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것과 외로움 간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저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표현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앞선 글에서 진부해진 이 표현을 사용하면서 광장 공포증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렸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주춤해졌지만 피부색도 다르고 몹시 다른 문화 속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해외에 여행을 다녀오신 분이라면 "군중 속의 고독"이란 표현이 주는 섬뜩한 느낌을 막연하게나마 짐작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자신과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은 많은데 간단한 영어도 통하지 않아서 어디로 가야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 버스나 지하철을 탈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처지는 양호한 편에 속하고 지갑과 여권이 들은 가방을 소매치기당하거나 도난당했을 때 다행히 경찰서를 발견했더라도 도통 말이 통하지 않아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무척이나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경우를 상상해 본다면 주변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그들과 동떨어져 있는 당혹스럽고 두렵기도 한 느낌을 어느 정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를 요즘 젊은 사람들과 아직 성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적용해 보면 이른바 왕따를 당하거나 집단 괴롭힘의 대상으로 찍히지 않기 위해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서열문화와 그 규칙에 적응(?)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한 학급의 "짱"으로부터 시작되거나 그런 서열문화에 익숙해져 버린 성인이 된 젊은이들의 친구관계에서 그 관계의 규칙(?)을 제 맘대로 독선적으로 결정하는, 사회에 진출한 친구나 동료 사이의 "짱"에서 비롯되는 그런 서열문화에 말이지요.
교과서적으로 말해서 친구 사이란 학업이나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고자 격의 없이 어울려 놀 수 있거나 때로는 부분적으로라도 조심스럽게 속 얘기를 할 수 있는 관계일 것입니다. 그래서 서열 1위가 사실상 명령이나 지시를 내렸고 그 지시나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소위 그 그룹의 짱과 그를 추종하는 서열 두세 번째 친구들(?)한테 찍혀서 그 그룹으로부터 추방되고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나 이를 넘어서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겉으로나마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사이는 더 이상 친구 사이라고 부를 수 없고 심하게 표현하면 사실상 주인과 종의 관계에 불과할 것이겠지요. 그리고 친구 사이란 그중에 누가 독단적인 결정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그에 대해 때론 욕까지 섞어가면서 비난할 수 있는 사이일 것입니다. 자, 그럼 한 가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친구"라는 표현을 들으시면 어떤 광경이나 모습이 저절로 눈앞에 떠 오르시나요? 흐릿하게나마, 그리고 "친구란~ 해야 한다"는 당위로서가 아니라 오래 전이나 비교적 최근에도 친했던 친구 말이지요.
코로나가 돌기 전 저는 정조가 세웠다는 화성을 보기 위해 수원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꽤나 정갈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 화성을 뒤로 하고 이왕 먼 걸음을 했으니 온 김에 서울보다는 한적하고 공기의 질도 더 나은 수원을 천천히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수원에 살지 않고 수원의 지리도 모르는 저는 헤매지 않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서 머릿속에 화성의 위치를 기억해 두고서 목적지를 따로 정하지 않은 채 그냥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걷다 보니 어느 중학교 건물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고 이제는 추억의 음식이 된 떡볶이며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도 학교 정문에서 가까운 곳에 하나 있었습니다. 속이 좀 출출하기도 했고 오랫동안 기억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학교 앞 떡볶이 포장마차가 주는 묘한 편안함 때문에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우선 오뎅 하나를 간장에 찍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앳된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포장마차로 들어와서 컵 떡볶이 두 개를 시키고 그리 크지 않은 소리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소리도 크지 않았고 그 아이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아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그 광경을 옆에서 눈치채지 않게 물끄러미 보던 저는 좀 과장하자면 목이 좀 메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저 모습이야. 