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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2시퀀스) 배워야만 한다(3)

(안부귀영화) 1.2 - 절박한 오뚝이

by 초별 Apr 15. 2025

탈락, 또는 무응답.

이것을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에게 익숙한 것으로, 디폴트(default)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당시 내 이메일들에는 이런 비슷한 문장이 항상 적혀 있었다.


"이 메일 읽고 바쁘셔서 답장 안 하셔도 정말로 괜찮습니다! 그건 아주 익숙합니다~ 허허."


시나리오 피드백이든, 어떤 조언을 구하는 메일이든 나는 내가 붙잡을 수 있는 나뭇가지, 줄기는 다 붙잡았던 것 같다. 상대방의 상황과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내 목적만 먼저 드러내는 것이 죄송스러우면서도 이기적으로. 그러다 보니 거절도 익숙해야 했던 것이다. 떡(정보, 조언, 상?)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떡을 주지 않는다고 나 혼자 상처받으면 세상에 상처받을 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러다 보니 아무리 거절, 탈락 펀치를 맞아도 오뚝이처럼 띠용~ 하고 다시 일어나는 게 나에게 이득인 것이다.  


거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바로 B감독님과 H감독님이다. B감독님은 유명 감독님인데 대한민국이 좁다 보니 나는 B감독님의 지인들 몇몇과 알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상업 현장 스태프 일이 너무 하고 싶어 이력서와 함께 구구절절 편지를 써서 지인분들께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다. 염치없는 부탁이라 전달 안 해주셔도 된다는 말도 했고, 전달을 하느냐 마느냐도 지인분들의 자유에 맡겼다.


그렇긴 했지만... 부탁을 한 것만도 사실 (내 욕심만 생각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게다가 B감독님은 당시 영화 하나를 준비 중이셨는데 만에 하나 내 글이 전달됐다면, 그래서 그 긴 글을 읽으셨다면, 그 시간을 빼앗은 것도, 또 거절 답장을 못하는 것에 혹시나 마음을 쓰신다면 그렇게 에너지를 쓰이게 하는 것 역시도 죄송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해봐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그러다 보니 (지인분들, 감독님) 양쪽에 다 실례인걸 알면서도, 죄송하다고 계속 꾸벅꾸벅하면서 부탁을 해보고, 조언을 구했던 것이다.


그런 나의 이기적 집요함에 (너무 착해서) 응답을 해 준 감독님이 H감독님이다. H감독님은 내가 한국에 온 후 영화제들을 구경 다닐 때 알게 된 감독님이다. 당시 부산영화제에서 하는 감독, 배우와 같이 영화를 보는 프로그램이 있어 그걸 지원했었다. 그 프로그램은 별건 없었고 영화제 기간 동안 감독님이 선정한 영화 몇 편을 함께 보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감독님의 상업 데뷔작을 좋아했었고 그래서 나도 H감독님 프로그램에 지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는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연락을 드리는 게 고민이 되긴 했지만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를 해보고 싶은 시기다 보니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부끄러웠지만 무작정 연락을 드렸고, 뵙고 싶다고 했다.


감독님은 흔쾌히 그러자고 하셨다(아마 한 번만 일 줄 아셨겠지...?) 점심때였는데 맛있는 샤부샤부까지 사주셨다. 연출부 일이 하고 싶지만 감독님은 아직 다음 작품을 시나리오를 쓰고 계신 단계라 뭔가 같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천만다행으로 생각하셨을 거다). 여하튼 그래서 나는 내 시나리오(도 아닌 시나리오)를 보여드렸다.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마구 쓴 글들, 단편도 아니고 연극도 아니고 다큐도 아닌 그 끄적임의 뭉치들을 보내고 피드백을 해달라고 하고, 진로 고민, 인생 고민도 열심히 했다.


H 감독님은 내가 (지금까지) 만난 영화인 중 가장 착한 영화인 몇 명 안에 손꼽힌다. 조용하지만 깊고 예리한데 차분히 할 말을 하신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지원해 보고 저기에 지원해 보고 와다다다 근데 이렇게 하면 언제 세계 최고 영화감독이 되고(응?) 같은 어처구니없는 말을 해도 열심히 귀 기울여 듣고는 감독님 본인이 생각하는 그러면 이런 방향은 어떨까요 저런 방향은 어떨까요를 말해주곤 하셨다. 거기에 더해 자기도 잘 모르지만... 하는 겸손까지 갖추면서... 그런데 자기 돈 내고 밥까지 사주면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으셨길래...)


