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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배워야만 한다(5)

(안부귀영화) 1.2 - 주제파악

by 초별


혼나면서 시작되긴 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압박 면접이 아니었다. 그저 (특히) 연출과 교수님들이 뭔가 계속 내 코를 납작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시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근데 제 코는 원래가 납작한데 말이죠). 왜 작년에도, 올해도 비포폴 전형으로 내느냐. 이런 질문도 하시고 그래서 답을 했더니 “전략을 잘못 짰네.” 라며 면박을 주시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그 말씀에 동의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제 생각해 보니 전략을 잘못 짠 것 같다”라고 수긍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 소신을 말하기도 했다. 주된 공격(?)은 너의 자기소개서나 2차 작문들을 보면 아직 너의 가능성밖에 안 보이지 실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카데미는 실력자를 뽑는 곳이다. 너는 가능성 말고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이냐. 이런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당장 보여드릴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영화가 하고 싶었고, 그래서 얼마나 열심히 해낼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말씀드렸다.


그 외에도 한겨레에서 찍었던 내 단편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봐라, 그것에 몇 점을 줄 거냐는 질문도 있었다. 마이너스 1점을 주겠다고 답 했더니 교수님들이 다들 빵 터지기도 했었고, 그 단편영화의 문제점을 파악했는지, 어떤 게 문제였는지를 이야기해보라고 해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복기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네” 하면서 혼나기도 했다. 또 올해 본 단편영화 중 재미있었던 것을 이야기해 보라고 해서 말을 하는데 나는 말로 이야기하는 걸 잘 못한다. 왜, 학교 다닐 때 보면 이야기꾼 친구들이 있지 않은가. 말빨로 사람을 휘어잡으면서 무서운 이야기도 해주고 그러는 친구들. 그것도 영화일을 하는 데 있어서 되게 훌륭한 능력인데 나는 그게 없다. 말보단 글이 편하니… 그래서 열심히 내가 본 단편 줄거리를 이야기하는데 교수님 중 한 분이 “아우 됐어 그만 말해. 재미없어”라고 해서 말을 하다 멈추기도 했다.


또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게 있는지, 그것에 대해서도 말해보라 하셔서 줄거리를 이야기했는데 또다시 “넌 혹시나 기적처럼 합격하더라도 그 이야기는 하지 마. 재미없어. 아 근데 합격시켜 주더라도 1쿼터도 못 견디고 울면서 나가게 되겠지만. “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런 말들은 다 전년도에도 2차 시험장에서 만난 적이 있는 이상하게 생긴 꽁지머리의 아저씨가 하셨다. 그 아저씨가 면접 때 나에게 하신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 말이었다.


”나는 너를 연민한다. 나는 너를 처음부터 좋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 작년에 지원했었길래 니 책도 조금 읽어봤는데 재미도 없더구먼! 근데 자꾸만 1차, 2차를 통과하길래 면접 때 한번 보기나 하자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냥 그런 입장이다. 그런데 너는 29살이나 먹었는데 지금까지도 열정밖에 없고, 예전에 썼던 작문들은 다 판타지들 뿐이고. 판타지여도 괜찮은데 니 글은 너무 허공에 붕붕 떠 있어. 그게 걱정된다. 그리고 두 번째 걱정은 너를 만약 뽑아준다 해도, 아카데미라는 곳이 얼마나 저예산에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찍어야 하고, 빡쎈 곳인데 그게 열정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닌데 그걸 네가 과연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1쿼터 끝나기도 전에 도망가버릴 것 같단 말이지. 이 걱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 봐. “


