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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Nov 24. 2017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촛불 그리고 1년(1)

오늘 오마이뉴스 신지수 기자님과 인터뷰를 가졌다. 2016년 겨울을 빛냈던 촛불의 의미, 그 이후의 변화, 그리고 여전한 과제들에 관해 개인의 삶에 초점을 두고 진행되는 인터뷰였다. 나를 포함해 너댓분의 인터뷰와 칼럼이 시리즈로 연재될 거라 들었다. 아이들과 촛불 현장에 나갔던 사진을 공유해달란 사전 요청에 어젯 밤 아이들을 재우고 지난 일기들을 훑어보았다. 희미했던 기억이 생생히 살아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주 나올 인터뷰로, 분량상 누락된 부분들은 이후의 포스팅으로 이어 써볼까 한다.

그에 앞서, 지난 일기들을 공유한다.


20161106

잠든 정후를 유모차에 태워 밀고 준후를 아기띠에 안아서 1층 차로 이동한 후, 둘을 차례로 카시트에 옮겨 놓은 후에-청계광장으로 출발. 가장 가까운 민영주차장에 차를 맡기고 애들을 담요에 덮어 촛불을 들었다. (총궐기 때는 아이들이 위험할까 싶어 대신 평일집회에 참석. 첫날은 애들 추스리느라 늦게 도착해 행진하는 뒷모습만 바라보고 다음날엔가 제대로 촛불을 들고 시민발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늘 생각만 하던 나는, 비겁하게 적절한 경계에 서 있기를 좋아하던 나는. 이제 없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때론 처절한 삶의 그 자리에서 나는 배웠다.. 더욱 단단하게, 분명하게, 상처받을까 주저하지 않고 반드시 말해야만 하는 어떤 것들에 대하여. 좋은 사람으로, 정 맞지 않을 수준으로만 맞춰살기엔 한 번 뿐인 생애가 너무 아깝고, 내게 주어진 책무가 너무 무겁기에.. 조성실 개인으로도, 엄마로서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분노해야 할 상황에 주저 없이, 말해야 할 것에 대해 거침 없이, 움직여야 하는 때 지체없이 그렇게 살아내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앞으로도 더욱이.


아빠를 만나러 서울대병원을 향하는 길. 사직 터널부터 구석구석 배치된 타격대와 경찰 버스들을 보더니 정후 입이 떡 벌어진다. 경복궁 너머까지 오자 사뭇 심각해진 정후가. 속삭였다.


"엄마. 도대체 이 깜깜한 밤에 왜 이렇게 경찰아저씨들이 많이 있는걸까?"


좀 더 가 안국역에 다다르니 정후가 외쳤다.


"도대체 어떤 도둑이길래!!!!!"


마침 그 전 날엔가 서대문형무소기념관에 다녀왔던 후는, 종각역에서 마주한 수많은 노숙자 아저씨들을 의식할 경황도 없이 경찰의 위세에 압도당해 떨었다. 경찰아저씨들이 자기나 엄마를 잡아다 서대문 감옥에 가둘까 겁난다고. 다행히 의경으로 보이는 경찰 몇명이 후에게 곁눈질 윙크도 해 주고 몰래 몰래 손도 흔들어주어 마음이 풀렸지만.


캐도 캐도 끝이없는 이번 사태. 대체 어떤 도둑이 감옥에 들어가나 제대로 지켜보자.



20161117

시국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낙심되다가도, 아이들에게 세상을 만나게 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답답한 마음 가눌 길 없다가도... 집에 돌아와 쫑알대는 정후 얼굴을 보고있자면 새로운 희망이 꿈틀꿈틀 마음에 움트기 시작한다. 그래. 아무리 희망이 없어보여도,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생명이 살아갈 세대를 위해서라도..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으로 살자하면서.


정후 데리고 시위가는 길. 종로 1가에서 내리잔 말을 듣곤 정류장을 지나칠 때마다 후가 숫자를 세내려가기 시작한다. "종로 세가, 종로 두가, 종로 한가...엄마 그럼 우리 종로 한가에서 내리는거지?"