시간이 지날수록 감독님이 당시 시간을 내서 나를 만나주시고,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 주신 것이(그에 더해 맛난 밥까지 사주신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상업 데뷔를 한 감독이 이제 막 영화를 시작해 보려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열정만 있는 그런 아무개를 만나서, 무시하지 않고 아무개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준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음 연락해 다시 만난 이후로도 가끔씩 연락드리고, 궁금한 걸 여쭤보고, 민폐도 끼치고 (흑흑) 그러면서 계속 감독님을 괴롭혔다. 장편을 찍기 전까지도 이메일로 연락드리며 근황을 (안물안궁이시겠지만) 알려드렸는데 그렇게 하는 게 뭔가 (내 생각엔) 예의 같았다. 이메일을 쓸 때는 그때 얼마나 감사했는지에 대한 감사 인사도 계속했다. 이젠 그만 좀 해 (이메일도 그만 보내!) 하고 속으로 생각하셨을지도... 지금까지도 나는 H감독님의 영화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다음 영화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집요한 괴롭힘(?)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끝이 아닌 게 아니라 사실 괴롭힘 서사(?)의 시작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 기간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났다. 나는 아주 내향적(대문자 I)인 사람이지만 그때의 나는 파워 외향형 인간처럼 보였을 거다. 그러나 사실 나는 외향형이 아니라 악착형이었다. 악착형은 너무 못돼 보이니까 절박형(?)이었다고 눈 가리고 아웅을 해본다.


절박형이 한 행동에 대한 예를 들면 이런 거다. VR관련 영화 제작을 하는데 영어 가능한 스크립터가 필요하다고 해서 지원해서 면접을 봤었다. 그리고 하루 출근했는데 제작에 문제가 생겨 삐그덕거리더니 잘 안 됐고, 별다른 소득 없이 그만뒀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한 번 뵌 감독님이 아카데미 출신이었다. 그래서 철판 깔고 따로 연락을 드리고 감독님 사무실 근처까지 찾아가 아카데미에 관해 궁금한 것들을 여쭙고 그랬다. 그때 그 감독님이 그러셨다. 얼마나 아는 사람이 없으면 나한테 연락을 했느냐고... 그러게나 말이에요 허허허 하면서... 열심히 족발을 먹었다(나는 왜 그때 먹은 밥들이 생생히 기억나는가) 그때도 점심때였는데 H감독님도 그랬지만 감독님들은 연출지망생들이 못 먹고 다닌다는 생각이 있으신지 감사하게도 늘 맛있는 걸 사주셨다. 그래서 내 살이 빠질 틈이 없었나 보다. 감솨합니다 감독님들~

 

여튼 이런 나의 절박형 성향은 이 해 겨울, 한국영화아카데미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지원할 때까지 발휘되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다. 나의 다음 괴롭힘 타깃(?)은 S스쿨에서 만난 Y오빠였다.  




한겨레 영화학교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S스쿨에 등록했다. (단편도 못 쓰면서) 장편 시나리오 쓰는 것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사실 웬만한 사람들은 S스쿨이라고 하면 다 알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내가 나중에 고소당했을 때(응?) 아니라고 잡아떼기 위해서(응??) 가명을 유지할 계획이다).


그곳에서 만난 S선생님은 아주 캐릭터셨다. 권위적이었고, 폭력적이었고, 고전적인 시나리오 구조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고, 작법의 어느 경지에 도달한, 깨어 있는 사람이셨다(안 깨어있는 나의 판단일 뿐이지만). 선생님이 수업 중 죽비를 들고 다니시면서 (다 큰 어른인) 학생들의 머리를 퉁퉁 때리시는 걸 볼 때는 문화충격을 먹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엔 워낙 남녀가 유별나고 폭력에 예민한 세상이다 보니 선생님은 얌생이(?)처럼, 맞아도 뭐라고 안 할 것 같은 성격 좋아 보이는 젊은 남자들 위주로 퉁퉁 때리셨다고 나는 생각한다ㅋ)


