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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Nov 06. 2016

<클래식>

영화에세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어느 지나간 사랑이 쌓여있다. 낡아서 바래지고 흐릿해진 글자지만, 나는 모든 문장을 기억하고 있다. 편지를 쓸 때 꾹꾹 눌러쓴 당신의 마음, 나를 떠올렸던 시간, 더불어 그 시절만의 엽서와 냄새까지도 모두 봉투 속에 담겨 있다. 지금의 전화와 문자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클래식한 감성이 그 시절의 편지에는 가득했다. 답장을 받으려면 며칠씩 기다려야 했고, 기다리는 동안에는 병이 날 것처럼 애가 탔다. 활자로만 전하기에는 마음이 넘쳐나서, 비를 맞으며 자주 당신을 덜어냈다. 하얀 편지봉투 하나 받아들면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당신의 필체를 보고는 읽기도 전에 덜컥 설레기부터 했다.


편지 대신 전화가 생겼고, 흑백사진 대신 컬러가 나왔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곳에도 첫눈이 내리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아는 것쯤은 이젠 어렵지 않다. 보고 싶으면 목소리를 들으면 되고, 잃어버리면 새로 사면 그만이다. 쉽게 감정이 오가고 쉽게 사랑할 수 있으나 그토록 애틋하지가 않다. 비가 오면 함께 우산을 쓸 수는 있으나, 우산을 버리고 함께 비를 맞는 낭만은 없다. 짧고 간단하게 자주 문자할 수는 있으나, 편지처럼 길게 고민하며 쓰지는 않는다. 덜 섬세하고, 덜 애절하고, 덜 소중하다. 비록 지금은 멈춰버린 사랑의 기록이지만, 편지를 열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로맨스영화가 펼쳐진다. 편지는 사랑을 영원히 보관할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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