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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Jun 16. 2018

20180616 다시 읽는 (악착같이) 육아일기

20161024 모순의 집합체

뚜뚜는 호기심도 집념도 대단해서 웬만한 실험은 놓치지 않고 다 해본다. 둘째와 지내며 맨홀 구멍에 손잡이가 있단 사실을 알았다. 꼭 한 번씩 열어 보는 아이. 돌멩이나 열매를 줍는 건 당연하고 가끔은 주차된 자동차 배기구나 이런 저런 구멍에 그걸 쑤셔 넣어보기도 한다. 빨래 건조대 펼치면 생기는 삼각형 안에 가부좌 틀고 앉아 있거나 냉장고 홈바가 열리면 거기 매달려 철봉을 하는 아이. 어제는 둘째의 이니셜 목걸이를 주문했다. 실제로 두번인가 실종된 적이 있다던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뚜뚜라면 우리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단 두려움을 느꼈다.


아마도 이 때 잠시 편했던 것인가보아 ㅋㅋㅋㅋㅋ 이 글을 쓰고 얼마 못 가 다시 힘들어졌단 글을 썼겠지 싶으면서 추억공유.


그래도 아이들이 제법 커서 친정 가족들에게 아이들 맡기고 대전 출장 가는길.


나오기 직전에 두 아이 성화에 "솔로몬 이야기에서처럼 엄마를 둘로 나눠야할 것 같아. 동시에 둘 다 해달라면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고 나선 길. "한 번에 한 사람씩만 말해! 아빠도(친정 아버지)! 정신 없어 정말 ㅋㅋ" 하고 나와 괜히 마음도 발걸음도 무거운 길.


간만에 육아일기 꺼내 곱씹으며 배시시 웃는다.

이것이 악착같은 육아일기의 힘.


#1)

아이를 낳았는데 왜 여적 배가 나와 있냐고 정후가 물었다. "왜 아직까지 배가 나왔어? 준후가 나왔는데 왜 안들어 가?" 그러게 말이다. 아직 7-8키로도 더 넘게 빠져야 하는데 좀체 정체된 몸무게로 상심한 나. 스스로의 뱃살을 응시하고 있는 나와 그걸 본 정후의 대꾸. "살쪘네~" "흑흑. 그치. 왜 안빠질까. 정후 땐 더 많이 쪘는데도 쭉쭉 빠졌는데..."


"아. 그건 동생이 아직 덜 나와서 그래. ㅋㅋM형은 동생 둘이잖아. 나도 동생 한 명 더 필요하거든." ㅋ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엄마 배가 아직 남아있는거였구나. 큰 깨달음을 얻었다. 며칠 뒤 거울 본 내가 또 상심해 묻는다.(나도 모르게 그만..;)

"후야. 엄마 너무 뚱뚱하지?" 그러자 후가...나를 빤히 보더니

"뚱뚱해도 안 뚱뚱해도 엄마는 예뻐."하고는 쿨하게 화장실 문을 닫고 나갔다. 이렇게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정후. 크는게 아깝다.


#2)

정후의 감성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요즘 통 말도 안 듣고 청개구리 네살 본능 폭발적으로 보여 주는 정후. 그러다가도 대뜸 뜬금없이 사랑을 고백한다. 끼륵끼륵 웃고뛰고 정신없이 놀다가도 갑자기. 나를 목 뒤에서 껴안으며.

"엄마는 내 천국이야."라고 한다든가, 어떤 맥락도 없이 다가와서는 "엄마 예쁘다. 이렇게 예쁜 엄마는 또 없어 정말."하는 식이다. 너무 자주는 아닌, 그러나 잊을만 할 때쯤 문득. 그래서 그의 마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리. 이렇게 예쁜 엄마는 또 없다는 정후와 그 고백에 버터구이가 된 나를 목격한 친정엄마. "니 아들이 그렇게 말해주니 좋으냐? 나는 그런 말 못들어봤는데.."하신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엄마 적어두질 않아서 그래. 신기루처럼 지나가서. 그치만 분명 나도 수많은 말로 엄마를 감동시켰을거야." 엄마가 웃었다. 맞다는 뜻이다. 삭막하고 때론 모질었던 지난 세월에 내가 위로고 희망이고 가장 가까운 벗이었다고 자주 말씀하시는 엄마. 그래서 준후 임신 때 그렇게 딸이기를 바라며 기도하셨던. 그런 외바라기 사랑이 대를 이어 흘러간다. 엄마는 나를, 나는 아이들을. 사랑은 연어처럼 거꾸로 오를 수 없는 것일까. 늘 미안하면서도 그러면서도 여전히 내 뒷통수 봐주는 엄마보다 아들 뒷통수를 더 많이 보고 사는 나. 엄마. 미안.


