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귀영화) 2.3 - 나는 누구인가
지옥문이 열렸는데, 이 지옥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려니… 다시 지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눈앞이 캄캄하구먼. 너무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고(지금까지는 안 그랬냐만은) 그보다도... 너무 내 지인들의 이야기다 보니 어디부터 어떻게 익명으로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또 혹시나, 만에 하나, (어쨌든 이 글은 비밀 일기장이 아니다 보니) 이 글을 지인들이 발견하게 돼서 읽게 된다면...? 하는 걱정도 된다.
여러모로 약간 부담스럽다 보니 이전 글, 1막이 계속 늘어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왜냐면 그동안 조금씩 써서 저장해 놨던 글들은 다 올려버렸고.. 이제 당장 내일 글을 올려야 하기 때문! 하하하. 부지런히 써서 저장해 놓으려 했는데… 이렇게 돼 버리다니. 하지만 나는 사실 데드라인을놓고똥줄타며벼락치기하기 전문가인지라 (자랑이다) 그냥 아무렇게나 써보려 한다. 아무렇게나. 혹시 제 맘대로 위조한 제 기억의 기록 때문에 저를 고소하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그전에 부디 저에게 전화를 한통만 해주십서…. 저는 늘 그렇듯 전화를 받지 않을 예정이고 카톡도 안 읽을 거고 도망갈 거지롱 훌랄라훌랄라~
한국영화 아카데미라는 지옥에서의 1년은 구구절절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이 이야기할 것이 많아 책 한 권이 나올지도 모른다. 몇 꼭지의 글이 나올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 첫 번째를 시작하겠다.
(1) 나는 누구인가.
일단 내가 입학했던 해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게도 조금 특수했던 한 해였다. 왜냐면 아카데미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하는 특수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아카데미는 1984년 남산의 영화진흥공사 내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 후로 1995년 홍릉으로 이사를 갔고, 2001년 서울 서교동으로 이사를 해서 쭉 거기서 있어왔다. 그러다 나를 포함한 35기 학생들이 입학을 하는 2018년, 부산으로의 이사가 (정말로) 결정된 것이다. 우리 기수는 입학은 서교동에서 했고 아카데미의 꽃이라는 부츠캠프까지도 홍대에서 했다. 그 후 1학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부산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고, 학교에서 기숙사를 제공한다 어쩐다 하다가 아직 준비된 것들이 없어서 학생들이 자취방을 직접 구해서 내려가야만 했다.
학생들 입장에선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홍대에 있을 때는 어찌 됐든 서울이니 괜찮았는데 부산은 다들 너무 갑작스럽고 생뚱맞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였기 때문이다. 특히 동기들은 ‘인프라가 없다'는 말을 하며 부산에 가게 되면 촬영할 때 도움 받을 친구들도 없고 렌탈샵도 서울만큼 없고 어쩌고 하면서 불만을 표했다. 동기들 중에는 영화과를 나온 친구들도 있었고, 그동안 어쨌든 서울에서 영화를 해 오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놔두고 멀고 먼(정말 먼가?) 부산으로 가는 게 충분히 걱정됐을 것 같다. 또 배우들도 대부분 서울에 있고, 오디션을 보기 위해 부산까지 내려오라 하는 것도 문제고, 뿐만 아니라 배우나 스텝들이 촬영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다면 교통비와 그에 맞는 숙소도 제공해줘야 하고... 사실 서교동 시절과 비교해 보면 변화하게 되는 것들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얘기들을 듣다 보니 나도 제작비가 올라가면 어쩌나, 배우들을 서울에서 부르는 게 가능할까 등등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고민하는 동기들 사이에서 음~~ 하면서 같이 고민하는 척만 했다. 사실 배우들이나 제작비 고민은 언제, 어디에서든 하는 것이고... 그 외에 나는 애초에 가진 인프라 따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하! 