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귀영화) 2.3 - 나의 캐릭터 찾기
아카데미에서 만들어야 하는 단편의 숫자는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진다. 내부 사정은 나도 잘 모르지만, 매년 시행착오를 통해 커리큘럼을 수정하기 때문인 것 같다(그래서 옛날에는 아카데미가 2년 과정이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다녔던 때에는 총 세 편의 단편을 찍어야 했다. 실습작, PD 워크샵 작품, 그리고 졸업작품이다. 그러나 정말로 딱 이 세 작품만 찍는 게 아니라 잘 생각해 보면(굳이 카운트하자면)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꽤 많은 영화, 영상 작품들을 찍었다.
일단 제일 처음 찍어야 하는 작품은 5분짜리 자기소개영상이다. 이 자기소개영상은 입학 전에 혼자, 알아서 찍어야 하는 영상인데 말 그대로 나를 소개하라는 내용만 주어질 뿐이었다. 자기소개영상은 연출과 뿐만 아니라 피디과, 촬영과, 애니과까지 모든 학생들이 다 찍어와야 했다. 부츠캠프 시작하는 날 같이 상영을 하고, 전체 중 1등에게는 상도 주어진다. 연출과 담당 교수님이 "요 몇 년간 연출과에서 1등을 받은 적이 없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고 체면이 서질 않는다. 올해는 기대를 해본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괜한) 압박을 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내가 누구냐. 나는 (내 생각엔) 자타공인 꼴찌 합격자다. 그러다 보니 1등을 해야지! 본때를 보이겠다! 같은 목표 따위는 없었다(교수님의 스트레스? 아몰랑~). 나는 그저 날고 긴다는 동기들의 영상을 보게 될 것을 기대하며, 그러나 나도 너무 후지게, 뒤쳐지는 영상을 찍지는 않게 열심히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시나리오를 써보던 때가 지금도 기억난다. 처음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에 집착하며 다큐멘터리 인터뷰 식으로 내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한다거나, 나를 주인공으로 나래이션이 나온다거나 하는 그런 글을 썼다. 그러나 다소 뻔한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이런 거 말고 그냥 딱 하나만 표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해 말해보라 했을 때 내가 제일 크게 생각하는, 나라는 인간의 8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꿈"이었다. 나의 꿈. 나의 영화.
꿈을 좇아가는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만들게 된 게 지금의 자기소개영상이다. 당시에는 그래도 잘 만들고 싶어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영상이 그나마 부담 없이 혼자서 속으로는 재밌어하며 찍은 마지막 영상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냥 막 찍었으니까.
어디서 찍지? 하는 고민을 하다가 부모님 댁에 놀러 가서 연말에 찍어야겠다! 해서 그냥 장소도 집 뒤 논밭으로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캐릭터는 몇 명이 나오지? 하는 고민을 하다가 고민하고 말고 할게 어딨어! 나랑 쌍둥이 둘 밖에 안 되겠군 해서 둘로 정해버렸다. 촬영은 누가 해주지? 누구긴 누구야 찍어줄 사람이 없는데 언니한테 부탁해야지(이때가 한겨울이었는데 테이크를 자꾸 다시 가자 촬영하던 언니가 점점 저기압이 되어 눈치를 봤던 기억이 있다-이런 기억은 참 오래간단다 언니^^). 게다가 사운드를 살리려면 공이 드니까 그냥 대사 없이 옛날 무성 영화처럼 해야지 하는 기가 막힌 꼼수가 떠올라서 그렇게 했는데 완성시키고 보니 컨셉이 (우연히도) 잘 맞는 것 같아 만족했던 기억도 난다.
