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충분한 하루.
연이은 행사 일정을 마치고 10시 넘어 귀가한 밤, 기대반 걱정반으로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었다.
음소거모드로 비밀번호를 누르면서 떠오른 말.
"고요히 잠에 든 나의 세계"
예상은 적중했다.
큰 아이는 평소처럼 이미 잠들었고
보통 늦게 취침하는 작은 아이도
웬일인지 아빠 품에 안겨 잠들어있다.
퇴근 후 또 육아로 출근한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책상에 앉았다. 복잡한 하루가 떠올라 쉬이 잠에 들지 못하곤 결국 몇 자라도 적으려고 컴퓨터에 앉았다.
오전 10시 아이들을 등원 시키고 이동을 시작해 용무차 11시 반 누군가를 만났었지. 오후 1시 좀 전에 국회로 이동 간단히 식사하고 행사 준비를 하다보니 어느새 2시. 한국여성의정에서 진행하는 북콘서트에 패널로 참석했고, 5시부터 진행된 (한국여성학회 및 여세연 등 공동주최의 포럼) "차이와 사이의 페미니즘 정치" 토론을 마치고 귀가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절대 늦지 말라던 아이의 철저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서점에 들릴 일이 없을 것 같아 나온 김에 서점에도 아주 잠깐 들렸다.(때마침 귀가 동선 내에 서점이 있었기에) 주초 출간된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생각의힘 2018)"를 찾아보고(정말이지 훑어도 못 봤다. 책의 존재만 확인한 정도) 귀가했다.
감사하게도 오늘은 어머니께서 오후 4시에 아이를 픽업하러 인천에서 서울까지 와주셨고 퇴근한 남편이 어머님과 함께 아이들을 보고 있을테니 별다른 걱정은 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내심 아이들이 잘 있을련지,
어머님께서 힘드셨을텐데 식사는 드셨을지,
요즘 부쩍(사실은 늘상) 피곤한 남편 컨디션이 괜찮을지
틈틈히 걱정을 하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잘 마쳤다.
오늘도 우리 모두 수고했다.
아이들을 재우는 시간은 내게 있어
나름의 힐링과 기쁨으로 가득 찬 시간이다.
물론 매일 반복되는 일이고
자지 않으려는 아이들과
재우려는 나 사이에 갈등이 인다거나
혹은 잔뜩 잠이 온 아이의 짜증 때문에
내 기분마저 상해버린다든지 하는 식의 일들이
늘 잠복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래도
아이들을 재우지 못하는 날엔
괜시리 마음이 허전하다.
아기새마냥 내 품으로 찾아드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움,
내게 자신의 몸을 기댄 채
잠들듯 말듯 말을 걸어오는 아이들,
그러다가도 내가 좀 더 길게 말할라치면
"엄마. 미안. 내가 지금 정말 졸려서 그러는데.
우리 그냥 내일 얘기하면 안 될까?" 라며 내게 등 돌려
눈깜짝할 새 잠들어버리는 아이의 모습,
그 와중에 구태여
형과 엄마 사이 가운데 자리를 쟁탈하고자 몸부림 치는
세살배기 둘째의 간절함까지,
이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
그래서인지 오늘처럼 문을 열고 들어 와
"고요히 잠든 나의 세계"를 만날 때면
홀가분하기보다는
도리어 서운한 감정이 든다.
누군가는 내게
"유독 아이들에게 애틋한 것 같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쓸데 없는 모성을 버리라고"도 한다.
결국엔 둘 다 맞는 말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자식 덕후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나에게 육아 공동체와 육아 동지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란 걸 전제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오늘처럼
연이은 스케쥴로 정신 없던 날이면,
"내가 이렇게 몸부림친다한들
세상을 얼마나 더 바꿀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지금의 활동을 위해
내가 현재적으로 지불하고 있는 기회비용의 값이
더더더 크게 다가온다.
내가 지금 지불하고 있는 댓가들을 곱씹어 볼 때면,
아무래도 손해 같아 보이는
나의 이 모든 활동과 그럼에도 이 일을 지속해 나가려는 나의 노력이 새삼스러워진다.
엄마의 정치를 말하고 실천하는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제도권 정치인이 되는 일?
단체를 키우는 일?
경력 단절의 경험을 딛고
사회운동가로 직업적 전향을 하는 것?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빼앗기지 않는 전업활동가로서의 삶, 그 자체.
오늘의 하루.
그 안에서 획득한 소소한 행복과 만족들.
설혹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한다해도
나의 두 세계-조성실이란 내 본연의 자아와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정체성-를 분열시키지 않고 살아낸
오늘의 하루는
그대로도 충분하다.
나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아이들과 부대끼고
엄마란 힘들고도 가슴 벅찬 정체성을 붙들고 씨름하는
이 모든 시간들 속에서 크든 작든
나 자신도
아이와 나의 관계도 더 단단해져가고 있으니까.
그 여정에서 매일 조금씩 더
우리 "함께" 행복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내딛어 가고 있으니까.
그러다보면 일말이라도
( 더 많이 바꾼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이가 살아 갈 세상 역시 조금은 바뀌겠지 싶어진다.
물론 단체가 생각만큼 잘 커가지 않고,
불안정한 현재의 내 처지가 만성화된다면
나 역시 실망하기도 하겠지만.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건
오늘 하루 우리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치열했고
후회 없이 사랑했다는 사실.