지난 주말엔 아이들이 다칠까봐 나와 친정아빠만 시청광장에 나갔다.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바짓가랑이를 붙잡던 정후가 결국 나의 외출을 허해주었다. 한참 챙기고 있는데 후가 슬쩍 방으로 들어오더니 나를 뒤에서 안는다. "엄마. 차조심하고. 많이 보고싶을거야."

돌아온 내 모습에 환하게 웃는 정후.
경찰아저씨에게 잡혀갈까 걱정했다던 정후가,
자기 전 샤워하며 혼자 외쳤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만 네돌도 안 된 아이의 입에서조차. 하야란 단어가 오르내리게 된 오늘. 축제인듯 시위인듯 굉장한 시민의식이 눈부셨던 현장에서, 하야송을 따라부르며 춤추는 유초등학생들, 아빠 목마타고 사람 구경다니며 겁먹어 울기도 하는 아이들, 화장실 가고 싶다 힘들다 주저앉는 아이들 손 붙잡고 냅다 뛰는 이들의 면면을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민주주의여 안녕 이란 노래를 외칠 때만 해도 우리 자녀들은 평화통일이나 세계평화를 외치리라 기대했는데 다시 이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게 됐단 연사의 발언에...슬픔이 쏟아진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값없이 누려온 민주가. 이리 좀먹을 때까지 설마 설마 했다니.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미국 대선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댓글들을 본다. 나는 이기지 못했지만 그간 후회없이 달려왔다고 조만간 후배 중 누군가가 반드시 유리천장을 깨주리라 믿는다던 힐러리의 연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리만큼, 오늘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처참하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먹칠해도 유분수. 민주주의 뿐 아니라 여성 리더십의 권위 역시 몇십년은 퇴보하고 말았다.


과연 나는 오늘 어떤 역할을 해내고 있는걸까.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닐게다. 나 아닌 다른 모두도 대단한 무력감과 애써 싸워 서 있는 거겠지. 아이를 키우는 대단한 일도 사실상 똥치우고 젖먹이는 순간 순간 하찮다 느껴지는 일들, 그 소소함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소소한 촛불이 모여 민심이 되고. 소소한 관심이 모여 변화를 이룬다. 진실을 향해서 소소하게 꾸준하게 그래서 강력하게.

기만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적 행동이다    -조지오웰 「1984」


20161118

#1) '정치적'인 사람과 '정의감'이 있는 사람은 엄연히 다르다.

정치적인 사람은 부러움을 받을 지 몰라도 진실한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정의감이 있는 사람은 손해를 볼지언정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그 손해라는 것이 문제다. 역사에 획을 그을만한 양심 선언은 커녕, 부조리한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기만 해도 다소간의 손해를 보기 마련이니까. 나이가 들고, 살림을 책임지게 되면, 점점 그 손해가 무서워진다. 생활인들의 현실에선, 공명심으로 인한 영광은 짧고 손해는 길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름을 인정받기 힘든 우리 나라 같은 사회에서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군소리 없이 별 말 없이 중간 정도 가는 사람이 앞선다. 그래서 부모들도 자식들이 무탈하게 현 체제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기만(?)을 바라고 가르친다. 다시 말해, 실속있게. 그럴 땐 시야를 들어 하늘을 봐야한다. 더 멀리, 더 오래, 더 길게. 기껏해야 몇 년, 길면 몇 십년 조금 더 좋은 집에서 좋은 차 타고 걱정 없이 살 것 같아도, 권력이 무상하고 부자가 삼대를 못 간다고 결국 정의가 이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것만큼 치욕스러운 인생도 없다.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던 20대. 솔직히 말해, 정의보다 정치적인데 더 관심이 있던 건 아닌지. 심각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한다.

 박근혜 계엄령 시나리오설에 대해 조응천, 추미애 의원이 언급했다. 진정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지난 오십여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별 무리도 아니지 싶어졌다. 불과 몇달까지만 해도 제발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믿어진다니. 주변의 군인들이 하나 둘 카톡방을 떠난다. 잘은 몰라도 단속이 있나보다 했다. 썰전에서 유시민 작가가 평하기를, 조원동 전 경제 수석만해도 전형적인 엘리트 관료로 누군가를 압박할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한다. 경제수석이라는 영광적인 타이틀과 함께 주어진 책임. 그 책임을 다한 대가로 검찰조사를 받는다.