이 글을 쓰며 오랜만에 자기소개영상을 다시 봤는데 완성도를 떠나서(왜 자꾸 떠나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다. 애초에 담고 싶었던 꿈에 대한 내 마음이 담겨있는 걸 만든 것 같아 원래 의도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원래의 의도를 잃지 않는 것이 중헌디... ㅎㅏ...... 왜 이후로 만들게 될 영상들에서는 점점 잃어가는 것일까... 눙물이 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영상에도 기승전결은 없다. 그놈의 기승전결. 그러나 기승전결이 담긴 5분짜리 (자기소개) 영화를 찍어 온 동기도 있었다. 아주 흥미진진한 액션 장르 느낌으로다가. 그 짧은 5분 안에 서사가 담겨있을 뿐 아니라 이야기가 갖춰야 하는 모든 것(주인공의 목표, 갈등, 딜레마 등등)이 다 들어있더라 젠장. 그러면서 자기소개도 확실한데 아주 공들여 한 땀 한 땀 조명까지 쳐가며 만든 영화였다. 당연히 그 동기의 영상이 1등을 차지했고, 다행히도 그는 연출과여서 교수님이 기뻐하셨다는 후문이…
그다음으로 만들게 되는 영상은 부츠캠프(이하 부캠) 영상이다. 부캠은 입학 전 이 주일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인데 숙식 제공… 은 하지도 않지만 거의 그냥 집에 안 가고 학교에서 쪽잠 자고 편의점에서 밥 사 먹고 하면서 동기들끼리 빡세게 합을 맞춰 영화를 만들어 보는 첫 시간이다. 돌이켜 보니 부캠 때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기란 실상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영화제에서 상 받을만한 좋은 퀄리티의 단편이 기적적으로 몇 년(?)에 한 번씩 탄생하는 것 같은데 그런 기적이 만들어낸 작품을 보여주며 교수님들은 이 정도는 기본이야~ 너희들은 이것보다 잘해야 하지 않냐고 자극하고 압박하신다. 그러나 나는 이 시기가 작품에 신경 쓰기보다는 동기들끼리 서로를 파악해 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동기들끼리 아직 전혀 모르는 사이기도 해서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서로의 성향을 짧은 시간에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물론 이때 알게 된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긴 하지만). 나는 당시 망원동에 살았는데 홍대 아카데미까지 오고 가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홍대입구 쪽 찜질방에서 잠을 잤던 기억도 난다.
부캠 때는 두 편의 영상을 만든다. (*부캠 때는 너무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관계로 개인적인 기록을 할 시간조차 없어서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정보는 기억에 의존해서 쓰느라 원래보다도 더 정확하지 않습니다.) 1차는 키워드 하나와 장르 하나를 추첨해서 그에 맞는 영상을 만들어야 했다. 우리 조가 뽑았던 키워드는 <깡> <액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1차 영상은 연출과 10명이 두 명씩 한조로 짝지어지고 촬영, 피디와 함께 총 5조가 각자 영상을 만들게 된다.
나는 자기소개서 1등을 차지한 동기, G오빠와 같은 조가 됐는데 이 오빠는 앞으로 차세대 최동훈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며 창창한 앞날을 기대하게 하… 기는 개뿔. 어떤 별명을 얻고, 얼마나 주변에서 인정 받든 영화라는 건 참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그때는 누구나 금방 자신이 자비에 돌란이 될 거라고 기대하지만, 지금까지도 우리 동기들 모두 고군분투하고 있는 걸 보면 영화가 얼마나 만만찮은 것인가. 그래도 동기들 모두 조금씩, 스텝 바이 스텝으로다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나는 믿는다(믿어야지 별수 있나). 지금은 모두들 그래야 하는 시기인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자비에 돌란이 나랑 동갑이라니 젠장... (나도 다음 생에는 자비에 돌란으로 태어나야….내가지금무슨말을하고있는거지)
여하튼 이 G오빠 역시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로 지금까지 열심히 영화를 만들어오고 있는데 사실 이 오빠는 내가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은 것들을 배우고, 본받으려 한 (지금도) 존경하는 동기 중 하나다(라고 말해줘야지). 맨날 술을 마시던 멤버기도 했고, 영화라는 것은 결과가 중요한가 과정이 중요한가, 연출의 덕목에 착함을 넣어야 하는가 아닌가 등 온갖 (쓸데없는) 토론을 치열하게 피 튀기고 침 튀기고 술(까지?) 튀기며 했던 동기이기도 하다. 또 이후에 하게 될 피디 워크샵을 (무슨 악연으로) 공동연출 하게 되면서 또다시 피 튀기며 (이번엔) 멱살까지 잡았던 동기이기도 해서 앞으로 이 G오빠에 대한 이야기가 좀 자주 등장할 것 같아 미리 구구절절 소개한다. (이 글을 읽을 리는 없겠지만, 그리고 읽더라도 진짜내앞에서이글얘기하면죽여버릴테다)