어쨌든 그곳에서 작법 수업을 들었는데 (내 기준에) 꽤 비싼 돈을 냈지만 사실 장편 작법 관련해서는 지금 생각해 보니 배운 게 없다. 왜냐면 당시의 나는 무엇을 하나 알려줘도 그게 뭔지 몰라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배운 것이 없으니) S선생님의 제자조차 아니다. 그러나 그 수업을 통해 얻은 것이 세 가지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1) 괴롭힐 대상, 2) 데드라인 3) 자기 객관화라는 것이었다.


1) 괴롭힐 대상

처음 수업이 시작되고 자기소개를 쭉 하는데 내 눈에 포착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이 수업을 들으러 온 Y오빠였다. 내 레이더망에 걸린 이유는 단순하고 이기적이었다. 내가 가고 싶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나는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조차 붙잡고 "혹시 여기 다니세요? 저 궁금한 게 있어요"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입장이었는데 이렇게 같은 반이 되다니! 수업이 끝난 후 첫 뒤풀이 자리에 들어가기도 전에, 술집 앞에 서서 Y오빠에게 다짜고짜 다가가 전화번호를 땄다. 당당해 보이는 말투로 적고 있지만 사실 당시의 나는 아주 비굴했다. "제발 번호 좀 알려주세요 제발"


그 해 가을, 아카데미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Y 오빠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스누피처럼 생긴 이 오빠는 아카데미에 꽁지머리의 이상한 아저씨가 교수님으로 계시는데 진짜 웃겨 미칠 것 같은 괴짜라면서 그 교수님의 문자를 보여주기도 했고(정말 기이한 문자였다), 그곳이 얼마나 살벌한 정글의 세계인지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들어가자마자 하게 될 부츠 캠프에서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놔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해주었다(입학도 안 했는데?). 그 외 등등 아카데미 1년 과정을 막 졸업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내 깐에는 비싼 스시를 (고작 딱 한 번) 사드리며 들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니 두근거리기도 하고, 내가 과연 올해 합격이 가능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연락을 안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이 오빠에게 감사한 게 참 많다. 아마 본인은 잊었을지 모르겠지만 아카데미 합격 이전부터, 이후 졸업영화를 찍을 때 까지도 전화로 크랭크인 전 연출로서 어떤 준비를 했는지를 듣기도 하고,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될 노하우들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속으로 미안함이 좀 있는데 몇 년 전 내가 장편을 준비하는 동안, 이 오빠에게 연락이 왔었다. 자신이 첫 연출하는 시리즈를 준비 중인데 스크립터를 갑자기 구하게 됐다면서 어떻게 안 되겠냐고 연락이 왔는데 나도 너무 돕고 싶었지만 내걸 준비 중이라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도움을 준 적은 한 번도 없었어서 언젠가 뭔가 가능한 때 돕고 싶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렇다고 내 장편을 버릴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사정을 말하긴 했지만 너무 미안했다. 오빠의 그 작품은 지금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에 오르며 아주 잘 나가서 시즌투까지 찍고 있다(너무나 다행이고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하고 있다).  


이렇게 소중한 인맥을 만난 것도 있었지만, 더 크게 얻은 또 한 가지는 바로 데드라인의 힘과 두려움이다.




2) 데드라인의 힘

S 스쿨은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장편 시나리오 초고를 내겠다고 지원할 수 있는 예약 시스템이 있었다. 예를 들면, 수업을 듣는 전체 학생 수가 60명이라 치면... 그들 중 장편 시나리오를 제출하고 피드백을 듣고 싶은 학생은 수업 시작 초기에 날짜를 박아버리는 것이다. "저는 7월 20일에 시나리오를 제출하겠습니다." 이렇게 예약 지원을 신청하면 이것은 이제 모두와의 공식적인 약속이 된다. 그래서 7월 20일에 제출을 꼭 해야만 하는 것인데, 제출을 하지 않으면 벌금 10만 원을 무조건 내야 했다. 지금도 10만 원은 큰돈이지만 당시의 나에게 10만 원은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50만 원 같은, 그런 큰돈이었다.


