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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한국영화아카데미(5)

(안부귀영화) 2.3 - 실습작(2)

by 초별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할 예정이라 작품 링크를 올립니다. 이렇게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안 된다면 내리겠습니다. 연락 주세요 아카데미~(연락안오겠지?흐헤헭)

https://youtu.be/bEL6hihqXh0?si=JnBOnbExjfOfQluA

심부름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 수십 편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다른 이야기들이 그 안에 존재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의 장르는 단 하나다. 모두 <전쟁 영화>라는 것.


한 편의 영화를 찍어내기 위해 수많은 주인공(배우와 스태프)들은 전쟁을 치른다. 정말 치열하고, 죽을 것 같은 그들만의 전투다. 각자 자신이 해내야만 하는 전투들도 있고, 다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전투도 있다. 나 역시 많은 전투들을 해야 했다. 여러 가지가 떠오르지만 이 이야기를 만드는데 제일 힘들었던 나의 전투 중 하나는 로케이션이었다.


로케이션은 피엠(프로덕션매니저), 촬영과 같이 틈날 때마다 돌아다녔는데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로케는 세 군데였다. 심부름센터, 남자의 집, 여주인공의 집. 남자의 집은 촬영감독과 돌아다니다가 부산 범일동의 매축지 마을이라는 곳을 추천해서 가보게 됐는데 너무 독특한 마을이라 마음에 쏙 들었다. 이 집들 중 어느 곳으로 확정 짓느냐는 또 다른 문제였지만 어쨌든 대체적으로 이 마을에서 골목길이든, 집 문 앞이든 찍자고 많이 어렵지 않게 픽스가 되었다.


여주인공의 집은 깨진 타일, 쓰레기 더미 등 버려진 집 느낌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보다가 영도에 갔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부산을 잘 알고 있던 동기 중 하나가 영도에 있던 아파트를 추천해 줘서 갔는데 정말로 공포 영화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한 여름이었는데도 그 아파트가 있는 언덕을 올라가자 축축함이 느껴졌고 차가운 음기에 소름이 돋았다. 아파트 바로 앞에는 관리되지 않은 채 수풀이 무성한, 초라한 놀이터가 있었는데 왜 때문인지 사람도 안 탄 뱅뱅이(회전무대)가 조금씩 계속 돌아가면서 끼익 끼익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시 사진을 엄청 많이 찍었는데 여기는 졸작 때 공포영화를 하게 된다면 꼭 다시 와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것이 뱅뱅이다

그 후 학교 뒤쪽 광안동 재개발지역 주택마을이 있다고 해서 올타구나 하고 그 마을을 열심히 걸어 다녔다. 바로 학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쯤이라서 이동이 편리하다는 큰 장점이 있었고 혼자서도 여기저기 돌아볼 수 있었기에 틈만 나면 주택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문 너머로 정원을 엿보기도 하고, 열린 곳은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완전 폐허라서 정말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고 곧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집들도 많았다. 그렇게 찾은 집 중 하나가 마음에 들어서 밤에는 어떤 느낌인가 싶어 밤에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 그때는 촬영감독과 함께 방문했었는데 집 마당이 주된 촬영 장소라 마당을 보고 싶어 고민을 하다가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아예 살지 않는 집이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생각 없는 일이었던지… 이후 재개발사무실에 촬영 허가를 받으러 갔다가 재개발 담당자가 cctv로 봤는지 엄청 혼을 내셨다고 한다. 죄송하다고 싹싹 빌고(내가 빌었던 기억은 없으니… 아마 당시 피엠이었던 가엾은 동기가 빌었던 것 같다) 나중에 그 소식을 듣고 나도 사무실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때 사무실 가던 날이 기억난다. 아주 화창하고 더운 여름이었다. 점심시간이라 근처 충무김밥 집에서 밥을 먹었다(쓸데없이 먹은 것은 또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나의 두뇌…) 혼자 식당에 앉아 있는데 사무실에 가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래서 충무김밥을 천천~히 먹었는데 이놈의 충무김밥은 왜 이렇게 양이 적게 느껴지던지. 너무 순식간에 먹었네 싶은 것이다. 이러면 이제 사무실을 가는 일 밖에 안 남았는데 우엥 어떡해… 하면서 또 천천~히 걸었다. 나는 원래는 걸음이 엄청 빠른데 이 날 만큼은 그때 죄송했다고 사과드리는 것, 그리고 촬영 허가를 해 달라고 이야기해 보는 것, 그것들을 다 말하면서 어색하지 않은 척, 꼿꼿한 척, 자연스럽게 웃는 척, 어른인 척하는 그런 것들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근처 마트에서도 한참을 뭘 사야 하나 천천~히 고민하다가 비타 500을 들고 사무실에 갔는데… 역시 사람은 미리 걱정하면 안 된다. 사무실에 아저씨 두 분 정도와 여자분 한 분이 계셨는데 학생이 뭘 이런 걸 사 오냐면서 한사코 안 받으시고 학생들이 나눠먹으라고 도로 가져가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함부로 담 넘지 말라고 하시며 촬영을 허가해 주셨다. 허허허허허. 감사합니다 천사님들. 세상은 아직 아름답구나~~~