여튼 그때 1차 워크샵으로 만들었던 작품은 당장 다음날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그다음 날 촬영하고, 그날 밤새 편집하고, 이런 식으로 거의 며칠 안에 다 찍어 완성해야 했다(상영+평가 일정이 그렇게 잡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행착오고 뭐고 할 시간 따위는 없었는데 연출이 두 명이다 보니 시나리오를 어떻게 같이 써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각자 써보기로 했다. 당시 학교 건물 빈 교실에서 책상을 구석에 몰아놓고 멀찍이 앉아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때의 기분은 지금까지도 너무 생생하게 기억난다. 왜냐. 나는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고 (당시에는)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등 뒤 교실 저쪽 구석에서 1등 상을 받은, (내 눈에는) 우등생(처럼 보이던) G오빠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으니… 쪼랩인 내가 도대체 뭘 쓸 수 있단 말이냐.. 하는 생각만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웃긴 건, 내가 시나리오 못 쓰겠다고 말해도 이 오빠는 그런 게 어딨냐며 얼른 쓰라고, 빨리 두 종류를 써서 바꿔 보자고 주장을 했다는 거다. 하 참 내. 내가 허풍 떠는 줄 아나!? 못 쓴다는데 그걸 안 믿어!? 그러면 이제 어떻게 내 실력을 뽀록내지? 하는 생각을 하며 빈 한글 파일을 멍하니 쳐다봤었다. 가끔씩 얼마나 썼나 힐끔힐끔 G오빠를 엿보면서. 그 뒷모습이 어찌나 커다란 고릴라 같던지… 이 오빠는 대화를 할 때는 아직 잘 모르는 사이라 그랬는지 순딩이 같은 표정을 (애써) 짓고 있었지만 가끔씩(사실 자주), 아주 예리하고 날카로운 판단하는 눈빛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고작) 한 줄을 써놓고도 이 고릴..(쏘리맨) 오빠가 나를 얼마나 비웃을까 생각하며 후덜덜 후덜덜 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너무나 못하고, 너무나 꼴찌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엄청 컸던 것 같다. 아무리 내가 꼴찌인 게 사실이라도, 그렇다고 이 오빠가, 아니면 다른 동기들이 뭐 나보다 백배 천배 앞서 있느냐? 하면 교수님들이나 다른 감독님들이 보기엔 조금 앞서있을 뿐 도찐개찐처럼 보일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완성형은 아니니까. 그렇기에 나를 만들어가면 된다… 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의 나는 나라는 형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일단 재료부터 모아놔야지! 하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납작 엎드려 있기만 했던 것이다.
내가 그런 태도였음에도 G오빠는 나를 동등한 연출로 존중해주려 했었던 (미화된)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내가 계속 진도를 못 나가자 ‘얘가 허풍이 아니라 진짜였네’ 싶었는지 결국 자기가 맡아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그 시나리오는 내 정서로는 절대 나오지 못할, 아주 직관적이고 재미있는 시나리오였다. 발뺌한 허풍쟁이 주제에 나는 택시 타고 어딘가를 가는 길에 오빠에게 잔소리(?) 했던 기억이 난다. “다 좋은데, 캐릭터에 서사가 있어야죠. 캐릭터들이 특징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때 이 오빠의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날카롭고 매서운 눈빛을 잊지 못한다. “글도 못 쓰는 게 어디서 입만 살아 나불거리는 거야?”의 하찮은 쥐새끼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지…후후후찍찍. 그렇게 후루룩 시나리오를 (이 오빠 혼자 다) 쓰고, 다음날 우리는 바로 촬영에 돌입했다.
당시 우리 조의 피디였던 L양이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을 맡았는데 L양의 연기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실실 난다. 지금 L양은 영화, 시리즈의 PD로 (이 친구를 아는 사람들에겐 어딘가 귀여운데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약간 차가운) 로봇처럼, 똑 부러지게 제작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웃긴 연기를 했다는 것이 놀랍다. 아니, 사실 연기는 웃기지 않다. 웃긴 연기를 한 게 아니라 그냥 이 친구가 애써 연기하고 있는 진지한 모습이 너무나 웃기고 귀여운거지.
사실 정말로 웃긴 건 내 연기였다. 동기들 모두 내 경탄할 만한 연기에 물개 박수를 쳐주었고, 당시 내가 한 대사는 KAFA 명대사의 전당(이란 게 있다면?)에 올랐으며 지금까지도 내 연기는 술안주 거리로 화자 되고 있을 정도다. 나는 (왜 때문에 우리 집에 굴러 다니던) 백한마리 달마시안 코트를 입은 악역으로 “서…설마…카…파?” 하면서 께꼬닥 죽는 나쁜 년 역할을 했는데 캬~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을뿐더러 아무도 못 볼 테고 내가 무덤에 누울 때까지 가슴팍에 꼭 쥐고 있을 예정이기 때문에 이렇게나 자화자찬해 본다-내글내맘).