옛날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당시에 장편 시나리오를 내겠다고 예약한 사람은 전체 학생의 1/10 쯤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지원을 했어도 정말로 그 날짜까지 시나리오를 제출하는 사람은 그중에도 절반쯤에 가까웠다. 나머지는 지원을 해놓고도 끝내 쓰지 못해 10만 원을 내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지원할까 말까를 엄청나게 고민하다가 그래도 수강료 아깝지 않게, 이 수업이 끝났을 때 장편 시나리오 하나쯤은 가지고 나가겠다는 패기로, 제출 예약을 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약속이었는지... 장편 시나리오를 하나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내공을 쌓아야 하는 것인지, 그때의 나는 정말 몰랐다. (지금의 나도 여전히 장편 시나리오 초고 하나 써내기가 어려워 아등바등인데 참...)


수업 후 팀플을 하다가 저녁을 먹으면서 같은 팀원이었던 언니가 나를 보며 물었던 게 기억난다.


언니: 너 이주 뒤에 제출 아니야? 얼마나 썼어?

나: 저요? 아직 트리트먼트도 다 못 썼어요

언니: 헐. 이주 남았는데? 포기?

나: 포기요? 아뇨~ 그래도 아직 이주일 있으니까... 이번 주에 정리하고 쭉 쓰면 되지 않을까요?


그때의 언니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경악과 함께... 얘는 뭘 모르는 애구나 하는 그 표정. 그랬다. 난 정말 뭘 몰랐다. 데드라인이 가까워지자 나는 손톱을 다 물어뜯을 정도로 초조해졌다.


내가 과연 제출할 만한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수준인가? --> 아니다 --> 그럼 어떡하지? --> 아닌 게 어딨어. 그냥 쓰면 되지. --> 그런데 못 쓰겠는데?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겠고 엄두가 안 나는데? --> 그럼 10만 원 낼래? --> 죽어도 10만 원은 못 내지!! --> 그럼 어쩔 건데!!??


이렇게 스스로 치고 박는 내면의 싸움이 계속 됐다. 그러면서 데드라인은 째깍째깍 가까워져 갔고, 나는 결국 과감한 결정을 하게 됐다. 원래 시나리오로 쓰려고 했던 내용은 거의 헝거게임 수준의 판타지, 서바이벌 액션이라 지금의 내가 시나리오화 하기에는 너무 고난이도라 어렵다는 핑계로 다 던져버리고, 일주일을 남겨 놓고 새로운 아이템을 가져온 것이다.


그 아이템은 바로 술 먹는 세 자매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술을 처음 먹게 된 10대의 세 자매에 대한 단편을 찍었던 적이 있었다(처음처럼 이란 제목이다). 그 단편의 후속작(?)으로 이번에는 20대가 된 세 자매가 각자의 일과를 마치고 술집에 모여 술을 먹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쓴 것이다(좋은데이 라는 제목이다).


17년 11월 26일 완성했는데 총 58페이지에 18 씬이다. 58페이지인데 18 씬이라... 하하하하하하. 보통 저예산 영화들이 60-80페이지 안짝에 80-100 씬 정도라고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인 거다(물론 영화마다 페이지와 씬 넘버는 다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18 씬은 너무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게 말도 안 되는 결과물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50페이지를 넘어서 무언가를 써냈다는 것이 한없이 기뻤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제본을 해서 가을 끝물의 공원 벤치에 올려놓고 인증샷까지 찍었다. 데드라인이 있기에 정말로 이렇게 몇십 페이지의 무언가를 써내는구나!!! 역시 데드라인의 힘은 위대해!! 하면서 사진을 찍고 벤치에 앉아 혼자 물개박수를 짝짝짝 쳐댔다. 하 참 나... (할말하않)


당시 찍은 사진


그 후 약속대로 S스쿨 홈페이지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글을 올렸다. 이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어떤 피드백을 받을까. 당시에는 시나리오를 예약한 사람이 글을 올리면 60여 명 전원이 수업 전 피드백을 달아줘야 했다. 한 번의 업로드로 수십 개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업로드 버튼을 누르던 때가 기억난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다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업로드를 하고... 나는 아주 소중한 세 번째 교훈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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