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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배워야만 한다(2)

(안부귀영화) 1.2 - MissTake

by 초별

드디어 첫 번째 단편을 만들었다. 이 전 해에 단편 스탭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에게 피드백도 해달라고 해보고 배우도 소개받고 하면서 미안하지만 신세도 지고, 부탁도 하고, 얼마 있지도 않은 친구들(쌍둥이 친구들과 친구의 남자친구)까지 동원해서 만들었다. 그렇게 (성인이 된 후) 첫 단편을 만들었으면 기분이 좋아야 했다. 드디어 내가 (그놈의) 칸(이든 베를린이든 '영화일 계획'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세계 영화제)에 갈 무언가를 만들었구나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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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리!가!


인생은 참 호락 호락한 게 아니다. 편집까지 다 마치고 났는데... 음... 이게 뭐지? 싶었다. 당시의 내 일기가 너무 그때 심정을 잘 표현해서 가져와 본다.



2017.02.17

내가 만들어낸 이것(?)을 내 입으로 작품이라고 부르자니 부담스럽고 부끄러워 쥐구멍에 머리만이라도 들이박고 싶은 건 당연할뿐더러 "그런 고급(지인) 인력들의 노력과 도움을 받아 이 따위 쓔레기를 만들어내다니!!!" 하고 절규하며 마치 메이저리그 투수가 야구공을 날리는듯한 빠른 시속으로 이 영화를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싶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또 그렇다고 이건 영화도 작품도 아니고 "그저 대왕 쓰레기야!!!" 라거나 좀 더 완화해 "실수투성이인 습작이야!"라고 부르자니(그게 맞는데도)"이짜식이!!! 이건 지금의 나로선 최선을 다한 내 최고의 작품이야!!!"하고 저 맘속 구석에 처박혀있는 뭣도 아닌 내 자존심이 우아아악! 하고 화를 낸다.


그러니 이것(?)을 뭐라고 불러야 하냔 말이다. 하... 배 아파 낳았으니 미운 자식 놈도 자식이라고 '이노므자식...'이라고 불러아햐나? 그러다 보니 내 일기의 제목조차 첫 쓰레기 완성!이라고 하기도 싫고, 첫 영화/작품 완성!이라고 하기도 싫다는, 햄릿도 울고 갈 고뇌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왜때문인지) 햄릿이 울고 가며.... 내 슈레기 같은데 슈레기라 부르고 싶지 않은 이것에 이름을 붙이게 된다.


Misstake


"Miss(놓친 것)들이 많지만 그것을 take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지금은 MISStake이지만 이렇게 단편들을 찍다 보면 나중에는 missTAKE에서 완전한 TAKE이 되겠지..."라고 일기장에 열심히 의미부여를 해놨다. 지금 보니 꽤 멋진 이름이다. 영화의 Take과 NG 중 그 Take을 꿈꾸는 것이기도 하니...(어쩌면 난 작명에 소질이 있는지도?)


여하튼 그렇게 한겨레 영화학교를 다니며 단편 두 개를 만들었다. 처음 만든 단편은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다 만든 거였고, 두 번째는 한겨레 영화학교 동기들과 서로 촬영해 주고 스탭도 해주면서 품앗이하는 방식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욕심을 잔뜩 냈다. 그래서 동기들은 다 스태프로 도와달라고 하고 촬영감독을 따로 구했다. 그렇게 당시 한예종 전문사에서 촬영을 배우고 있다는 J님을 만났다. 분장, 조감독도 따로 구했고, 심지어 이 두 번째 영화는 대사보다는 몸으로 표현하자는 (나만의) 목표가 있었기에 댄서까지 구했다. 레게 머리를 한 자유로운 영혼의 프랑스 흑인 댄서였다.