이번일에 연루된 이들은 짧게 길게 저마다들 많은 것들을 누렸을 것이다. 사람들의 부러움, 경제적인 윤택함, 등 유무형의 많은 것들을. 얼마큼의 댓가를 치루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의 치욕은 영원할 것이다. 치욕마저 모르고 살아간다면 도저히 이길 재간이 없다. 그런 문화, 사회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게 될까 두렵다. 적극적으로 불의에 빌붙지 않았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침묵하고 묵인한 많은 사람들. 내 전부를 걸어봤자 계란에 바위치기도 안 될 걸 뻔히 알기에 그저 하루를 버틸 수 밖에 없는 지위의 많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양심을 잃어버린 몇몇은 어쩌면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변하기를 기다리는건 어리석다. 그들이 변할 수 밖에 없도록 압박해야하는데 그 단초는 깨알같은 일반 사람들의 변화다. 별 것 아닌 내가 민주의식을 갖지 않으면, 별 것 아닌 내가 세상 돌아가는 일을 지켜보지 않으면, 별 것 아닌 내가 계속해서 침묵한다면. 더 나빠질 뿐이다. 좋아질거라 기대할 수 없다.

정치적인 사람이 되지 말 것.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 되기.



#2) 밀실 정치는 그만.

대통령이 교계 어른들을 찾아뵀다 한다. 온통 제 귀에 좋은 말 해 줄 사람 일색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말에 뭉뜽그려 이루어지는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선전을 듣고 있노라면 분노가 파르르르. 자고로 하나님의 뜻은 널리 선포된다. 골방에서, 우리끼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앙이라는 단어에 애매모호하게 묻어가면서 그렇게 추진되는 모든 공사(公事)를 반대한다. 사람간에도 공사(公私)간에도 바운더리가 중요한 법. 기독교 신앙의 기본은 주권에 대한 인정이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라고 고백한다.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그런 고백을 하고 있지 않다면, 자신의 신앙을 진실로 점검해봐야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내 인생의 주인이시고, 무엇보다 인류의 역사를 견인하시는 우리의 주인이시다. 이것이 신앙 고백의 핵심이다. 정치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면,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해 올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으로 타인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대화의 핵심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존중이란 사실을 주지하면서. 내 논리가 떨어질 때도 있고, 그럼에도 신앙적 양심으로 아니라고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선교의 시작이다. 내 논리로, 목사님 말씀으로, 교조적인 태도로 상대방을 승복시키는 것이 선교일까? 하나님의 마음으로, 겸손한 태도로, 그러나 분명하게 대화해 나가는 것이 선교일까.

 

#3)

아이를 키우다보면 이렇게 다들 소시민으로 전락해버리는거구나 싶어 내 자신의 처지가 답답해진다. 국가의 주인으로서의 민주시민이 아니라, 수수방관 무책임한 소시민으로, 그저 내 자식, 우리 집, 내 밥벌이만 생각하고 지키는데 아둥바둥하게 되는구나 하면서. 그러나 사실 답답한 건 내 처지가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내 사고방식이다. 대단한 일, 대단한 포부, 대단한 역할, 대단한 능력만을 표방해 온 지난 삶의 잔재. 실패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대단한 일을 기대하다 아무 것도 못한다는 것. 로또 한 방을 기대하고, 역대급 다이어트를 기대하면서, 정작 당장 뛰어나가 일하지 않고 운동하지 못하는 안일한 태도. 이상주의자들이 쉽게 범하는 실수. 그걸 뛰어넘지 않으면 이상에 절대로 닿을 수 없다. 현실에도 못 닿고 무너져앉고 말게 불보듯 뻔하다. 푸쉬업 백개를 하려면 당장 하나를 시작해야 하듯이, 사법고시를 패스하려면 당장 앉아서 책을 펴야 하듯이, 큰 일의 시작은 지극히 작은 일에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당장 내가 있는 이 자리를 바꾸기 시작하면 된다. 오늘날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예전처럼 탑스타가 부재한 오늘. 숱한 스타부대가 쏟아져나오는 오늘, 나 한 사람이 대단한 스타가 되어 세상을 바꿀 수 없는 법. 이럴 때 일수록 별다를 것 없는 일반 시민의 역할, 바로 내 역할이 중요한 법.