그래서 나는 고민을 좀 했다. 그랬더니 “벽을 보지 말고 내 눈을 보라니까! “ 하고 혼을 내시는 것이었다. 아우 씨. 생각 중이잖아요 아저씨. 그래서 나는 ”네 지금 잠깐 생각 중입니다 “ 하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교수님의 눈을 바라봤다. 똑바로.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원래 눈이 잘 안 보인다(시력이 0.5 정도인데 귀찮아서 안경을 안 쓰고 살고 있다). 그날 역시 렌즈도 안 꼈고, 당연히 눈이 잘 안 보였기 때문에 그냥 교수님의 어렴풋한 얼굴 형태만을 쳐다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색하거나, 부담스럽지가 않았다(요건 몰랐겠지? 흐하하). 그에 대한 답은 그냥 솔직하게 했다. 허공에 붕붕 떴다는 말은 뭔지 잘 모르겠다고. 그러니 앞으로 교수님께서 알려주시라고. 그리고 두 번째 걱정 역시 내가 그만둘 일은 없으니 그 걱정은 하지 마시라는 말을 했다. 그러고 나니 또 한참을 계속 가능성에 투자하라는 거네! 우리는 당장 실적(?)을 낼 연출을 원한다 어쩐다 등등의 구박을 주구장창 들었다.


면접이 끝나기 전, 마지막으로 할 얘기가 있냐고 하셔서 아주 고민 고민을 하던 끝에 내 최후의 패를 깠다. 이 최후의 패는 면접 때 보여드릴 뭔가 기발한 것이 없을까를 부모님과 머리 맞대고 고민한 끝에 나왔던 아이디어였다. 바로… 1달러. 면접장에 가져온 1달러를 교수님들께 드렸다. 이 1달러는 면접 전 은행에 가서 바꿔온 돈이다. 그걸 교수님들께 하나하나 전달드리자 “뇌물이야?” 하고 흥미롭게 받으셨는데 그 와중에 말씀드렸다. “오늘 총체적으로다가 전략을 잘못 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원래 이거 안 하고 나가려 했는데… 아무리 전략을 잘못 짠 거더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1달러를 보시면 뒤에 제 싸인이 있습니다. 제 싸인을 미리 드립니다. 싸인만 드리면 안 받으실 것 같아 1달러짜리에 한 거예요. 제 가능성에 투자해 주세요 “ 비슷한 말을 했다. 아하하하하하 오글거려 미챠버리겠다. “이거 낙서해 놔서 쓰지도 못하잖아! “ 하며 어처구니없어 웃는 교수님들을 뒤로하고, 태연한 척 면접장을 나왔다.


면접 후에는 마음이 너무 홀가분했고, 즐거웠다. 특히 이 한 시간의 면접을 하면서 나라는 영화 연출 지망생이 이 업계에 오랫동안 있어온 교수님들에게는 어떻게 보이는지, 나는 어떤 장르를 좋아하고, 어떤 글을 쓰려는 사람처럼 보이는지 같은 객관적인 시선들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깨달을 수 있었던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면접 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배우는데, 아카데미에 가게 된다면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될까? 붙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인사대천명이겠지 싶어 이후로는 그냥 빨리 잊었다. 한예종 시험도 봐야 했기 때문이다.


한예종 시험은 아카데미에 비하면 순식간이었다. 전문사에 지원했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영어 시험을 봐야 했고, 그 후에 면접을 봤다. 면접 시간은 15분 정도였나 짧은 편이었는데 그렇게 인상적인 질문은 없었다. 한예종의 경우 전문사 지원이라 포트폴리오로 한겨레에서 찍은 단편을 제출했는데 그 포폴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그런데 뭔가… 한예종은 아주 아카데믹한 곳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정말로 대학원 같달까. 교수님들도 아카데미 교수님들은 꽁지머리 이상한 아저씨 같은 느낌의 교수님도 있고 그랬는데 한예종은 교수님들도 조금 더 학문에 집중하는 그런 분위기가 풍겼다(물론 이건 다 한예종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저의 판단일 뿐입니다).