내가 서울에서 영화를 찍든, 부산에서 찍든,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건 어디든 똑같은 상황인데 이것이 이렇게 장점이 될 줄이야~ (사실 이게 장점인지, 좌절해야 할 포인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때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무언가를 무작정 해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부산은 (별 이유도 없이) 내가 1-2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고 그동안 얘기해 왔던 도시기도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사도 여행도 많이 다녀서 그런지 낯선 곳에 사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새로운 환경은 늘 두근거리고 즐거웠다. 그래서 아카데미가 옮긴다니 그냥 좋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울에 언니 집이 있으니 캐리어만 대충 챙겨서 부산에 1년간 살다 와야지 하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었던 덕분도 있다. (언니찬스, 가족찬스, 막내찬스는 끝이 없구먼)
여튼 입학하기도 전부터 아카데미는 이런 조금 특수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동기들이 이사 문제로 걱정을 하자 한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원래 아카데미가 이사할 때, 상황이 불안정할 때, 그 기수가 잘 되는겨~ 그럴 때 봉준호가 나오고, 최동훈이, 조성희가 나오는 거여~”
응....? 이게 뭔... 멍멍이 소리...(이하생략) 그러면서 덧붙이신 말씀은 홍대에 있을 때는 다들 수업만 하고 뽈뽈이 흩어져버리고, 촬영도 자기 원래 동료들이랑 하는 경우들도 많고 그러는데 이제 부산으로 가게 되면 아는 사람도 없어 너희 동기들끼리 더 뭉치게 되니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교수님의 우리 기수가 잘 될거라는 말은 여전히 멍멍... 아니, 잘 모르겠지만(^^) 그 이후에 덧붙이신 말은 정말로 맞았다. 이사라는 문제 때문에 학기 시작도 전부터 동기들이 뭉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각자 이사를 가기도 했지만 같이 방을 구하기도 하고, 동기들끼리 용달차를 불러서 서울서 짐들을 싣고 함께 내려가기도 하고, 이사를 서로 도와주고 하면서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그렇게 시작부터 뭉쳐가며 이사를 마쳤고, 막 지은 아카데미 건물에 막 들어온 책상과 의자들 포장을 뜯어가며 1분기 수업 시작을 기다렸다. 그러나 우리 기수에게 또 다른 큰 난관이 들이닥쳤다. 이제 이사까지 다 마쳤으니 수업이 시작돼야 했는데 갑자기 어떤 사건이 터지며 아카데미 교수진 (거의) 전체가 싹 바뀌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구체적인 설명은 아는 것이 없어 삼간다).
여튼 그래서 원장님부터 시작해서 면접 때 우리 동기들을 뽑았던 교수진들이 와르르 바뀌고, 그나마 남아있는 교수님조차 징계를 먹게 되고, 그러면서 부산으로 오자마자 시작해야 할 수업이 공중분해 돼버렸다. 이사까지 마쳤는데, 모두 갑자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교수님이 징계를 먹었으니 수업은 어렵지만, 외부 강사 수업은 진행 가능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외부 강사 수업을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외부 강사 수업은 정성일 평론가님의 수업이었다. 아,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업이었는지! 예전부터 아카데미의 정성일 평론가님 수업은 엄청난 수업 퀄리티에 모두가 너무나 좋아하는데, 극악무도한 글쓰기 과제와 학생들을 교실에서 쫓아내기도 하는 무시무시한 평론가님의 냉혹한 모습 때문에 모두가 극도로 싫어하는 악명 높은 수업으로 소문 나 있었다. 선배들에게 이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었어서 나는 이 수업이야말로 아카데미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 수업만 일단 먼저 시작된다고?
그 소식에 우리 기수는 연출과, 피디과, 촬영과, 애니과 전체가 모였다. 광안리 해수욕장 바로 앞 커피숍의 널찍한 테이블이 가득 차고도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몇 시간에 걸쳐 토론을 한 끝에, 우리 기수는 수업 거부를 하기로 했다. 이사와 갑작스러운 내부 사건들로 인해 줄어들어버린 시간과 그에 따른 4분기 커리큘럼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딸랑 외부 강사 수업만 시작해 버리기보다는 다시 전체적으로 커리큘럼도 재정비가 되면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우리 나름의) 판단이었다.