우선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 아이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어른으로 사는 것. 아이는 나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모난 돌이 되지 말라고, 성공하라고, 능력이 있어야 남만큼은 산다고 가르치기에 앞서.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라고, 제 도리 하는 어른이 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보여줄 수 있는 삶. 바로 그 것. 책상이 생긴 정후가 대뜸 하는 말이 "공부하는 책이 필요해. 내 책 말고 엄마 책 같은 공부하는 책." 그런 후에게 주고 싶은 말. 후야. 공부란 책에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시작해 책과 함께 답을 찾되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야, 그제서야 공부가 공부 노릇 하는 법.

#4) 여자라서, 엄마라서 못하는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든다기보다는 사실이 그렇다. 엄마의 전쟁이란 다큐에서 네덜란드 엄마들을 보았다. 하루나 이틀 선택해 근무하지만 정규직과 같은 처우와 경력으로 인정돼 엄마가 주양육자가 되면서도 일을 병행할 수 있는 구조. 몹시 부러웠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도 잘 해나간다는게 절대 쉽지 않지만 더욱이 오늘 대한민국 엄마들은 아이와 엄마인 나 자신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부성이 넘치는 아빠들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지만 지불해야하는 기회비용이 너무 커서 주춤할 수 밖에 없는 현실. 포기했어도 힘에부쳐 주저앉아 울게 되는 현실. 무엇보다 상당수는 보다 좋은 질의 교육을 위해서라기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것을 지불하고 산다.  인구절벽을 걱정하며 결혼해라, 애 낳아라 젊은 세대를 쪼아대는 정책을 바라보면 한숨이 가득. 이것이 최선인가? 다음 세대를 위해, 나라를 위해 애를 낳고 또 어떤 땐 애를 낳지 말라는 구호의 유효기간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진정 개인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아이 낳기를 강요말고, 아이도 갖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주라고. 물론 정책입안자들도 하고 싶지만 못하는 거겠지. 정말 모르는 거겠지. 답답하구먼.

20161127

드디어 다 잔다. 나만 빼고. 고요한 집 엇갈리듯 교차하는 여러 숨소리가 나름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춰내려간다.


오늘 광화문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이만에 가까운 인파가 촛불로 하나됐다. 나오지 '못한' 4천 8백만의 지지자가 아직 남아있다고 외치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지만 괜찮다. 고작(?) 2백만이 보여준 놀라운 시민 의식만으로도 압도적인 위엄을 내뿜고 있기에. 무엇보다 처참한 우리들 심경에 분명한 희망을 심어주는 치료의 장이요, 해독의 장이요, 심판의 장이 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 데리고 광화문을 가다가 순식간에 굵어진 눈빗방울과 때마침 잠들어버린 큰 아이, 코막혀 숨조차 못쉴 지경인 백일 꼬마를 생각해 마음만 남겨두고 돌아왔다. 그래도 416 연대 행진은 보고 싶어 굳이 그 막히는 길을 지나쳐왔다. 대신 8시 소등으로 함께한다. jtbc 뉴스를 통해 현장생중계를 듣는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가 흘러나온다. 정후가 함께 흥얼거린다. "아빠! 이거 내가 좋아하는 노랜데!".. 그리고 덧붙인다. "근데 아빠. 그 배에서 누나랑 형이랑 두 명이 살아나왔어." 얼마 전 함께 본 영상 때문이다. 세월호 그 날로부터 육개월도 더 지난 어느 날 치뤄진 단원고 여학생의 장례, 그 추모의 자리에서 생존자 두 명이 편지글을 읽어내려간다. 소녀가 통곡하며 말을 잇지 못한다. 나도 울었다. 정후가 묻는다. "엄마. 저 누나는 그래도 배에서 살아나왔어? 살아나온거지?" 세월호 추모곡과 함께 그 날의 장면을 다시 끄집어내는 정후. 아이는 그 죽음의 의미를 언제쯤 알게될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두 아들이 엉켜노는 장관을 먼발치서 바라보다가 문득씩. 혹여 우리 중 누군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된다면, 그게 부모든 형제든 누가 되더라도....형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제법 큰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고. 버틸 힘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부모가 떠나면 서로 의지하고. 자식이 떠나면 남은 자식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후는 요즘 죽음에 관심이 많다.


