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귀영화) 1.1 단편을 만들기 위한 헛발질
내 단편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쓰려고 했다. 쓰려고 했지. 그러나 항상 쓰려고만 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대 시절 영상 센터나 영상 캠프를 다니며 나름의 영상 영재 교육(이라고 주장해본다)을 받았을 때 어떻게 시나리오를 썼더라 떠올려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때는 그냥 막 썼다는 것을.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시나리오 형식도 몰라도 그냥 대사를 쓰고 지문을 쓰고 그랬다. 그리고 맘대로 촬영을 해보고 우리끼리 낄낄거렸었다. 즐거웠더랬지...
새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떤 시나리오 작법 책에서 봤던 이야기로 기억한다. 별생각 없이 늘 하늘을 잘 날던 새가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을 했다.
'내가 어떻게 날았더라? 날개를 이렇게 폈었나? 저렇게 펄럭여야 했던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다시 하늘을 날려니 나는 법을 모르겠더라는 거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이었나? (정확히 기억 안 남ㅋㅋㅋㅋ) 끝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법을 다시 고민하고 피나는 연습을 한 후에야 그 새는 다시 날 수 있었다고. 비록 이전에도 하늘을 나는 새였고, 지금도 똑같이 하늘을 나는 새지만 이제는 정말로 나는 법을 알게 된 새가 됐다... 뭐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이 내용이 아니라면 그냥 내가 지어낸 걸로 하자)
내가 꼭 그 새가 된 것만 같았다. 시나리오 어떻게 쓰는 거였더라...?
물론 그냥 막 쓰는 것이 답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성격이 내가 뭔가 모른다고 생각하면 계속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것저것 프로그램들을 알아봤다. 실제로 단편영화 만드는 그런 워크샵 같은 프로그램을 지원해보기도 하고, 첫 수업을 나가보기도 했다. 그러나 첫 시간에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나왔던 적도 있다. 그 후 결심한 것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단편영화를 만드나 봐 봐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총 세 편의 단편 현장 일을 했다. 일이라고 하자니... 돈을 거의 안 받고 도와준 것이긴 했지만... 처음에 했던 것은 뉴욕대 경영학과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부유한 중국 여학생의 단편 조감독 일이었다. 미팅을 하고 나서 뭔가 단편이니까 내가 메인 조감독 일을 제대로 해보면 배우는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는데 정말 뼈가 갈리는 줄 알았다... 더군다나 이 친구는 한국에 지인도 없고, 아무 연고도 없는데 한국을 좋아해서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일단 필름메이커스에 스탭 공고를 내면서 야심차게 시작을 해봤는데... 나는 조감독이었지만 거의 이 친구와 내가 프로듀서, 회계, 현장 진행은 물론 이 친구(감독)의 통역까지 다 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정말 미쳐버리는줄.... 필름메이커스에 올린 공고를 보고 미국 USC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막 들어온 사람이 관심을 보여 미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듣더니 어처구니 없는 웃음과 함께 발을 빼더라....(가디마....) 그러나 무식이 용감하다고 그런 것들을 어찌저찌 하면서 무사히 촬영을 마쳤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그 후 저예산 장편을 찍을 때 만났던 스크립터 오빠의 단편 연출팀으로 일하기도 하고, 그 오빠와 또 인연이 있던 친구를 소개 받았는데 이 친구는 뉴욕대 티쉬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있던 친구였다(내가 너무나 가고 싶었던 그 학교!) 그런데 한국에 들어온 김에 단편을 찍는다고 해서 연출부로 또 도와주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보수로 노가다를 한 거나 다름없다. 원래 품앗이라고 하는데 과연 이들이 그럼 내가 내 단편 찍으려 할 때 도와줬나? 생각해보면 아무도 내 단편 촬영을 (직접적으로) 도와주진 않았다(하하하하하 웃어본다).