그렇게 한예종 면접까지 다 끝내고, 그날 바쁜 일이 있어 (난생처음 어른처럼 혼자)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데, 스물아홉 인생에 처음으로 토를 했다(첫 경험이라서 지금까지도 기억을 하고 있다). 나는 평소에 소화기관이 너무 좋아 누워서 고구마를 먹어도 체한 적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토를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날 택시에서 자꾸 꿀렁꿀렁, 입에 물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위액인가! 싶어 기사 아저씨께 잠깐 세워달라고 하자 아저씨께서 1초 만에 차를 갓길에 대셨다. 그래서 후다닥 내려 토를 한 것이다. 아직까지도 내가 왜 이날 토를 했는지 의문이다. 별로 먹은 것도 없었는데. 그만큼 이 기간에 내가 긴장하고 나름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아닐까?….. (괜히 이렇게 몰아가 보고 싶어 토한 얘기도 끼워 넣어 본다^^)


이렇게 면접을 잘 기억하는 이유는? 당연히 면접이 끝난 후, 일기에 상세하게 기록을 해놨었기 때문이다(기록의 힘!) 그러나 이 기록도 다 나 중심적인, 내 주관적인 해석일 뿐이라 사실과는 다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그렇게 한국영화아카데미, 한예종에 면접을 보고 나니 어느새 겨울, 크리스마스가 오고 있었고, 나의 스물아홉 살도 끝나가고 있었다. 20대가 이렇게 가는구나… 뭐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이십 대가 가네? 싶었다. 그래서 언니&쌍둥이와 부산 여행을 떠났다. 굿바이 20대 여행이랄까. 당시엔 아직 광안리가 핫한 갱얼리가 아니었어서 광안리 방파제 앞에 포차거리가 쭉 있었다. 조개구이를 먹으면서, 우리끼리 술을 마셨다. “20대 때는 좀 더 예쁘고, 좀 더 날씬하고, 좀 더 연애 경험도 많고, 좀 더 뭐라도 이룰 줄 알았는데…”가 우리의 화두였다. (20대가 끝나갈 즈음에야 첫 연애를 시작한 우리 자매….) 다행히 언니와 쌍둥이는 둘 다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나는 비굴 모드 좀 깔아주고, (덩치는 커도) 막내(인 척) 애교 좀 떨고, 부지런히 짐도 좀 들어주고 그러면 돈 거의 안 들이고 여행이 가능하다(막내 개꿀 으흐흐).


밤바다에서 20대를 돌이켜보는데 대학 졸업 후 한국에 와서 보낸 4년여의 시간들이 혼돈과 방황으로 가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뭐라도 해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기웃 찔러보는데, 잘하고 있는지는커녕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그런 시간들. 20대 후반인데 그래도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내 아까운 시간이, 나이가, 젊음이 이렇게 가는 것이 괜찮은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가.


인생의 길에서, 무언가 조금 헷갈릴 때 내가 늘 써먹는 방법이 있는데 그건 바로 ‘관에 눕기’다(누구나 다 아는 흔한 방식이다) 나는 가끔 죽기 직전, 관에 누웠을 때 후회하게 될 포인트를 생각해 본다. 내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무엇을 못(안) 한 것을 후회하게 될까? 만약 내가 대학 졸업 후 영화를 하겠다고 도전조차 해보지 않았다면? 그건 기필코 후회할 일이었다. 관에 누웠던 내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 다시 삶을 살겠다고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힘들게 누운 관인데! 이제 드디어 쉴 수 있는데 다시 관에서 나와 다시 삶을 살아야 한다니 그건 얼마나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그랬기에 어떤 의심도 없이 영화라는 걸 해보겠다고 기웃기웃거렸던 것이다. 아카데미에는 한 번 떨어졌지만 그런 김에 단편도 만들어 보고, 시나리오 수업도 듣고, 영혼 이탈 경험도 하고, 이불킥을 하면서도 계속 기웃거리고. 관에 누워 있는 내가 다시 일어나면 안 되니까. 최선을 다해야 했으니까.


어두컴컴한 밤바다를 보니 갑자기 <주먹 쥐어 봐>가 떠올랐다.


