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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Oct 26. 2016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영화에세이

잘 잊는 사람이 있고, 잘 못 잊는 사람이 있다. 잘 잊는 사람은 자신의 실수도 그리고 남에게 준 상처도 금세 잊는다. 때문에 망각하는 사람은 편하다. 마음 다쳐도 약한 사람이 힘들고, 모든 걸 기억하는 사람이 아플 뿐이다. 많은 걸 기억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게 아니다. 기억이 오래 머무를수록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좋은 기억이면 그때를 회상하며 지금을 한탄하고, 나쁜 기억이면 그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다. 잘 잊는 사람이 못 잊는 사람에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때문에 후자는 온종일 고민한다. 함께 시작하고 함께 죽을 수 없듯, 함께 기억하고 함께 잊을 수 없다. 이별 앞에서 아픈 쪽은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기억하는 사람이다.


모든 걸 잊어도 당신만큼은 꼭 기억하고 싶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 새겨도 나는 지우개처럼 당신을 점점 지워간다. 기억을 떠나는 사람은 슬프지 않다. 기억이 남겨질 사람이 걱정되어 미안할 뿐이다. 아직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많은데 당신의 고마움을 다 잊어버리고, 당신을 보고도 내가 준 상처들을 떠올리지 못할까 봐 그게 미안하다. 우리가 함께 나눈 대화, 사랑했던 기억들 모두 다 내가 먼저 잊어버릴 것이다. 당신이 어렵사리 해준 얘기들도 기억하지 못하고, 나는 물어봤던 걸 또 물어볼 것이다. 많이 사랑한 만큼 많이 기억할 수 있는 게 아녔다. 이번만큼은 내가 당신을 잊어버리기 전에, 당신이 먼저 나를 잊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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