#3)

준후가 계속 안겨있다던 지난 글이 무안할 정도로 준후가 잘 지낸다. 어찌나 순한지(아직까지는) 엄마인 내가 미안할 정도다. 그런 모습에 누군가 하나님이 참 공평하시다했다. 정후만큼 준후 키우기가 힘들었으면 내 수명이 짧아졌을거라며. 남들 보기에 후 키우기가 되게 힘들었을거라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이성적으로 돌이켜보면 힘들었지 싶은데, 다른 애 키우는 것보다 배는 더 힘들겠단 소리도 자주 들었지만. 막상 키울 때나 지금이나 우리 애가 상대적으로 더 힘든 아이란 생각을 크게 못하고 지내왔던 것 같다. 무게, 반경, 욕구 등 매사가 무척이나 넘치는 아이였던만큼이나 웃음도 에너지도 위로도 넘치게 던져주는 아이였기에..그렇게 정후는 이전에도 오늘도 나의 뮤즈다.


공동육아를 가면서 후가 묻는다. 오늘 누가 선생님인지, 엄마는 뭐할건지. 다른 이모는 곧 아기 나올지 몰라서 집에 쉬러가고 나는 장보러 나갈거라니. 후가 꽉 잡은 손의 온기만큼이나 따사로이 말을 건넨다. "엄마도 이모처럼 나 데리러 오기 전에 꼭 쉬고 와. 힘드니까." 혼자 계실 할머니를 뒤로 하고 서울집에 오는 길. 인사하고 차가 출발하자마자. 내 귀에 대고 "엄마. 근데 할머니 외롭지 않으실까?"라고 묻는 아이.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기를 무척 바라도 기다리는 아이. 언제 또 친구 집에놀러갈 수 있을지 학수고대하면서, 코 앞에 집을 두고도 스쿨버스마냥 모든 친구를 다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서야 제집에 들어오는 아이. 화가 난 엄마를 달래주려고 굳이 굳이 무거운 의자를 찾아와 눈높이를 맞춰 말 건네오는 아이. 문득씩 후가 내게 준 수많은 감동들이 벅차올라 혼자 뭉클해지곤 한다. 아이와 함께하면서 행복이 이렇게도 평범하고 일상적인데 숨어있었단 사실을 알고 놀랐다. 아무 것도 아닌, 뉘집에나 있는, 그렇고 그런, 그야말로 별 일 없이 사는 오늘이 너무 아깝고 귀해서 끊임없이 적고 찍고 새겨두는 나다. 무엇보다 마음 깊이 숨겨둔다. 언제든 지칠 때 오늘의 날들을 꺼내먹으려고.


