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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Oct 03. 2016

<이터널 선샤인>

영화에세이

내 기억 속에서 너를 숨기고 싶다. 나만 화나는 게 억울하고, 나만 못 잊는 게 억울하다. 내게 상처를 준 너를 더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완전히 지우려고 한다. 너는 내 인생의 수많은 기억 중에 하나일 뿐, 네가 지워진다고 달라질 건 없다. 더이상 매일을 속상해하고 답답해하며 술에 취해 너를 그리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나를 완벽하게 망칠 수 없고, 나는 너를 지우고 인생을 새로 쓸 것이다. 네 기억이 꿈결처럼 사라지고, 다음날 눈을 떴을 때 네가 지워져있기를 바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같은 아침을 맞으며, 이젠 그만 네게서 깨어나고 싶다.


네가 공백이 되버린 내 마음은 공허하다. 새벽에 야식을 먹고 계속 냉장고를 뒤적거려도 속이 채워지지가 않는다. 전에는 두서없이 공기 중에 떠도는 네 생각들 때문에 안먹어도 배가 불렀는데, 속이 텅 비어버렸다.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았다. 너를 미친듯이 원망하지만, 기억을 되짚어보면 웃고 있는 내가 더 많았다. 어딜가도 네 흔적이 있고, 네가 없는 곳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티없는 마음의 햇살처럼 포근하게 스며든 너를 기억하는 게, 그나마 네게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기억 속 당신을 나열해본다. 무수한 네가, 내 기억 속에서 언제나 밝고 선명하게 비춰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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