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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한국영화아카데미(4)

(안부귀영화) 2.3-실습작

by 초별


20대가 되면 진로 고민을 하며 많이들 듣는 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내가 잘하는 것이면 그 사람은 천운을 타고난 거고,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잘하는 것이 아니라면,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즐기면서, 잘하는 것으로 돈벌이를 해야 한단다. 이 말은 20대뿐만 아니라 창작자에게는 더더욱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좋아하는 장르가 액션이지만 나는 로맨스를 잘 쓰는 작가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장르는 코미디지만 정작 나는 미스테리를 잘 쓰는 작가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예전의 나는 이 말을 들으면 콧방귀를 뀌었다. 흥! 그런 게 어딨어.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이든 아니든 상관 안 해! 난 내가 좋아하는 거 할 거야!......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30대니까(?). 제발 잘하는 거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비나이다 비나이다)


실습작을 찍기 위해 시나리오를 써야 했다. 그런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 기웃기웃 주변 동기들의 글을 살펴보면 모두의 글이 거짓말 안 하고 다 재미있었다. 이전부터 몇 줄로 이런저런 이야기 만들어 보고 싶다 써 놓은 것들이 있었지만 내 글들은 다 너무 하찮게만 보였다. 다른 친구들은 (심지어) 졸작 아이템까지 다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데 나는 아무것도 써온 것이 없게 느껴져 초조했다.


열심히 짱구를 굴려봤다. ‘제일 완성도 있게 썼던 게 뭐였지... 아! 여기저기 제작지원에 지원해 보려고 썼던 단편 시나리오가 있지!’ 오랜만에 파일을 열었다. <동수의 가든 콘서트>라는 제목의 이야기였다. 무명의 싱어송롸이터 동수가 아무도 노래를 들어주지 않자 정원에 인형들을 모아놓고 콘서트를 한다는 착한 이야기다(제목부터 착하다 젠장). 당시에는 이 글이 마음에 들었었다. 기승전결도 있게 느껴졌다(이럴 수가). 무조건 나는 이 단편을 찍어야지! 결심했던 글이었는데… 다시 읽어보고 좌절을 했다. 생각해 보니 면접 때 이걸로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고 줄거리를 말씀드렸더니 "오우쒸. 넌 만약 합격되더라도 절대 그건 하지 마. 재미없어." 하고 꽁지 교수님이 말하셨던 게 기억난다(혹시... 꽁지에 선견지명이 담겨있나...?)


아카데미 수업이 시작되고, 실습작 이야기를 정하기까지 두 달여의 시간 동안 나는 6개 정도의 아이템을 개발했다. 그중 세 편은 8-10장 분량의 시나리오로 썼고, 나머지는 트리트먼트만 써 놓고 버렸다(이건 나의 방식이었을 뿐 모두가 이런 식으로 쓰는 건 아니다).


실습장을 결정하기 전까지 수업에서는 계속 동기들과 서로의 글을 보고 피드백해 주면서 인상비평을 해야 했다. 동기들의 글을 보면서 확실히 깨달은 것이 나는 내 색채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영화과를 졸업했거나 영화를 조금 만들어보신 분들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말인지 알 것이다. 연출이 자신의 색채를 모른다...? 그 말은 정말 짬뽕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짬뽕... 맛있겠다… 나는 사실 짬뽕을 참 좋아한다(갑분고백). 그래서 그랬는지(?) 당시 내 실습작 아이템들이 바로 그 짬뽕들의 결정체였다. 그런데 이 짬뽕은 그냥 일반 짬뽕이 아니었다. 매번 짬뽕의 맛이 다 다른 특이한 짬뽕이었다. 왜냐면 그때의 나는 내 기분에 따라, 내 주변 사람에 따라, 모든 것에 온통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일 처음 쓴 글은 순수한 화가 주인공이 자살하는(응?) 이야기였다. 그때 후로 잊고 있다 몇 년 만에 이 글을 쓰느라 다시 읽어 보니 끔찍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썼지? 싶었는데 잘 생각해 보니 당시의 나는 '나'라는 자아가 컸던 것 같다. 창작자를 산업, 또는 시스템에 맞추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질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결국 창작자가 극단적 선택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마지막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런 이야기를 쓰게 됐던 것이다(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게 신기하게도 보인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별로라는 피드백을 너무 많이 듣고, 제발 제발 제발 만들지 말아 달라는 꽁지 교수님의 간곡한 부탁에 이 이야기는 내려놓게 됐다.