다행히 아카데미는 우리 학생들의 의견을 잘 받아들여주었고 우리에게는 한 달가량의 붕 뜬 시간이 생겼다. 당시에는 이런 모든 과정들이 당황스럽고 우린 망했다 싶은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후 우리는 (아마도) 모두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를 갈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1년간 영화 잘 찍을 궁리만 하고, 오롯이 영화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이건 엄청난 특권이다. 심지어 국민들의 소중한 세금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니 그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며 영화에 매진해라"라는 말을 뽑힌 순간부터 주야장천 들었기 때문도 있다. 어쨌든 그래서 다들 영화를 찍기 위해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간이 이렇게 생겨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정신을 더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다는 말은, 우리가 들을 1년 커리큘럼 전체 중 한 달이 사라지는 것이니 나중에 만들 졸업 작품(단편)을 준비할 시간이 적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붕 떠버린 한 달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 하고, 졸업 작품 시나리오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다 같이 영화를 공부하면서 으쌰으쌰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연출과는 이상한 빨간 의자가 있는 커피샵에 모여 어떤 방식으로 스터디를 할 것인지 의논을 열심히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다 무슨 영화가 개봉했는데 재밌다는 얘기가 나오면 다 같이 갑자기 영화의 전당에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 그리고 특히 열심히 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술 마시기였다.
매일.
...
정말로 매일…^^
아카데미는 술 잘 마시는 걸로 사람을 뽑나… 아니면 영화인은 다들 술을 잘 마셔야 하나… (사실 이 모든 게 다 아니고, 내가 술을 좋아하니 술을 잘 마시는 동기들과 어울렸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게 매일 술을 마시며 열심히 글 쓰는 척하면서 영화 이야기를 하고 놀고 떠들고 영화 보러 가고를 반복했다. 스터디? 하하하!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구먼! (다른 친구들은 스터디를 했을 수도 있다.)
술을 마시며 하는 영화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건 없다. 영화 이야기는 또 끝이 없어서 한없이 각자 자기들이 좋아하는 영화감독,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댔고 노트북으로,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장면들을 틀어서 같이 보면서 감탄을 하고, 여기서 이런 기술이 기가 막히지 않냐느니 연출이 어떻다느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면 정말 시간이 훌쩍 갔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늘 배울 것이 많았다. 이 친구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이런 카메라 움직임을 생각하는구나, 이 친구는 이 장면에서 사운드를 이야기하네? 이런 것들을 보며 연출력이 좋다고 감탄을 하는구나!
당시의 나는 백지상태였던 것 같다. 영화를 그저 좋아하며 보기만 했지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고, 만든 경험도 동기들에 비하면 현저히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도 나는 너무나 재미있었고 그 자체가 나에게는 큰 수업이었던 것이다.
또 처음 입학을 하면 동기들의 포트폴리오를 쭉 보는 시간이 있는데 각자가 만든 단편들이 다 개성이 강했다. 한 명도 비슷한 색채가 없었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색깔들이 있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각자 쓴 글들을 읽어봐도 그 개성들이 글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이 친구는 어떻게 이렇게 구성을 짜는 걸까?
이 친구는 창의력이 좋은 것 같네 이런 방식으로 할 수도 있구나
이 친구는 자기만의 묘한 분위기가 있네?
이 친구는 감정, 상처를 잘 다루네?
이런 것들을 보고 있다 보면 동기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일까 가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도 나는... 정체불명이었을 것 같다(판단할 거리가 없으니..?) 아니, 사실 서로에게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지 않아서 정체불명+노관심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하.
하지만 나는 애초에 남에게 관심이 많다. 다른 이들의 각자 다른 생각, 색채들이 궁금하다. 그래서 자꾸 기웃기웃하면서 동기들의 생각을 듣고, 질문하고, 그들의 글도 열심히 읽고 하다 보니 그 자체로도 배우는 게 많았는데, 그 모든 과정에서 그들과 나의 비교를 통해서 또 배우는 것들이 생겼다. 결국 그 배움의 종착점은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거지?
그러면 나는 어떤 개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러면 동기들이 보기에 나는 어떤 색채를 가지고 있게 보일까?
이런 질문들의 마지막은 결국 '그래서 나는 진짜 누구인가?'였다. 사실 아직까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보다는 조금 더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이 생긴 것 같아 다행이라는 막연한 말만 덧붙인다.
여튼 이렇게 아카데미의 시작은 스터디....는 커녕 술터디(?)와 함께 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보니 나에게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다른 동기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같이 입학 한 동기들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웠고, 무럭무럭 자라는 콩나물처럼 쏙쏙 흡수했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과 고민의 과정 속에서 나는 두 가지를 깨닫게 됐다. 하나는 내가 어떤 장르의 글을 잘 쓰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결핍이 결핍된 사람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의 내가 쓰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오늘은 이만... 다음 주의 나야... 빨리빨리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