그렇게 모인 스태프들은 대부분 또래 거나 나보다 어려서 이름을 부르고 누나 동생 해도 되지만 나는 철저하게 "촬영감독님" "조감독님" 등으로 불렀다. 당시에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주 어색했다. 그러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아무리 현재의 내 실력이 허접하고 초보라고 해도, 이 작품에 임하는 마음만큼은 정말 진지했고 그 진지함을 현장에서 지키고 싶었나 보다. 그 정도로 나는, 친구들끼리 찍는 영상, 콘텐츠가 아닌 '영화'라는 것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그런데 웃긴 게 나는 감독님이라고 불리는 게 미친 듯이 오글거려서 부르고 싶은 대로 편하게 부르라고 했다)


여튼 그렇게 진지한 마음으로 모든 준비를 나름 열심히 했다. 글콘티, 사진 콘티는 물론 연습실을 빌려 안무 연습도 여러 번 하고, 현장에서 연습을 해보고 동영상 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촬영 당일이 되었다.


해 뜨자마자 촬영을 시작했는데 그날 아침은 유독 추운 날이었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그러나 나는 아침부터 오후 내내, 해가 떨어질 때까지 추위를 아예 몰랐다. 한창 촬영을 하다가 문 뒤쪽 밖에 숨을 곳이 없길래 스크립터 친구와 숨어있는데 이 친구가 패딩을 껴입고도 오들오들 떨고 있길래 응? 오늘이 그렇게 추운가? 하면서도 그 생각은 슈루룩 빠져나가고 계속 촬영만 했고, 하루 종일 내 정신은 그냥 다 찍어야만 한다!! 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그렇게 정신을 쏟을 수 있는 이유는 스태프들이 잘해줬기 때문이리라….. 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말하고 있지만 스태프고 뭐고 사실 그때는 난장판, 전쟁통 속에서 일머리 있는 사람들은 일을 찾아서 하고, 아닌 사람들은 멀뚱멀뚱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긴 했다. 당시 피디(라는 직책을 나에 의해 억지로 떠맡은) 쌍둥이가 나중에 그 현장을 한마디로 표현해 줬다.


“내 현장이라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부끄러운, 도망가고 싶은 그런 현장이었다”라고.


쌍둥이는 차량 통제, 사람 통제를 하고 주변에 소음으로 민원이 들어오면 굽신굽신 하면서 온갖 제작부의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얘는 현장을 그렇게 느꼈겠지만 어쨌든 얘를 포함해서 똑똑이 친구들이 그래도 여러 몫을 하며 잘해줬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나는 당시 내가 찍어야 할 것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여곡절, 3단 공중 날라차기를 하고 촬영이 끝난 날 저녁, 엄마가 “저녁은 뭐 먹을까?” 하고 물어보셨다. 그런데 그 질문에 나는 엄마에게 와락 화를 냈다. “아 진짜!!!! 나한테 더 이상 묻지 마세요!!!” 그것도 감독이라고 하루 종일 수백(?) 가지를 오롯이 결정하는 것에 시달렸던 것을 애꿎은 엄마한테 풀어버린 것이다. 엄마 아빠도 이 날 스태프들을 차로 촬영 장소까지 날라주고 장비도 실어주고 제작부 역할을 톡톡히 하셨는데 밥을 사드리지는 못 할 망정... 그 감사함을 말로라도 표현은 못할 망정... 정말 최악의 불효녀가 따로 없었다. (물론 그 후로 당연히 죄송하다고 굽신굽신 사과드리긴 했지만...)


그 후, 끙끙대며 편집을 했다. 짧은 단편이기도 하고, 찍은 분량도 한 회차뿐이라 편집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쓸만한 컷들만 골라 붙이는 방법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이 Misstake 2가 괜찮은지 아닌지 객관적인 판단이 전혀 안 됐다. 지금 보면 정말 부족하지만 당시에는 그만큼 애정과 노력과 시간을 많이 들이다 보니 콩깍지가 여러 겹 씌었던 것 같다.


어쨌든 끝까지 최선을 다 하고 싶었던 나는 학교를 나가느라 바쁜 촬영 감독을 만나러 한예종 근처 카페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편집에 대한 피드백도 듣고 싶었고, 색보정 부탁도 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낯부끄럽다. 원래 이런 단편은 촬영 한 회차 소정의 일당을 드리고 끝인 건데 색보정까지 부탁하다니... 당시 J님은 예의 바르게 여러 이유들로 거절하셨던 걸로 기억한다(너무 예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뭣도 아닌 일반인이었는데 J님은 그래도 한예종을 다니고 있으니 나로선 (나보다) 조금 더 아는 사람의 피드백이 절실했다. 그래서 촬영 준비를 하면서도, 촬영을 하는 중에도, 심지어 촬영이 끝나고도 염치없지만 이것저것 열심히 물어보고 의견을 구하곤 했다.