다음으로 쓴 것은 뭔가 이기적인 사람들과 사회의 면면을 냉소적으로 담아보려는 시도를 했는데 그 소재가 마약 김밥이었다. 마약 김밥집에서 정말로 마약을 넣은 김밥을 팔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하하하하(웃음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음). 이 이야기는 당시 동기들, 꽁지 교수님에게 아주 놀림받곤 했다. "야. 마약 김밥에 마약이 들어있었다는 얘기가 재밌냐?" 마약 김밥에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하는데 정말로 마약이 들어있다는 반전! 기가 막히지 않나? ……….. 괜히 우겨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군. 심지어 코미디 장르도 아니다. 하... 치욕스러운 내 과거여... 그 이야기도 최근에 어이없어하면서 다시 읽다가 깨달았다. 당시의 나는 봉준호 감독의 <지리멸렬> 같이 뭔가 그런 느낌을 흉내 내고 싶었다는 것을. (마약김밥으로..? 하하하하하)


그 후 쓴 어떤 아이템은 단편조차 안 될(요즘으로 치면 쇼츠 정도의 느낌의) 이야기도 있었고, 어떤 것은 졸작으로 만들어야 할 사이즈의 이야기도 있었다(이 이야기는 사실 지금도 꽤나 마음에 든다). 그런데 여기서 포인트는 이 모든 이야기가 다 장르가 다르고, 이야기의 규모도 다르고, 기승전결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뒤죽박죽 짬뽕이었다는 것이다.


동기들의 아이템들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영화과를 졸업한 친구들도 많았으니 적어도 10분 분량의 단편을 찍으려면 어느 정도 규모여야 하는지, 이야기를 어떻게 10장 정도 안에 담아야 하는지, 기승전결은 어떻게 넣는지, 내 영화의 톤은 무엇인지 중 하나정도 씩은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그때의 삘대로, 느낌 가는 대로 아무거나 다 다른 것들을 쓰고 있었으니... 피디과, 촬영과 동기들이 나랑 팀을 먹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이 백번 이해가 된다.


그렇게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내가 한 것은 꽁지 교수님께 매달리기였다. 나를 안 만나주려는 교수님을 붙잡고 징징대고, 도망가시면 기회를 노리다 사무실에 불쑥 찾아갔다. 이 아이템 중 뭐가 재미있냐고 물어보고, 서울에 가 계시면 메일을 보냈다. 꽁지 교수님은 사람이 맨날 이상한 말이나 하고, 아재 개그나 날리고, 사람을 놀리면서 슬슬 긁고, 괜히 자극하고 그러는데 묘한 킥이 있다. 그렇게 이상한 짓(?)들을 하고 있다 보면 회색 꽁지머리로 통찰이 쑥 들어오는 걸까? 가끔씩 툭툭 던지듯 "이건 재미있고 저건 재미없어. 2,5,6번 중에 골라서 가 봐." 이런 말들을 하시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말들이 맞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게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속으로 '뭔 소리야. 내 맘대로 해야지.' 하고 있으면 책상에 앉아 담배를 말면서 슬쩍 한번 내 표정을 보고는 덧붙이셨다. "저 청개구리. 니 맘대로 하겠다고 생각했지?" 하하하하하! 그러면 우리는 같이 웃었다. 꽁지 교수님은 눈이 반달처럼 돼서 허허허 웃으시고, 나는 하하하! 안뇽히계세요! 하면서 사무실을 도망 나와 버렸다. 그리고 당연히 내 맘대로 했고.


그렇게 실습작을 정했다. 실습작의 첫 제목은 <심부름값>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이야기는 시나리오로 썼을 때만 해도 완전한 미스테리 영화였다. 당시 내가 자주 이야기 나누던 J오빠가 미스테리를 좋아했는데 그래서 미스테리 영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또 이 오빠는 시나리오도 아주 깔끔하게 잘 써서 항상 감탄하며 시나리오를 읽곤 했는데 그렇게 읽고 또 읽다 보니 생전 써본 적도 없던 미스테리 느낌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생각해 보면 나는 예전부터 남의 글 흉내를 꽤나 잘 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을 좋아하는데 오늘은 무라카미 같은 문체로 써볼까, 하면 그런 느낌으로 글이 써진다. 그런 따라 하기 능력(?)이 당시 시나리오를 쓰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J 오빠의 글을 보며 전체적인 글의 구조, 미스테리한 사건 전개 방식을 배웠다면 G오빠에게는 깔끔한 시나리오 작법 문장들을 배웠다. 시나리오를 읽고 있으면 카메라의 움직임이 보였기 때문이다. 촬영감독들이 좋아할 시나리오 작법 방식이었다. 또 H양에게는 감정선을 담은 인물들의 미묘한 대사들에 감탄하면서 나도 그런 대사를 써보고 싶어 했던 기억도 난다(대사가 제일 어렵더라).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치면서 프리 준비에 들어갔다. 아니 들어갔어야 했는데 하나도 제대로 준비를 못 했다고 하는 게 맞다. 왜냐면 나와 같은 팀을 이룬 피디와 촬영이 다들 다른 연출의 작품도 맡게 돼서 같이 준비를 할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동기들 중 연출은 8명이었는데 촬영은 5명, 피디는 4명이었다. 그러니 촬영과 피디가 각자 두 작품씩을 해야 했다. 그래서 당시 촬영과 피디가 다른 작품을 하는 동안, 나는 혼자 배우들을 결정하고 미리 이것저것 준비를 해놔야 했다. 정말… 막막했다. 차도 없고 운전도 못 하니 로케이션 헌팅을 다닐 수도 없고, 로케가 안 되니 미술을 준비할 수도 없고, 그저 시나리오를 쓰고 수정하고, 콘티를 짜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라고 당시에는 생각했지만 이건 웃기고 짬뽕(짬뽕?)인 헛소리다.