분열되지 않고도 나로서 엄마로서 살아남았다는 사실.
때때로의 아쉬움과 미안함조차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한뼘 더 성숙할
기회가 되었다는 사실.
굳이 잠든 아이들 사이를 테트리스마냥 비집고 들어간다. 아이들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한 아이 한 아이의 온기를 느껴본다.
아이들은 잭의 콩나물처럼 매일같이 쑥쑥 자라고.
별다른 거름이 없이도 탄실하게 커간다.
아이들이 품 안의 자식으로 머물러 있는 시간. 생각보다 짧고도 긴 시간.
이 시간은 어쩌면 아이들이 아닌
부모된 우리를 위해 허락된 선물이 아닐련지.
다시 한 번 유년을 살아보라고
후회 없이 사랑하라고
조건 없이 용납 받으라고
그렇게 별다른 목표 없이도 충분한 하루를 누려보라고.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세월이 아닐련지.
잠든 아이들 곁에서
악착같이 쌓아둔 육아일기 한 편을 꺼내 먹는다.
달콤하도 아련하고 유쾌하게.
오늘 밤 놓친 아이들의 소란 대신
켜켜히 쌓아 둔 우리의 세월을 꺼내 곱씹는다.
세월도 참 빠르다.
오늘의 일기를 또 꺼내 맛 볼 훗날을 기대하며.
오늘의 육아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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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강아지똥에도 감사한 밤.
정후가 똥을 싼다.
화장실 바닥으로 흘러가는 똥을 보며.
엄마 이제 똥이 죽었나봐.
응. 강아지똥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고 썩어지는거야.
정후의 '죽은 똥' 발언에 오버랩되는 내 20대의 자화상
나를 지독히 괴롭혔던 여러 의제들.
"너는 특별하단다"를 제아무리 곱씹고 주변의 격려와 칭찬을 아무리 들어도 더 큰 세상의 기준과 소리에 묻혀 괴로워했던 날들.
그랬던 내가 만난 참 반가운 이야기. 「강아지똥」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흰둥이가 개똥을 길가에 누고 갔다. 옆에 있던 흙덩이가 비웃는다. 똥 중에도 더러운 개똥이라니. 아무도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너무나 슬퍼하는 강아지똥. 그러다 만난 민들레 한 포기. 부탁할게 있다며 네가 나와 함께해줘야만 꽃을 피울 수 있노라고. 나를 한껏 안아달라한다. 강아지똥은 너무나 기쁘고 감격하며 기꺼이 썩어진다. 그 자리에서 한떨기 민들레가 아름답게 피어난다. 민들레 홀씨를 따라 강아지 똥이 어디든 간다. 아름답고 향기롭게. 그림과 함께 보면 감동이 배가된다. 권정생 선생님의 간결하면서도 깊이있는 문장력과 함께.
정후에게 이 책을 읽어줄 때마다 J도 나도 코 끝이 찡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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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져가는 것
가녀린 것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대한 애정
거기에서 우러나는 존중감.
고상함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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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 얘기가 이토록 고상하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니.
이런 작품을 읽어줄 때면 나는 누리지 못했던 수준 높은 문학작품을 향유하는 정후가 부럽기도 하다.
우리의 이야기.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에
혼에
마음에
울리는 이야기
우러나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이야기꾼들이 더더 이어지고 많아져야 하기만 소원할 뿐.
정후를 키우면서 자주 되새기는 결심.
"절대로 네가 특별하단다"에서 파생되는 우월감을 심지 않으리라.(물론 「너는 특별하단다」 작가는 내 해석과 다른 관점에서 작품을 썼을 것이다. 권정생 선생님과 어쩌면 같은 관점에서. 그런데 안타깝게도 뿌리깊게 출세지향적인 우리 문화에서 자라난 많은이들이. 나처럼 특별하다는 의미를 혼란스러워한다. 특별하다면서 지금 내 삶은 이게 뭐야. 이건 내 옷이 아니야. 난 좀 더 특별해야해. 이건 너무 진부해. 평범해. 만족이 안 돼.하며)
힘을 다해 가능한 끝까지 사고할 수 있는 아이가 되기를.
솔깃하게 현혹해오는 세상의 달콤한 주문에 세뇌되지 않으리라. 세뇌시키도록 놔두지 않겠다.
너도 나도 특별하다 주문처럼 내뱉다 결국
누구 하나 위로받지 못하는 그런 메세지가 아니라
도리어 내 객관적 초라함 또는 월등하지 못함을 직시하면서도 그 안에서 충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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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아름다움를 보고
스러져가는 것의 아픔을 느끼고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의 의미를 민감하게 깨닫는 아이로
나로 자라갈 때,
이기적으로는 내 아이의 삶의 질이 결정되고
나아가 민족과 세계의 평화가 도래함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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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 새벽마다 시골 교회 종을 치시며(시골교회 종치기로 시무?하며 「몽실언니」나 「강아지똥」 같은 작품들을 써내신 권정생 작가님) 써내러가셨을 한 자 한 자.
그에게 영감을 주신 하나님.
마침 권샘 눈 앞에서 스러져 민들레를 꽃피워 이 소설의 진짜 모티브가 돼 준 (이름 없는) 개 똥 한 점에도 감사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