그런데 그래서 후회하는가 하면 그렇지만은 않다. 왜냐면 이런 비슷하게 다들 '아무것도 아닌 시기'에 만난 인연들이 나중까지 이어지더라. 특히 영화판이 그런지도... 물론 지금은 연락을 안 하고 지내고, 영화판을 (현명하게 진작) 떠난 것 같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때 만난 사람들 중 지금까지도 계속 영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아마 서로를 생각하면 질긴 놈... 하고 웃겠지). 그래서 사람 일은 모르는거니 정말 착하게 살아야 하는 거다(이상한 결론).
남의 단편 제작 일들을 하고 나니 단편 시나리오 쓰는 법을 알게 됐는가? 하고 질문해보면 음... 그러게나 였다. 그러나 글 쓰는 법 말고 영화를 찍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국인 친구도 자신의 주식으로 벌었다는 (꽤나 많은) 돈으로 단편을 찍었고, 스크립터 오빠도 논술 학원에서 빡세게 일하고 모은 돈으로 거액을 들여 단편을 찍는 걸 보며 나 역시 단편을 찍으려면 돈이 있어야한다는 (너무 당연한데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조금씩 글들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영진위나 기관들에서 하는 단편제작지원이라던가 공모전 같은데 응모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쓰고, 아이템을 적어 놓고 그랬는데 지금 보면 정말 형편 없는 글들이다. 그럼에도 그때는 내가 붙을 거라고 생각하며 기대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당연히 매번 떨어졌다. 가끔 보면 그런 공모전에 전화를 하는 사람이 있댄다.
"제가 왜 떨어졌는지 혹시나 알 수 있을까요?"
하는 구질구질한 질문을 하는 사람. 바로 나였다. 너무 궁금했고, 누군가의 조언이 절실했다. 이건 개똥이야!! 같은 폭언도 괜찮으니 피드백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담당자의 어이없음을 감추는 "어..." 하는 답변 뿐, 어떤 피드백도 듣지 못했다(당연하다). 내 전화가 그날 점심식사 자리의 재미난 반찬거리라도 됐길…
고민을 하게 됐다. 어딘가에 소속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가 하는 고민이었다. 한국에서 영화 교육 기관으로 그래도 알아주는 곳이 <한국영화아카데미>와 <한예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나는 뭔가 이런데 지원해서 들어가고, 소속된다는 것에 별 흥미가 없었다. 그냥 내가 기가막힌 단편을 하나 만들고, 칸에 초청되고, 그래서 영화제도 가고, 세계 여러 영화제들도 돌아다니고... 그걸로 인정받아 한국 제작사와 계약도.... 하하하하하 (너무 말도 안 되니 또 웃어본다)
그런 고민을 하며 살다가 영화제 시즌이 되면 여러 영화제들을 구경 갔다. 가서 남이 만든 단편을 보면서 신나게 비웃고 욕 하고, 잘 만든 단편을 보고 나면 칭찬은 꾹 참고 흠을 찾기 위해 질투로 이글대는 눈알을 굴렸다. 내 눈에 아주 연기를 잘 하게 보이는 배우가 나온 단편을 본 적이 있는데 GV도 있었고 당시 그 배우도 무대 인사를 했었다. 무대를 떠나는 그를 호다닥 뛰어가 붙잡았다.
"저도 영화하는 사람인데 배우님 연기가 너무 좋아서 혹시 이메일 주소 주실 수 있나요?"
하하하하하(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 자꾸만 웃는다...) 실례인줄 알았지만 이메일 주소를 받고 너무 기뻤다. 내 영화 할 때 꼭 연락 해야지 싶었다. 그렇게 야심차게 연락처까지 받았는데 아쉽게도 지금까지 연락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내가 쓴 시나리오는 여자 주인공이 많았고 캐릭터와 딱 맞는 배역이 슬프게도 없었다(그러나 그 배우님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훌륭한 연기를 하고 계시더라).