그렇게 여주인공의 집까지 정하게 됐는데 가장 문제는 심부름센터 로케였다. 이 로케는 지지리도 구해지질 않아서 가장 많은 시간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주말 하루를 통째로 (정성일 과제도 못 하고!) 피엠 동기와 온갖 장소들을 돌았던 날도 있는데 처음에는 인력사무소들을 돌아봤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런 사무실의 느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온갖 건물들을 다 쳐다보며 돌아다니다 학교로 돌아가려는 해질 무렵, 문득 어떤 건물 2층의 점집이 눈에 들어왔다. 왜인지 저 장소를 봐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미안함을 무릅쓰고 그곳을 들렀다. 그때 점집 문은 닫혀 있었고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유리문이었다. 문 너머로 코를 박고 살펴보는데 수북이 쌓인 문서들과 커다랗게 녹아내린 양초가 테이블에 한가득 올려져 있었다. 아주 묘하고 특이한 곳이었는데 나는 뭔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당시 피디나 다른 스태프들은 ‘심부름센터’라는 이미지나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묘사로는 이런 장소는 전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그렇게 묘사를 해놓지 않았으니!) 그래서 나 역시도 그치? 이런 데는 아니겠지? 하면서 눈치 보며 돌아섰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내가 끌리던 곳으로 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다 만들고 보니,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나는 일반적인 미스터리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특이한 분위기를 원했다. 우리 세상 속에 있지만, 우리는 몰랐던 이들만의 세상. 그런 것들은 사실 상업 영화라면 돈으로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저예산이라면 얼마 안 되는 예산이라도 미술에 힘을 주거나, 미술에도 힘을 주지 못한다면 로케이션이라도 기가 막히게 잘 구해야 했는데 당시에는 그런 것들은 알지 못했다.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이 영화의 톤이 무엇인지 나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연출인 내가 모르고 우왕좌왕하는데 어느 누가 알 수 있으랴. 결국 하루 종일 돌아본 로케이션 헌팅은 다 허탕으로 돌아가고, 촬영 막판에야 그냥 학교 건너편 제일 가까운 인력사무소를 피엠 동기가 (고맙게도) 섭외해 줘서 선택의 여지없이 그곳으로 심부름센터 로케를 정하게 됐다.


두 번째로 기억나는 전투는 우선순위와의 싸움이었다. 실습작의 러닝타임은 10분, 2회 차에 100만 원의 예산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100만 원의 예산이라 함은… 사실 어디에도 돈을 쓸 수가 없다는 얘기다. 하하하. 배우들에게 교통비 정도밖에 못 주고, 숙박조차 나의, 스태프들의 자취방을 내주어야 하는 여건이었다. 그 외에는 정말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 로케이션 렌탈비, 식비 등에 쓰면 끝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술에 돈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미술이 잔뜩 된 이미지들만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현실과 내 머릿속 이미지의 갭은 상당히 컸다. 그 와중에 나는 내가 욕심내야 할 것과, 욕심내지 말아야 할 것의 우선순위를 몰랐다.


