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을 소유하면 과연 그때부터 행복해지는 걸까?
앞선 글에서 돈과 권력은 그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일 뿐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어쩌면 이런 저의 생각을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해 빠진 생각으로 여기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게다가 요즘 한창 잘 나가는 축구선수 손흥민이 광고 수입으로 한해에 벌어들이는 억억 소리 나는 돈의 액수를 생각하면 순간 부러움을 넘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게다가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 한켠에서 다 해 봐야 고작 몇 천 원에 불과한 폐지들을 잔뜩 실은 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패이고 머리카락은 새하얀 노인들을 우연히 보게 되면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돈의 위력을 새삼 느끼기도 합니다. 아무리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라고 하면서 겉으로 냉소적인 허풍을 떨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돈과 권력만을 추구하다가 어느새 몸 상태가 예전과 같지 않아지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자리를 양보받기도 하는 나이가 되고 알고 지내던 가까운 사람의 자녀에게서 "부친 별세, 향년 몇 세"라는 문자를 받는 나이가 되면 갑자기 겁이 덜컥 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느 댓글에서는 가짜 뉴스라고 해서 그 진위를 알 수는 없지만 작년 가을에 생을 달리 한 삼성그룹 총수였던 고 이건희 씨가 눈 감기 직전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 한 말이 "돈도 명예도 다 소용없다"라고 했다는 말에서 식상한 표현을 빌자면 인생무상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90년대 꽤나 인기를 끌었던 대중가요 "타타타"에 나오는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처럼 삶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모든 어려움과 불행에서 해탈한 도사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가끔 이렇게 묻곤 합니다. 분명히 돈과 권력이 짜릿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그리고 비단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겠지만 유독 한국사람들은 어째서 거의 언제나 돈과 권력을 입에 달고 사는 걸까?라는 질문 말이지요.
사람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래서 사람들 모두가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때론 곱지 않은 타인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시선에 종속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이렇게 하면 아마도 어떤 사람들, 때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여기겠지" 하는 예상을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사람들이 남의 시선에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짐작 수준이지만 특히 조선시대, 즉 신분의 높고 낮음을 태생적으로 가른 뒤 특정 신분에 속한 사람, 이를테면 공자 왈 맹자 왈 하면서 점잔을 빼야만 하고 필요 수준을 넘어서 자신이 속한 신분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소유하고 이 정도는 보여줘야 사회적인 인정을 받고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의 허장성세 관습이 대물림된 탓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례로 식구들이 같이 먹는 저녁 밥상에 오른 반찬 수와 양이 너무 많아서 정성껏 만들어 준비한 어느 반찬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 고스란히 다시 냉장고로 직행하는 것은 아주 작은 예일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한국의 허장성세를 잘 보여주었던 사례로 대기업 재벌 자제들이 엄청난 고가의 승용차를 몰고 가고 있었는데 티코 같은 소형차가 그 재벌집 자제들이 타고 가던 고가의 승용차를 추월했고 "싸구려 소형차가 감히 우리를 추월해"하는 마음 때문에 화가 잔뜩 난 재벌집 자제들은 그 소형차를 따라가서 그 차를 멈추게 한 뒤 소형차를 몰고 가던 운전자를 벽돌로 구타해서 결국 사망하게 한 사건은 비록 형식적으로는 오래전 유교적 신분질서가 무너졌지만 마치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깊이 각인된 것 같은 집단 기억처럼 신분과 그에 걸맞은(?)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정형화된 고정관념은 여전히 한국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무시했다간 어떤 봉변을 예기치 않게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한국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일 것입니다.
비록 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흔히 자신의 개성이 이해받고 존중받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흘러간 광고 문구 속에 남아 있는 표현인 "에지 있게 살자"라는 표현처럼 남들과는 다른 나의 주관적인 관심과 취향과 능력을 밖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식상하다, 단조로운 패턴에 빠졌다"는 느낌을 표현하고자 할 때 쓰는 매너리즘과 관련된 것입니다. 매너리즘은 원래 서양미술의 한 사조로서 그 당시까지 이어져 오던 미술사조의 관행을 타파하고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미술 화풍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는데 결국은 그 혁신적이고 독창적이라는 기치가 나중에는 식상한 것이 되어서 당시를 풍미하던 매너리즘 화풍의 인정을 받으려면 정형화된 혁신적이고 독창적(?)으로 보이는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저는 요즘 세태를 보면서 이 세태가 미술사조인 매너리즘과 같은 운명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중 한 모습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억지로 센 척하는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반드시 "그런 척" 하는 것에 대한 대상, 즉 타자를 전제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남들 앞에서 센 척을 해서 자기를 보호하려 들 때도 마음이 편안하기는커녕 때론 어떤 척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불안, 그러니까 남들이 내가 꽁꽁 숨기려고 하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눈치채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과 함께 이 모습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고 연극배우처럼 어디선가 본 강해 보이는 사람의 모습을 따라 할 뿐이야 하는 생각 때문에 드는 불쾌한 이질감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피곤하고 불안한 "코스프레"를 하다 보면 친구들과 같이 있어도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얼른 혼자 있을 수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들 수 있는데 정작 내일을 위해 쉬고 잠을 자야 할 시간에 혼자 있게 되면 그날 자신이 억지로 연기했던 모습들이 떠오르면서 "바보 같았다", "위선적이었다",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리고 "혹시 친구들 중 누가 밖으로 말은 하지 않았어도 내가 억지로 꾸미는 모습을 눈치채고 비웃으며 속으로 나를 경멸했으면 어떡해?" 하는 등의 온갖 잡념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할 뿐만 아니러 혼자 있어서 떠오르는 싫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생각들 때문에 다시 누가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악순환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심하면 친구들과 같이 있어도 좀처럼 마음속 긴장이 풀리지 않아 마음이 편치 못하고 정작 혼자 있게 되면 후회나 스스로에 대한 원망감이나 자책감이 밀려와서 도무지 어찌해야 좋을지 좀처럼 종잡기 힘든 그런 상황 때문에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