내가 어린아이들에게서 보고 싶었던 건 무한경쟁에 시달리고 학원 공부를 늦게까지 해야 하고 인간관계에서마저도 서열이 정해져서 숨 한번 편히 못 쉬고 늦은 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는 아래로 푹 숙인 채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아니라 속된 말로 요즘 뜨는 아이돌 그룹이나 젊은 배우를 짝사랑하면서 싸구려 잡지에 실린 그들에 대한 가십성 기사를 읽고 난 뒤 학교를 마치고서 친구와 떡볶이와 오뎅 국물을 맛있게 먹으며 그 가십성 기사를 가지고 편하게 수다 떠는 모습이었어"라는 말을 말이지요. 그리고 이내 좀 서글픈 느낌이 들었는데 너무도 당연한 일상의 그 광경이 무슨 천연기념물처럼 순간 아주 낯설고 희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마치 꿈꾸듯 또는 신파조의 '우정"에 대해 강변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요즘은 잘 안 쓰는 표현일진 모르겠지만 예전에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흔했기 때문에 무심코 썼던 이 표현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느새 흘러가 버린 옛 추억의 그림자 같은 그 표현 속에서 저는 다름 아닌 "사람", 그것도 종로나 명동 같이 북적이며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저 김 씨나 이 씨나 박 씨로 불릴지 모르는 그런 "사람"을 봅니다. 그런데 시절이 하 수상해져서 우리는 날카로운 비교를 통해서 남들과는 다른, 이른바 "경쟁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앞날이 마냥 탄탄대로일 것 같은 일종의 장밋빛 환상에 빠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뛰어난 경쟁력, 그게 뛰어난 영어 실력이든 가능한 만큼 차별화된 모습으로 한껏 포장해서 쇼윈도에 전시된 상품처럼 자신을 최대한도로 포장하는 능력이든 남들과의 비교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자 하는데 그 이유 또는 목적은 그렇게 해야만 이 살벌한 유교 자본주의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고 살아남아 돈과 권력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간 짜릿하고 흐뭇한 느낌을 주는 달콤한 돈과 권력이 교과서적으로 단지 수단이 아니러 지향하는 목적이 되어 버리면 수단으로 쓸 때의 효용가치, 즉 자기 자신의 주관적인 취향과 관심 때문이 아니라 마치 자기 마음에 쏙 들어서 입고 싶은 옷이 아닌데 그저 남의 부러움을 얻고 남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돈을 주고서 옷을 사는 것처럼 돈과 권력이 남들에게 자신을 과시하려는 목적 때문에만 추구한다면 그 돈과 권력은 건강한 수단으로서의 효용가치를 잃어버려서 금방 시들해져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권력을 한없이 추구하게 될 텐데 그 이유는 아마도 아직 소유하지 못한 돈과 권력을 취하게 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달콤한 환상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도 유효기한이 짧은 달콤한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권력에 대한 환상 말이지요. 그런데 제 눈에는 그렇게 경쟁력만 갖춘 사람에게서 "이건 어떻게 생각해?" 하며 얘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반문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돈과 권력이 없을 때,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해서 돈과 권력이 많이 부족할 때 서열화된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인간 취급도 못 받고 괄시당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하냐고 말이지요. 물론 지금의 한국사회가 무슨 먹이 사슬처럼 연속적인 갑과 을의 관계로 칼 같이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리고 어디 하소연할 때도 없이 일상 속에서 갑의 무지막지한 횡포, 그것도 "이래 봬도 내가 말이야" 또는 "매니저 어딨어, 매니저 나오라고 해!" 같은 유치하기 짝이 없고 말도 안 되는 과시성 횡포 때문에 공포감을 느끼면서 오래전 시내버스를 타면 눈에 띄곤 하던 중앙 백미러 근처에 달린 조잡한 성화 속의 문구처럼 "오늘도 제발 무사히"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갈 을들의 처지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니라 무 자르듯이 "도 아니면 모"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살고 보니 돈과 권력이 다 쓸데없더라"는 공자님 말씀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매달 날아드는 전기료, 난방비나 냉방비 같이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돈이 반드시 필요하고 "권력"이라고 하면 적지 않은 분들에게 언짢은 느낌을 줄지도 모르지만 이를 치안이나 방범에 필요한 행정권력, 피해자를 대신해서 합법적인 복수를 해 주는 사법 권력, 그리고 이런 권력들을 가능케 하는 기초인 법을 만들고 필요에 따라 개정하기도 하는 입법 권력이 없다고 상상해 보면, 또는 너무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학생의 성취도 평가를 할 수 있는 선생의 권력 그리고 반드시 제한과 절제 그리고 삼감이 필요하겠지만 규칙을 정해서 자기 자녀의 성장을 조심스레 옆에서 돕는 부모의 권력 등을 생각해 보면 원칙적으로 돈과 권력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저의 생각에 쌍수 들고 반대하실 분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라는 단어가 "돈과 권력" 앞에 놓인다면 사정은 사뭇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