영화를 (고작 몇 편) 찍어보니, 이건 미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연출의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덕목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는데 당시의 나는 그런 건 다 모르겠고 그냥 내가 상상했던 그 분위기가 중요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팀버튼, 장 피에르 주네, 웨스 앤더슨 같은 감독의 영화들을 특히 좋아해 왔다. 애니메이션도 아주 좋아했다. 애니에서만 볼 수 있는 판타지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취향은 초보이자 돈 없는 영화를 만드는 데는 최악의 취향이었다. 팀버튼, 장 피에르 주네, 웨스 앤더슨은 다 미술이 아주 빠방한 영화들을 만드는 감독들이기 때문이다. 미술, CG가 많이 필요하다는 건 결국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돈 돈. 그놈의 돈. 그렇게 되면 선택권은 두 가지가 있다. 돈이 안 드는 미술을 할 수 있는, 현실감 있는 드라마 장르를 할 것인가. 아니면 사비를 들여서라도 욕심을 부려서 어떻게든 구현해 낼 것인가. 나는 둘 다 선택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나에게 이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기 때문에. 하하하! 이 얼마나 어이없는 상황인지. 나는 내가 쓴 이야기가 미술이 잘 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가 허접해 보인다는 그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요구하기만 하는 (현실, 주제파악 안 되는) 욕심쟁이 연출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괴로운 사람은? 가엾은 스태프들이다.


나는 심부름센터가 무언가 특이하게 보였으면 했다. 또 여자의 집 정원이 불길하고 수상한 느낌이 들었으면 했다. 그에 더해 여자의 집 정원에는 닭과 닭장도 있어야만 했다. 당시 학교에서 좀 떨어진 곳에 고물상이 있었는데 몇몇 동기들은 미술 소품을 그곳에서 구했다. 조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함이었다. 나도 그때 고물상에 처음 가봤었는데 평소에는 별 생각이 없다가 영화를 찍으려는 상태에서 그곳엘 가니 그곳은 아주 그냥 소품 천국이었다.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런데 막상 열심히 뒤져보니 이 이야기에 맞게 쓸만한 건 많이 없었고 가격도 그렇게 막 싸지는 않았다(고물상 아저씨가 우리의 필요성을 눈치채고는 날쌘돌이처럼 가격을 올리신 것 같다). 그래서 일단 홀드해 놓고 어떤 소품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며 광안리 해변을 걷다가 우연히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광안리의 유명 맛집인 언양불고기 집 골목에 있던 커다란 고무 다라이였다.

