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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Mar 21. 2018

놀이판에는 함께 놀 친구가 필요하다

정치하는엄마들x세이브더칠드런x사교육걱정없는세상주최 '놀궁리 집담회' 원고

 골목길 풍경과 마을 공동체에 대한 국민적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기억하는가? 친구들과 쉴 새 없이 골목을 뛰놀던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물들였다. 드라마 속 장면들에 심취하다가도 저도 모르게 “요즘 애들은 바빠서 놀지도 못하고 자란다”는 걱정의 말을 내뱉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로부터 ‘어린이의 놀 권리 증진’을 위한 권고를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대한민국 아동·청소년의 행복 지수를 비롯한 충격적인 수치들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놀이로 행복한 아이들’을 위한 사회적 책임이 반짝 관심을 받는 것 같았지만 이내 사그러들었고, 그나마의 노력들 역시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정책 실현으로 연결되지 못해왔다. 초저출산을 우려하며 출산 장려를 위한 다각도의 예산 집행과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대한민국 아동·청소년의 심각한 인권 실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왜 놀지 못할까? 이 간단한 질문의 답을 찾다보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가닿는다. 대한민국 아이들이 ‘공부하느라 시간이 부족해서 놀지 못한다’는 사실은 여러 자료들을 통해 이미 입증되었다. 골목길과 마을은 사라지고 미세먼지는 재앙이 돼버린 요즈음 ‘마음껏 뛰어 놀 공간이 없는 현실’ 또한 아이들의 놀 권리를 박탈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놀이터에 나가도 놀 수 있는 친구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의 여가시간엔 주로 실내에서, 컴퓨터 앞에서, 혼자서 노는게 익숙한 시대다. 오늘날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어른들의 사회와 놀랍도록 닮아있다.


 유례없는 장시간 노동이 만연화된 사회, 종일반 가족이 익숙한 이들에게 ‘아이들의 놀 권리’는 (그 당위성과 별개로) 멀고도 부차적인 과제 중 하나 정도일 뿐이다. ‘아이들의 놀 권리’를 확보 하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어른들의 사회가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 어른들의 사회가 달라져야만 아이들도 잘 놀 수 있게 된다. 일례로, 가정에서 양육자와 즐겁게 놀고 적극적으로 상호 작용해 본 아이가 또래와도 또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개인에게 가정은 놀이를 배우는 최초의 공동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어떤가? 육아기 부모들은 늘 시간에 쫓긴다. 시간에 쫓기다 못해 출산·육아로 인해 일터에서 쫓겨나는(또는 쫓겨나듯이 떠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아이들과 함께 놀기는커녕 최소한의 돌봄을 지원하기에도 버거운 시대를 살고 있다. 아이들은 어떤가? 많은 아이들이 이른 시기부터 장시간 보육기관에 위탁된다. 보육 기관에서 적정한 돌봄과 놀이를 확보해 줄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현재의 교사 1인당 아동 수 및 유아교육·보육 기관의 물리적 환경을 고려할 때 기대하기 쉽지 않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느라 놀지 못한다는데, 그렇다면 양육자들은 왜 아이를 학원에 보낼까? 교육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학원’이란 과잉교육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영유아 및 저학년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학원의 또 다른 의미는 ‘대체 돌봄이 가능한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육아기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 불가한 현재의 사회구조는 엄마들의 경력단절 및 독박 육아와 같은 사회적 문제로 연결되고, 자녀 양육에 대한 과몰입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러나 저러나 놀지 못하는 아이들, 쫓기는 어른들. 악순환의 연속이다. 집에서도, 놀이터에서도, 동네 어귀에서도 친구와 놀 수 없는 아이들이 말한다. “그나마 학원에 가면 친구들이랑 놀 수 있어요.” 이 아이러니한 현실을 바꿔가기 위한 변화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돼야 하는걸까?


 이제 ‘놀 권리’에 대한 고민은 시·공간에 대한 고민과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족, 친구, 이웃 등)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진단하고 이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정치하는엄마들, 세이브더칠드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함께 하는 ‘놀이 작당’의 첫 모임,  ‘놀궁리 집담회(저출산 시대, 놀이로 행복한 아이를 만나고 싶다)’ 자리에서 우리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부모에게 아이와 마주 볼 시간을, 아이에겐 마음껏 뛰어 놀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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