다. 모두가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볼 때, 그는 늦가을에 피어나는 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