영화제는 영화인들의 축제라고 한다. 처음에는 적을 알아야 나를 알지! 하는 심정으로 영화제에 갔고, 영화들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하루에 여러편씩 영화를 보면서 GV에서 열심히 심오한 척 질문하는 GV빌런이 되기도 하고 그랬다. 심지어 <한국영화스태프 토론회>에 참여해서 열심히 임금, 노동 문제에 대한 토론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영화제가 점점 자기들끼리만의 축제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끼어서 (내가 뭐라고) 즐기고 있는 것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내 영화는 없고, 남의 영화를 그저 관객으로서 보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우울했고 가라앉았다. 당시 신림동 3평도 안 되는, 누우면 끝인 작은 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왜 때문인지 점심이 지난 두시쯤부터 항상 누군가 리코더 연주를 했다(‘떳다떳다 비행기’ 였다). 이건 뭐 코메디 영화의 궁상맞은 주인공에게도 이런 음악을 깔아주진 않을 것 같은데... 바닥에 누워서 그 처량한 리코더 연주를 듣고 있으면 이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 혼자 이 세상에 속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영화제도 마찬가지였다. 나만 속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축제.
하지만 그 와중에 다행인건 나에겐 나처럼 쪼랩인 쌍둥이가 있었다는 거다(나는 쌍둥이다-갑분고백). 우리는 같이 영화를 하기로 했는데 얘는 대학 졸업 후 운 좋게 바로 영화사에 취직했다. 그래서 당시 칸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등 온갖 멋진 해외 영화제 출장을 다니고 있었다. 쌍둥이가 그런 유수의 영화제들을 다니고 있어 부럽기는 했지만 멋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얘도 나처럼 결국 (회사 해외배급팀 막내) 쪼랩이었으니까. 하하하(비웃어본다). 쌍둥이가 영화제를 다녀오더니 나한테 그랬다. (누구나 알만한) 유명 상업영화 감독님과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감독님이 얘한테 말을 걸었댄다.
모 감독님: 야, 주먹 쥐어봐.
쌍둥이가 주먹을 쥐었다.
모 감독: 눈에 가져다 대 봐. 그 주먹 사이로 뭐가 보여?
쌍둥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캄캄해요~
모 감독: 그게 영화를 하는 너의 미래야 푸하하하하~~
나중에 주변에 이 이야기를 하니 그건 군대에서 선임이 맨날 하는 장난이랜다. 그러나 우린 군대를 다녀온 적이 없다. 당시 이 이야기를 직접 들은 쌍둥이도, 그리고 이 상황을 전해 들은 나도 아주 충격을 먹었다. 그리고 너무 웃겼다. 와 그런거야? 진짜 막막하네! 긴장이 팍 되면서 좋았다.
긴장이라는 건 내 안전한 세상에서 벗어나 무언가에 도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텐션이다.
어떤 것에 도전하고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이다.
(멋진 말이지 않은가? 사실 내 말이 아니다. 누가 그랬다.)
그 해,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처음으로 지원을 해봤다. 1차 서류를 통과해서 '역시난대단해' 하고 잔뜩 신이 난 채, 2차 필기 시험을 보러 갔다. 필기 시험을 보기 전, 긴 머리를 묶은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는 아저씨가 시험장에 들어와서 말하셨다.
"어떤 장르, 어떤 형식이든 상관없지만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이야기라는 건, 다들 알겠지만 기승전결이 갖춰져 있어야 해요."
뭐 저런 뻔한 말을 하는거지? 저 사람 도대체 누구여? 이상하게 생기셔가지구... 그러면서 열심히 필기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쓴 이야기는 당연히 기승전결이 없었다. 이야기도 아니었다. 주인공이 세계 최고의 감독이 될거야!! 다짐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가 우주로 날아가버리며 끝이 났던가... 도대체 왜 우주로 튀어나간거지? 내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당시의 나는 기승전결이 뭔지 모른다는 것도 몰랐으니 뭐... 당연히 탈락했다(붙는다면 큰 문제다).
사실 당시의 나는 영화를 시작한 줄 알았다. 그래도 장편 영화 스탭 일도 (엉망이지만)했고, 영화제도 (놀러)가고, 단편 현장 일도 해보고, 글도 쓰고 있고... 그래서 영화라는 것을 시작한 줄 알았는데, 시작은 커녕 똥밭을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2016년, 나의 스물일곱 살이 똥 바닥을 열심히 뒹굴며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