대형 고무 다라이


여자 집 정원에 이게 수십 개가 있다면 수상하게도 보이고 묘하게 이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미술 소품에 이 다라이를 추가해 놨다. 그땐 몰랐지. 이런 소소한 선택과 욕심이 얼마나 사람들을 고달프게 할 것인지… 나중에 자기 작품 끝내고 제작부 역할을 한 G오빠와 나를 도와주러 휴가 내고 내려온 쌍둥이가 렌터카에 이 고무 다라이들을 꾸역꾸역 차로 날랐는데… 이 다라이는 사람이 두 명쯤 들어갈 정도로 큰 크기였기에 차에 실리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차에 묶고 이고 해야 했는데 한 번에 하나씩 밖에 이동을 못 해서 또 계속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원래는 수십 개, 최대한 많이…를 주장했지만 G오빠와 쌍둥이가 눈빛으로 쌍욕을 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한…대여섯 개 만이라도…?”라고 하며 쭈굴쭈굴 요구했다. 두 사람은 계속 눈빛쌍욕(?)을 하면서 다라이를 이동시켰다. 그들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넌 도대체 하나도 제대로 준비도 안 해 놓고 사람들의 도움만 바라면서, 이런 미술들은 또 포기 못하고 계속 요구만 하냐? 양심이 있어?‘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이딴 하찮은(?) 고무 다라이에는 집착했으면서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미술 소품은 너무나 쉽게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여자 주인공이 사실 뱀파이어였다는 반전이 있는데 그 반전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에서 당연히 뱀파이어의 뾰족한 송곳니가 드러나야 했다. 그래서 부착형 송곳니를 주문해서 소품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분이 곤란을 표하셨다. 라미네이트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걸 붙이면 라미네이트가 망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라미네이트가 뭔지도 몰랐고 그게 그렇게 비싼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럼에도 붙여달라고 요구를 했다. 그런데 라미네이트가 혹시나 떨어지게 되면 몇백만 원이 든다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영화 예산이 100만 원인데 저게 부러지면 그렇게 큰돈이 든다고..? 그 말에 나는 쫄아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히 배우 입장에서는 두려울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내가 실제로 그 송곳니를 내 이에 붙여보고, 접착력이 어떤지도 테스트해보고, 그렇게 해서 괜찮을지 파악한 후 만약 접착력이 그렇게 세지 않다면 최대한 약하게 붙이고 잠깐만 찍자고 설득했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런 것을 부착해야 한다는 말을 미리 하지도 않았었고, 미리 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도 몰랐었다. 그러니 촬영 준비를 하는데 배우가 난색을 표하고, 이 이는 그렇게 비싸다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네, 그냥 포기하고 일단 찍자.. 하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실습작 상영을 하는데 교수님들의 어마어마한 호통을 들었다. “야, 뱀파이어라는 반전이 있는 영화에서 뱀파이어 송곳니가 안 보이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뱀파이어야? 제정신으로 영화 찍은 거 맞아? 피는 또 왜 없어? 목을 물었으면 피라도 나야지 “ 그렇다… 피… 왜… 그것을 준비할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인가… 호통은 계속 이어졌다. ‘고무 다라이도, 살아있는 닭도 다 스태프들이 고생해서 준비해 줬는데 그거 하나를 카메라가 제대로 비춰주질 않고 흘러만 가고 있으니 제대로 담긴 게 없어 담긴 게!” 하… 정말 뼈 때리는, 맞는 말씀이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촬영을 한 거지? 생각이 있었나? 이 정도면 나 뇌를 집에 놔두고 촬영장에 갔던 거 아닐까?


다 지나고 보니 당시의 나는 계획한 컷들을 제시간에 찍어내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편집을 할 때 보니 없는 컷들이 있어서 아쉬움도 많았다(당연하다! 계획마저 어설픈 게 많았으니까). 자신이 없으면 팔방마스터 까지는 아니라도 마스터샷, 각 인물들 OS 샷들만이라도 찍어 놨어야 했는데 무슨 깡(?)으로 도대체 왜(?!?!) 사이드 투샷만 찍었던 것인가… 게다가 스태프들이 쌍욕 하면서 준비해 준 미술 역시 제대로 보여주질 않은 것도 통탄할 일이고 너무나 미안한 부분이었다. 그때 나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아니 뼈에 타투를 새기는 심정으로 다짐했다. ‘졸작을 찍을 때는 <회차 안에 찍자>를 목표로 잡지 말고 제대로 영화 좀 해보자.’


과연 졸작에선 이때의 목표대로 내가 제대로 영화 좀 했을까? 하하하하하. 그럴 리가 있나. 실습작에선 스무 개쯤의 전투를 했다면, 졸작에선 거의 뭐 200개의 전투를 해야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는 모른 채, 한 번 경험했으니 이걸 기반으로 레벨업 해봐야지 하는 (헛된) 희망을 당시의 나는 품고 있었다. 영화라는 게 신기한 게, 아무리 무언가 찍어봤어도 그 경험이 그대로 경력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거다(물론 도움이 되긴 할 거다).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니 경력이 쌓이기보다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모든 걸 처음 시작하는 느낌인데 나는 이번의 후회들을 기반으로 레벨업을 해보겠다며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었다.


덧) 당시의 제작 과정에 대해 말하자면 사실 이야기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저 즐겁기만 한 것도 아니고, 종합예술로서 여러 다양한 인간들이 함께 작업해야 하는 과정이다 보니 관계 안에서 싸우고 때리고(응?) 상처 주고, 상처받는 등의 못생긴 부분도 상당히 많죠. 그러나 저는 늘 그렇게 하고 있듯, 편파적으로다가, 제가 쓰고 싶은 것들만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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