“야, 그 몇 년 전에 모 감독님이 너한테 주먹 쥐어보라 하지 않았냐?”

“어. 너 주먹 쥐어봐. 이제는 뭐 보이냐?”

“아주 캄캄한데? 캬하하하하!”


다 같이 웃다가 그 당시 썼던 일기를 다시 찾아봤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모 감독님이 쌍둥이에게 한 얘기가 ‘주먹 쥐어 봐’ 말고 그 앞에 1절이 더 있었는데 그걸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감독님은 그랬었다. 영화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냐고. 모른다고 하자 감독님이 그랬댄다.


주제파악이다


이 중요한 얘기를 잊고 있었다니. 일기를 확인하며 망치로 한 대 꽝~ 맞은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있던 혼돈과 방황의 시간이 사실은 주제파악을 하는 시간이었던 걸까? 20대를 돌이켜보니 나는 영화를 시작한 줄 알았는데 똥 밭에서 구르고 있고, 칸에 갈 작품을 만들고 싶었는데 유투브에도 못 올리는 미스테익을 만들어내고, 시나리오인줄 알았는데 재미마저 없다는 일기를 써가며, 그 과정에서 온갖 이불킥을 하고 영혼을 떠나보내면서 주제파악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파악을 한다는 건, 그렇게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지만 잘 생각해 보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내 20대가 힘들었나 보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해본다...(고 지금은 안 힘든 척 말하지만 30대의 지금도 이것 때문에 힘들다. 그럴 줄은 몰랐겠지 20대의 나야?)


나는 내가 지금 만든 단편이, 내가 쓰는 이야기가, 내가 최선을 다하기만 한다면 최고의 작품이 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고 행동해야 했다. 나부터 최선을 다해야 나와 함께 하는 스태프들, 배우들, 모두가 각자 최선을 다 할 테고, 그래야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단편을 만들며, 글을 쓰며, 오늘은 칸, 내일은 베를린 영화제 제출일을 확인하곤 했다(웃기지만 진짜로 그랬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가 최선을 다한다 해도 아직 미흡함을 인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최선을 다 하고 모두가 최선을 다 해도, 이 작품의, 이 이야기의 전체적 완성도가 누군가에게는 시시할 수 있고, 그래서 만들어 놓고도 아무도 보지 못하고 잊혀져버릴 수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이렇게 양날의 검이란 걸 알면서도 믿음을 가지고 계속 진행을 시켜 나가는 것. 그 과정에서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믿음을 보여주고 보람을 주면서 감사함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정확한 주제파악을 하면서도 계속 밀어붙여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당시 내 일기장에 자주 등장했던 명언이 하나 있다.


Let’s be realistic! Demand the impossible.


현실주의자가 되는데, 불가능한 꿈을 가지라는 체게바라의 말이다. 미치광이가 되라는 말을 이렇게나 멋지게 하다니. 나쁜 체 아저씨… 내가 다 체할 것 같군. (죄송합니다-빠른 사과)


나는 20대를 체 아저씨 말대로 보냈던 걸까? 음… Demand the impossible 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현실주의자는 아직 쪼끔 덜 된 것 같다. 계속 주제파악 ing…이라서…


여하튼, 그렇게 20대를 보내면서 도전해 봤던 두 학교의 결과가 나왔다.

기적이었고, 완전한 운이었다.

합격이라니.


인생은 참 아찔하면서도 재미있다. 이불킥 하면서 겨우 주제파악을 겨우 시작했나 싶었는데… 합격 목걸이를 하나 쥐어 주니까 말이다. 그때는 몰랐지. 합격 목걸이로 인해 더 심각하고 본격적인 주제파악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 정말.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수님이 “합격해서 기쁘지? 지금 지옥문이 열린 건데 그걸 모른단 말이지.”라고 하신 말이 어떤 의미인지…



***드디어 1막이 끝나고 2막, 새로운 세상으로 갑니다. 아니,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다음 지옥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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