특히 나는 J님의 영화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었다. 진심으로 재미있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본인이 그 외 일들(갓 태어난 아이의 아빠 역할 등으)로 바빠 이메일로 콘티를 주고받고 그랬음에도, 현장에서 만큼은 정말 열심히 촬영을 해주셨다. 컷에 대한 책임감도 큰 사람이었다(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것이 촬영감독에게 얼마나 중요한 능력인지 이제는 알겠더라). 그래서 그런지 당시 촬영은 시간이 지난 지금 봐도 (당시의 여러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정말 열심히 잘 찍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J님과는 언젠가 다시 현장에서 만나 감독으로, 촬영감독으로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곤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몇 년 전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크레딧에 J님의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아직 영화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반갑기도 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J님 말고도 당시 한겨레 영화학교를 같이 했던 동기들 중 두세 명 역시 지금까지도 영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친구는 심지어 아주 멋진 독립 장편을 만들어 데뷔를 하고 씨네 21에서 그 기사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고, 그때 만난 박모양은 이후 아카데미에서 졸업 작품을 찍을 때 스태프로 일을 도와주더니 나중에 아카데미에 들어와 후배가 돼서 또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그랬다. 이래서...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계속 강조하는 거다(사실 당시의 나는 내 것에 집중해 있느라 한겨레 동기들에게 착하지 않았던 것 같다... 흑... 그래서 자꾸 강조하는 것인지도) 어쨌든 이렇게 영화판은 당장 그만 둘 사람도 많지만 할 사람은 또 계속하고 있는, 그래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또 만나게 되는 그런 (사실은 엄청) 좁은 세상인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두 번째 영화의 제목은 <더티댄스>다. 집 앞 골목에 자꾸 개똥이 있어 스트레스를 받던 여주가 어느 날 새벽, 집 앞에서 실제로 똥을 싸고 있던 만취남 동주를 만나 충격에 화를 내고 몸싸움을 하다가 춤을 추게 되는(... 응?) 그런 내용인데 유명한 음악을 쓰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저작권에 걸렸다(하하하). 그래서 유튜브에 올렸지만 저작권법 위반으로 비공개 상태로 바꿔놓아 아무도 보지 못하는 비극적인 작품이다. 이 글을 쓰며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진짜 말도 안 되고 그렇지만 일말의 후회도 없다. 그만큼 열심히 했기에 지금은 그저 웃기고 좋다(혹시나 궁금하신 분은 댓글에 메일주소 알려주시면 따로 링크 보내드리겠습니당)


아, 이 단편을 만들고 나서 나는 사비를 들여 여기저기 영화제에 제출했었다. 저작권을 해결 못했지만 일단 제출하고 보자는 무대뽀 심리였다. 처음에는 쌍둥이와 몇 개 영화제에 지원해 봤는데 다 떨어졌다. 그래서 괜찮은 척하며, 그러나 속으로는 조금 실망하면서 나 혼자 몰래 몇 군데, 아니 사실 십여 군데 여기저기 (특히 외국 영화제들에) 마구 지원을 했었다. 부족함이 많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내가 못 보는 어떤 장점을 봐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희망은 매번 가차 없이, 탈락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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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사실 큼직하게만 생각하고 글을 쓰고 있다 보니... 분량 조절에 실패해 버렸습니다... 좀 체계적으로 써야 하는데 나불나불 나불쟁이가 된 것 같아 읽는 분들께 죄송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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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제가 맘대로 쓰고 있는 글이니 제 맘대로 하겠습니다.

이번 1막 2시퀀스는 (5) 부로 나누어 가겠습니다.


맘대로 쓰고 있는 글의 장점은 맘대로 써도 된다는 거겠죠...? 그러니 읽다가 뭔가 궁금하신 게 있다면, 아니면 이런 부분은 따로 써주면 좋겠다 싶은 게 (혹시) 있으시다면 언제든 의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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