어떤날엔 친구들과 놀다 뜬금없이 이런 얘길 했다. "얘들아. 그런데 우리가 크면 엄마 아빠는 다죽어." (어른들은 우연히 듣고 모른 척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아빠가 혼잣말로 끄덕이며 "그래. 서로 서로 형제를 의지하며 살아라."라고 말했다.) 그 얘길 들은 한 친구가 슬퍼하자 "그래도 OO이 할아버지는 더 오래 사실거야."(뭐지? 뭐에 근거해서?) 더 웃음이 터져나온 포인트는 그 얘길 들은 친구가 쾌재를 외치며 "오예! 우리 할아버지 더 오래 산다. 만세 얘들아."라고 한 것.


그것 말고도 "우리 할아버지가 죽는지" 묻기도 하고, 어떤 날은 엄청 진지하게 "엄마도 죽어? 죽지마 엄마~"하고선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몇 주 전엔 열 나는 준후로 인해 꼭 가야하는 장례식장에 나 대신 정후를 보냈다. 아빠와 함께 간 정후가 상을 당한 삼촌을 꼭 안아주고 힘내라 전했다 한다. 사람이 다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정후가 나름으로, 그래도 삼촌만큼 어른은 돼야 그 정도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걸까. 얼마 뒤 내게 "나 어른 되기 전에 먼저 하늘 나라 가거나 죽으면 나한테 맴매 백대야. 절대 안 돼" 엄포를 놓은걸 보면.


누구에게나 죽음은 슬프다. 두렵기도 한 미지의 세계. 떠난 사람도 사람이지만 남겨진 사람에게 더 큰 과제가 남겨지기도 하는 그런.


우리에게도 죽음의 상처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인물이 있다. 셀수 없는 사람들의 무고한 목숨은 뒷전에 두고, 자기 부모의 죽음 그 슬픔에만 천착하고 있는듯한 어떤 사람. 과거의 상처로, 애먼 순진함으로, 선의로 포장되고 날조된 구태의연한 시나리오에 지쳐간다.


엊그제였나. 아침부터 청와대 의약품 구매목록(마늘주사 백옥주사도 어이없는데 비아그라 등등의 의약물) 특종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아연실색하는 내게 정후가 묻는다. 대통령때문이라고 했다. 정후가 되묻는다.
"대통령? 트럼프여?" 아니아니. 미국대통령 말고. 우리나라 대통령. 우리 촛불집회 갔던거. 박근혜. 하니. 정후가 큰소리로 선창한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그것이 알고싶다 세월호 7시간 방송 이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노래를 여러 번 들었다. 정후가 가끔씩 후렴구를 흥얼거린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참말로 네게. 침몰하지 않는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를 보여주고 싶다.


20161211

무척이나 어수선한 한주였다.


국민적 열망과 공분을 한데 업은 탄핵표결을 앞둔 한 주였을 뿐 아니라 우리집 내치도 정신없이 바삐 흘렀다. 큰 아이는 어린이집에 한주간 가지않았고 지루함과 (동생에게 엄마를 뺏긴) 서운함을 용케 견뎠으며 다섯번째 팔이 빠져 밤 12시에 병원에 다녀왔다. 게다가 호흡곤란, 탈수까지 순식간에 오고간 영아기관지염으로 준후와 우리는 혼이 속 빠지고 말았다. 마지막 논문 중인 J와 대상포진 재발을 코 앞에 둔 내가 너덜너덜해진 한 주. 발뒷꿈치와 발목 관절이 아프다니 정후가 발뒷꿈치 각질 제거봉으로 어떻게 해보라한다. 피부 겉이 아니라 속 관절과 뼈가 아픈거라고 설명해주었다. 제 갈길 크기도 바쁜데 그 와중에도 나와 준후를 챙기는 정후를 보면 대견하고 짠하다. 동생 때문에 참고 있다며 문득씩 눈물을 삼키는 아이 마음 앞에 설 때면, 힘들고 벅차 곧 주저앉을것만 같은 마음에도 새삼 힘이 생긴다. 그래. 네살 아이도 제 몫을 버텨내는데 더 꿋꿋이 서 있어야지. 비바람이 불안하지 않도록. 내 몫까지 아이가 떠안지 않도록.


