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느 육아상담 방송에서 아주 어린아이가 엄마가 외출하려 하면 자지러지게 울면서 엄마의 외출을 극구 반대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집안에 나이가 위인 남매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 장면을 보던 아동심리 전문가는 피치 못해 외출해야 할 때 엄마가 반드시 언제, 즉 몇 시 몇 분까지는 집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아이와 하도록 했고 그 방송은 그 약속을 지킨 엄마 때문에 아이는 이전처럼 자지러지게 울면서 엄마의 외출을 극구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 방송을 끝까지 다 본 뒤 저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게 된 아이들 중에 엄마와의 분리를 몹시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지러지게 울면서 엄마와 물리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어린아이들을 떠올렸습니다. 이런 어린아이들의 반응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데 성인도 갑자기 몹시 낯선 환경에 처하면 마음이 긴장되고 어색해할 수 있고 때로는 좌불안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더 잇기 전에 그와 관련되어 보이는 학습 심리학의 한 실험을 소개하자면 거꾸로 매달려 있는 박쥐에게 "쾅" 소리 같은 큰 소리를 갑자기 들려주면 처음에 박쥐는 깜짝 놀라서 툭 하고 떨어지다가 동일한 세기의 그 큰 소리를 반복해서 들려주면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 현상에 대한 심리학적 용어는 "둔감화"입니다. 그런데 어떤 수준의 더 큰 강도의 굉음을 들려주면 박쥐는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둔감화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데 이 현상은 "민감화"입니다. 이를 위에 언급한 어린아이들의 경우에 대입해 보면 엄마와 분리되는 것은 그 아이들에게 주관적으로 엄청난 자극이어서 감당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아이에겐 엄마와의 분리가 싫고 좀 두렵기는 하지만 견딜만한 데 어떤 아이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이 끔찍한 자극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차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내용을 쓰기 전에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그에 대한 저의 설명이 그저 추측이나 짐작 수준의 설명일 뿐이라는 점인데 우선 엄마와의 분리를 물리적 분리와 심리적 분리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물리적 거리란 아이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거리로서 집에서 어린 자녀를 돌보는 엄마들은 아이와 물리적 거리가 굉장히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심리적 거리는 아이와의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고 반드시 가까운 것은 아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어떤 사람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 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할 때 비록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도 심리적 거리는 엄청나게 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글에서 저는 어린아이의 선천적인 특성인 독립에 대한 욕구와 함께 보호받고자 하는, 얼핏 상반되어 보이는 욕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반드시 어린아이에게만 적용되는 욕구가 아니어서 성인의 경우에도 어떤 일에 아직 능숙하지 않을 때 스스로 그 일을 처리해 내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그와 함께 잘 모르는 부분이나 익숙하지 않아 어려운 부분에서는 누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을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고작 간단한 문제도 겨우 처리할 수 있는 능력밖에 없어서 엄마의 보호와 돌봄이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불안해 보여서 옆에 바짝 붙어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는 엄마의 경우 아이는 작은 위험을 무릅쓰고 무언가를 스스로 해 보려는 독립에 대한 욕구를 실현시킬 수 없고 철저히 엄마의 간섭과 통제에 예속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감당할만한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해 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을 아이는 당연히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효능감이란 직접 어떤 일을 해 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함께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실수와 시행착오를 통한 자신의 한계, 즉 아작은 능숙하지 않지만 관심과 취향을 바탕으로 키울 수 있는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과 함께 부족한 소질과 관련된 한계를 깨닫는 것도 포함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물리적으로 무척이나 가까운 거리에서 아이를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한다면 아이의 "잠재 능력"은 당연히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그 결과 달콤한 돌봄과 보호를 받을지는 몰라도 아이의 점진적인 독립에 대한 욕구는 좌절되어서 아이는 계속 완전히 "무력한" 존재로 남게 될 것입니다.
이런 아이가 나이가 차서 어린이집이나 유차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그동안 달콤한 엄마의 전적인 보호와 돌봄으로부터 떨어져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텐데 엄마의 전적인 돌봄과 보호가 없으면 완전히 무력함을 느끼는 이 어린아이는 심한 공포감을 느끼면서 엄마와 물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잠시 분리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낼 것입니다. 이런 상태의 어린아이에게 사실상 강요하듯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갈 것을 요구하면 앞서 말씀드린 민감화의 법칙에 따라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임시방편으로 아이가 떼를 쓰듯 엄마와의 분리를 강하게 거부한다면 때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양해를 구하고 난 뒤 결석시키거나 조퇴시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앞에서 언급한 아동심리 전문가의 처방처럼 몇 시에는 꼭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해서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엄마와 분리되는 상태에 대한 아이의 공포심을 줄여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둔감화의 법칙에 따라서 아이가 차츰차츰 엄마와의 부분적인 분리에 익숙해지도록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분리의 정도를 조절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점은 엄마와의 심리적인 친밀감인데 비록 물리적으로는 많이 떨어져 있더라도 엄마를 신뢰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이는 그런 심리적 안정감을 바탕으로 독립에 대한 욕구를 차츰차츰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고 엄마에 대한 신뢰감뿐만 아니라 자기 효능감, 즉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하는 자기에 대한 신뢰감도 발달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인간이 당면하는 심리적 문제 중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심리적 독립"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화두 중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인간은 궁극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다"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 말이 원칙적으로 틀린 말도 아니고 백번 공감할 수 있는 말인데 다만 그 화두는 인간이 무리 지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에 애써 눈 감고 있는 듯한 인상도 줍니다. 그 아무도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그 누구도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대해 대신 책임져 줄 수 없다는 측면에서 인간은 외로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때 외로움이 반드시 부정적이고 피하고 싶기만 한 것일까요? 다시 어린 자녀 옆에서 일일이 참견하고 통제하고 지시하는 엄마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혼자 있음을 뜻하기도 하는 외로움이 언제나 싫고 피하고 싶은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