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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Oct 09. 2016

<봄날은 간다>

영화에세이

사랑하는 사람에겐 뭐든지 다 해주고 싶다. 보고싶다는 말 한마디에 먼 거리를 달려가고, 당신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늘 먼저 연락하곤 했다. 라면을 끓여주던 당신과 김치를 가져오는 나는 환상의 조합인 줄 알았지만, 라면은 아쉬울 게 없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다. 김치없이도 라면은 먹을 수 있지만, 라면없이 김치만 먹을 수는 없었다. 나를 위해 고기를 사오시는 부모님과 달리 내게 라면만 주는 성의 없는 네게 그마저도 고맙다며 고기 대신 라면만 찾던 나였다. 더 사랑하기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나는 반찬이었고 메인은 너였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너는 헤어지자고 말한다. 함께 바람부는 소리, 파도 소리, 비 내리는 소리, 눈 내리는 소리까지 다 들었는데 우리는 이제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 네가 바라보는 곳은 현재인데 나만 들떠서 저만치 앞서갔다. 마치 당신은 사랑에 성숙하고, 나는 사랑을 모른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싫다. 네게 사랑은 성숙한게 아니라 이기적인 거였다. 내 마음에 그토록 셀 수 없이 많은 스크래치를 긁어 놓은 네게, 나는 단 하나의 모진 말도 내뱉지 못한다. 흘러가는 계절을 나는 소리없이 보내주려 한다. 다시 봄이 찾아온다 해도 요란하게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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