여튼, L양은 연기도 열심히 잘했는데 피디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당시 우리가 (사실 나 때문에) 시나리오도 늦게 나오고, 촬영도 늦게 시작하게 되면서 시간이 너무 없었는데 해는 져가고 있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액션 장면을 찍을 것이 남았는데 이제는 편집을 시작해야만 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때 G오빠와 나는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 장면은 중요한 장면이니 일단 편집을 시작하고, 데드라인을 못 맞추더라도 이 장면 촬영은 내일 다시 공들여 찍자 뭐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L양이 안 된다며 지금 당장 그냥 이 장면까지 찍어버려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아주 무서운 표정으로(내말안들으면다때려부실거야의 표정이었달까). L양의 강력함에 우리는 결국 그날 액션 장면도 어찌저찌 상황에 맞춰서 찍었는데 찍다 보니 다 찍히더라(촬영을 잘해줬길래 가능했던 것도 있지만). 그렇게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편집까지 제시간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L양의 피디로서의 현명한 판단 덕분이었다.
그렇게 찍은 우리 조 작품은 당당히(?) 1등을 했고 위풍당당하게 아카데미 단골 상품인 외장하드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 1등은 다 내 덕이다^^ 왜냐면 나는 시나리오도 못 쓴다고 발뺌하며 빠져 있었고, 편집은 기계치라서 못 한다고 또 빠져있고, 음악이라도 찾으라고 하는 G오빠에게 “저는 원래가 음악을 안 들어요”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하면서 입만살은쥐새끼 눈빛을 또 받았음에도! 명 연기를 펼친 덕분이기 때문이다(^^모두 이해 쌉가능?) 사실 당시 상영 전에는 우리 조 완전 망했다, 완전 3류 영화 만든 것 같다는 걱정이 들어 (생각해 보니 나 혼자) 징징대고 난리를 피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되게 신기했던 게 다 함께 소극장에서 우리 조 영상을 보는데 관객들(동기들, 교수님들)이 하하 웃고 재미있어하는 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 기분은 정말 묘했다. 어? 이 장면에 웃네? 어? 여기서 숨죽이네? 그 공기를 같이 느꼈던 순간은 지금까지도 너무나 소중한 기억이다.
2차 워크샵은 다른 연출 동기 S군과 함께 만든 영상이다. 당시 우리에게 주어진 키워드가 ‘공포’였기 때문에 공포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로 했다. 1차 때 그래도 공동작업(이라 부르지만 발뺌하기만 했던 공동작업)을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각자 시나리오를 써보기로 했다. 이때는 서울에서 내려온 배우들까지 팀에 포함되어 함께 있었는데 배우들도 시나리오, 프리 단계부터 같이 모여 앉아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그런데 하루가 다 가도록 뭐 하나 제대로 나오지를 않고, 저녁이 와 버렸다. 얼마나 초조하던지, 그리고 얼마나 배우들에게 미안하던지! 내일 해가 뜨면 촬영을 해야 하니 배우들은 오늘 잠을 자두라고 보내고, S군과 나는 밤새 시나리오를 쓰기로 했다. 우리에게 해뜨기 전까지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아니 이놈의 S군은 시나리오 고민을 해야 하는데 어딜 간 거야? 발뺌 전문가는 나여야 하는데 S군은 뭔가 나보다도 느리게 글을 쓰게 느껴지는데 이것은 기분 탓인가? 설마 S군이 나보다도 더한 발뺌 전문가인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G오빠와는 또 다른 차원으로 S군과의 작업은 나에게 많은 교훈과 배움을 주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정말로 이 글을 이렇게 길게 자세히 적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다 까먹은 줄 알았는데 쓰다 보니 또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 하하! 그러므로 다음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쓰는 것으로… 그럼 이만..
(덧1. 워크샵 영상이나 아카데미에서 만든 작품은 저작권이 아카데미에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 확인이 귀찮은 관계로… 올리지 않고… 자기소개영상은 링크를 올려놓습니다. 악플을 다는 수고는 하지 말아주세여.)
(덧2. 그리고 참고로 자기소개영상에 나오는 사람은 저와 제 쌍둥이가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믿으라면 믿어주세요 그냥.)
(덧3. 미안하다 쌍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