당시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는데! 하는 안일하고 게으른 생각으로 그저 소극적이게 있었던 것이다. 차도 없고 운전도 못 하면 버스 타고 자전거 타고라도 돌아다니며 로케이션 헌팅을 바쁘게 해야 했고, 그래서 빨리 로케 결정을 하고 미술도 준비하고 그래야 했다. 다 사실 어떻게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단 그건 미뤄놓고 자리에 앉아서 할 수 있는 것들만 했으니… 도대체 내가 왜 그랬나를 지금 생각해 보니 며칠 몰아서 휴가(!)를 내고 부산까지 내려와 나를 도와주기로 한 (불쌍한 운명의) 쌍둥이를 기다리고, (역시나 불쌍하게도) 나와 같은 조가 되어 자기 것들 촬영을 마치고 나면 나를 도와줄 연출과 동기들을 기다렸던 것이다. 나는 정말… 한심하고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나는 참 대책 없고 뻔뻔했는데, 고맙게도 많은 이들이 (자의 반은 없고 거의 타의 반, 협박반으로) 도와주었다. 촬영감독이었던 S군은 시간이 나면 나를 자기 차에 태우고 로케이션 헌팅을 함께 했다. 차에서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도 하고 온갖 수다를 엄청 떨었던 기억이 난다. S군은 (촬영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감각적인 친구였다. 뭔가 특이한 앵글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하는 게 재미있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자고 하면 무조건 오케이여서 좋았고 말이 잘 통했다. 그런데 고집도 있긴 했다. 함께 콘티를 그리던 때가 생각나는데 당시를 떠올리면 제일 미안하고 고마운 동기가 또 있다. 애니메이션과의 P군이다.


당시 (그렇게 하라고 정해진건지, 아니면 애니과의 배려 덕분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 기수의 실습작 콘티는 애니과 두 명의 동기들이 다 그려주었다. 2명이었으니 각자 4 작품씩 그린 것인데 자기들 작품도 해야 하는데 애니과도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담아야 했을 것이다. 우리 실습작 콘티는 P군이 그려주기로 해서 S군과 나, P군 이렇게 셋이 교실에 모였다. P군은 아마 몇 시간 정도 그리고 끝날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더랬지… 그러나 컷 하나를 어떻게 찍을지 결정하는데 S군과 나는 거의 뭐 한 시간씩 토론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나는 이런 식으로 하고 싶은데 하면 S군은 그것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거나 안 될 것 같으면 더 좋은 컷들을 생각해 보고 이렇게 저렇게 의견 조율을 했다. 그러다 보니 불쌍한 P군은 펜을 잡기는커녕 그냥 앉아서 자신의 소중한 시간만 째깍째깍 보내야 했던 것이다.


나도 정말 다른 사람들 배려하고 살피는 사람이다(정말?) 정말이다(정말!?) 정말인데… 이게 참 내 작품을 하고 있으면 약간 눈이 뒤집히는 건지, 옆이 안 보이는 건지… P군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걸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불쌍한 P군… 미안한 P군… 그런데 하필이면 이 P군이 우리 동기들 모두에게 천사라고 불릴 정도로 착했다는 것이다(정말 비극이군). 동기들끼리는 (세상사가 다 그렇듯) 서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끼리끼리 조금 더 친하고, 덜 친하기도 하고, 치고받고쌍욕하고의절하기도하고(응?) 그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든 동기가 P군만큼은 다 좋아했다. 그 정도로 착해서 P군은 그 한 컷도 못 정하고 대환장 토론만 벌이고 있던 교실에서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다 한참 뒤에야 우리는 P군의 시간이 소모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우리끼리 먼저 정하고 나중에 부탁하겠다고 돌려보냈었다. P군아… 다시 한번(두번세번네번백만번) 미안합니다. 아니 사실 백만 번이 아니라 천만번 미안해야 하는구나. 쓰다 보니 또 생각났는데 실습 작품 촬영 후 소품을 돌려주기 위해 내가 P군의 차를 빌렸다가 부산의 좁디좁은 골목 때문에(핑계지만) P군의 차를 조금 긁어버리기도 했다. P군에게 미안하다고 돈을 내겠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해서 염치없이 고맙다고 했던….엉엉엉난쓰레기야.


영화는 사람을 쓰레기로 만든다. 진심이다. 나는 아카데미에 들어온 후,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후 수백 번, 수천번 누군가에게 쓰레기 같은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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