지난 주 그 날도 역시 친구들 집 앞까지 데려다 주던 중이었다. 회차 해 집에 돌아갈 지점에 다다랐는데도 친구들과 더 놀고 싶은 정후가 조르기 시작했다. 결국엔 울며 불며 집에 왔다. 잔뜩 속상했는지 엄마없이 친구들이랑 노는게 좋다며, 엄마는 못하게 하는게 많다 한다. 안그래도 유사 빈둥지 증후군을 앓고 있는 내가 되려 울컥했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과 만나면 더 이상 엄마손을 필요로 하지 않고 저들끼리 화장실 가고 저들끼리 회의해 결정하고 저들끼리 약속을 잡고 저들끼리도 충분히 즐겁다. 건강한 과정인걸 너무 잘 알겠는데 기특하기 그지 없다가도 이전처럼 늘 함께 다닐 수 없다는 사실에, 이제 더 가까워질 시간보다 더 멀어질 시간만 남은 것 같아서...쓸쓸해지곤 했는데. 그 날 정후의 말이 나를 울렸다. 정후 몰래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흘리고는 후를 재우며 웅얼거렸다. "후야. 천천히 커." 그러자 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 내가 빨리 크는게 아니고.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가는거야."한다. 후가 너무 빨리 커서 이제 엄마아빠보다 친구를 더 많이 좋아하고 친구들하고만 놀고 싶어할까봐 가끔은 아쉽기도 하단 내 말에 말로는 "나중에도 엄마 계속 사랑할건데? 엄마 안 떠나고 같이 있을건데?"한다. 그치만 나는 안다. 그게 너의 진심이고 진실이면서 머잖아 곧 부질 없는 약속이 돼 버릴거란걸. 나의 유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열살 땐가. 아빠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딸아이 시집갈 게 벌써 아쉽다 하셨다. 나는 손사래치며. 어떤 일이 있어도 남자가 좋아서 엄마아빠를 떠나는 일이 없을거라 했다. 요즘도 아빠는 늘 그 얘기를 하신다. 나도 그 날의 정취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때 결심이 얼마나 순수하고 강력했는지도. 그리고 그 약속이얼마나 부질 없이 깨지고 말았는지도. 그래서 벌써 그 날이 아쉬운 나. 제발 천천히 제발 좀 천천히 오기를 기다리는 나. 그러다가도 비오는 날 창밖이 보이는 천장높은 카페에 앉아 감성돋는 노래와 커피에 흠뻑 빠지고 싶은 어제같은 날이면 전에 없이 멜랑꼴리해져버리는 나. 그러면서도 어깨에 다리에 엉겨붙은 아이들 얼굴에 녹아버리는 나. 그러다가도 어떻게든 아이들 일찍 재우고 혼자 쉬려고 용쓰는 나. 모순의 집합체. 그래도 제일의 쉼은 자는 애 옆에두고 맘 편히 쉬는거. 그래서 이 글 쓰고 있는 지금이 더 없이 행복하다. 나처럼 단순한 사람도 또. 없을겨.


#4)

마법처럼 만 3세가 지나니 꼬꼬마가 사라졌다.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이젠 제법 어린이답기 말하고 웃고 떠들고 뛰어논다. 정확히 말하면 날아다닌다. 거의 백일만에 후와 단 둘이 놀이터에 갔는데, 훌쩍 커버린 정후 반응에 깜짝 놀랐다. "엄마. 발이 보이잖아. 거기 숨으면 안되지. 제대로 숨어야지."하면서, 나를 찾을 땐 또 최고조로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직선으로 오면 바로인데 굳이 빙 돌아 나를 긴장시키는데, 훌쩍 커버린 그 모습이 어느새 소년이었다. 형아들 따라 미끄럼틀 통 위에 올라가 놀고, 길가의 잡초를 보고서도 누가 이걸 갉아먹었을지 추리해가는 과학소년이 돼간다. 가장 아까운건 그의 엉뚱섬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는거.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누구것인지 추리하면서. 자기는 머리가 짧으니 자기보다는 긴 사람의 것이라고 엄마인 나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올챙이가 개구리를 잡아먹었단 할아버지 이야기에 그 작은 올챙이가 제 몸보다 훨씬 큰 개구리를 어찌 먹느냐며 따져든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사춘기에 접어든 딸의 엉뚱섬이 무너진 순간 쌩뚱맞게 그 장면을 보고 엄마들이 울었다. 웬일인지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기저귀 뒤집어쓰고 도망가서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의 그 엉뚱함 천진난만함이 조만간 끝날거란 사실이 그 때도 미리 아쉬웠는데. 예상보다도 더 빠르게 세월이 지나간다. 엄마 껌딱지 자처하던 아들에 그렇게 마음 졸였었건만 이젠 그 날들이 까마득해져버렸다. 너무도 쿨하게 친구들과 놀겠단 아들이 익숙해져버린 오늘의 풍경.


젖먹이 땐 불분명했던 아이의 기질이 세월과 함께 점차 뚜렷해져가는데. 어떤 모습은 너무 날 닮아서 아쉽고 어떤건 또 나를 좀 닮았으면 해서 아쉽기도 한 엄마 욕심. 엄마가 되기 전의 난 미래의 가정, 자녀에 대해 여러 그림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어쩌면 안달을 냈을 법도 하지만. 참말 요상하게도 막상 아이를 만나니 그간 그렸던 이상형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자녀는 이상형대로 기르는게 아니라 운명처럼 받아들여야한다는걸 자연스럽게 알게 됐기에. 내가 때로 부족해도 그 모습 그대로 용납받길 원하듯이 아이에게도 그렇게, 본연의 기질이 잘 꽃필수 있게 잡초만 뜯어주면 된단걸. 어느새 알 것만 같아서.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과제를 붙들어매는 두 아이의 엄마인 나. 2호가 깼다. 애보러간다 오늘 일기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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