탄핵 표결 방송을 보려다 정후와 다퉜다. 다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뉴스를 사수하려는 나와 핸드폰을 끄려는 정후 사이의 실갱이. 후가 장난치며 화면을 끄고 나는 정색을 했다. 후가 참았던 울음을 복받쳐 쏟아내며.

"나도 나이들면 엄마 핸드폰도 못 만지게 하고 뉴스도 눈으로만 보게해줄거야. 손도 못대게 할거야!!엉엉어엉. 나는 누구랑 놀아 엉엉. 나는 좋아서 그런건데 엉엉.etc"

진심으로 가득찬 아이의 말에 한바탕 웃고말았다. 정후를 안아 달래며. 이 작은 아이도 아이와 노인이 힘이 없단 걸 아는구나. 때론 의도치 않은 부주의함조차 약자에겐 전횡과 폭압이 될 수도 있단 걸 깨닫는다.


준후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 진료를 받고 난 아이 울음이 멎질 않자 짐 채비를 시작하며 그 엄마가 말했다.

"그래. 울어라 울어. 나라가 망해가는데 너라도 울어야지."

그 말을 들은 나와 내 옆 아주머니가 동시에 고개를 떨궜다. 웃음과 처참함을 동시에 쏟아내며.


아이를 키우며 점점 강해지는 나를 느낀다. 때론 아이를 지키기 위해 때론 나를 지키기 위해.

입원을 권유하는 응급실 레지던트와 무언의 충돌을 했다. 이전이라면 내뱉지 못했을 생각들을 때론 가감없이 표현해내는 나, 그것도 단도직입적으로 또 직설적으로. 그럴때마다 내가 낯설고 또 자랑스럽다. 보다 단단한 어른이 되리라 보다 괜찮은 어른이 되리라 하면서. 나에게 내려진 처방. 오늘의 외로움, 오늘의 지루함, 오늘의 적적함, 오늘의 슬픔, 오늘의 고담함을 더도 말고 딱 오늘만큼만. 이기면 된다. 가끔은 그냥 견디고 버티는걸로.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하루가 되고만다.

삶이란 그런 법이다. 대단하면서도 한없이 간단한 것.


어제 잠자리에서 정후가 신이난듯 내게 말했다.

 "엄마. 오늘은 대단한 일이 있었어. 그게 뭐냐면. 내가 진짜 처음으로. 완전 처음으로. 치즈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한 번에 뗐어. 정말이야. 완전 안 찢어지고 통째로 한번에. 정말 신났어. 너무 좋아." 그러더니 곧 곯아떨어졌다. 아이들만큼 큰 선생도 없다. 그래 정후의 하루가 대단한 것처럼. 오늘 내 하루도 대단하게 그렇게.


요즘 날이 찹다. 따뜻한 집안의 온기는 늘 왜인지 모를 부채감과 함께 온다. 이 추운 날 비바람 막아줄 무엔가 없는 이들의 삶이. 새로운 가족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하루가. 손에 닿을듯 이만치 가까운데. 자꾸만 저만치 있다고 치부해버리는건 아닌지 마음이 무겁다. 내 행복이 달콤쌉쌀하다면. 우리 가족의 안녕이 달지만 않다면 그런 쌉쌀함은 애써 붙들고 삼켜야 하는 것이라 배웠다. 더 적극적인 의를 이루기 위해. 때론 내 과민함이 더 적극적인 의를 향할 수 있단데 감사한 하루.

한 아름에 아이들을 안는다.
내 아름 폭이 더 넓어졌으면.
내 마음 폭이 더 깊어졌으면.
넉넉히 쉬어갈 그런 바다가 되었으면.

그 날을 향해 오늘도 가는 나.
함께할 사람들을 기다린다.
함께하고 있어 감사한 오늘.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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