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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임을 느낄 수 있는 인간관계

by 조태진

인간에게 섬세하고 복잡한, 그래서 제한적이나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는 선천적인 능력이 있는 이유는 무리 지어 함께 살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욕구를 바탕으로 그에 대한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고 싶은 성향 때문일 것입니다. 무리를 이루어 사는 동물 종 중에서 그 무리 중 어떤 개체가 천적에 먹잇감으로 붙잡혀서 살점이 뜯길 때 다른 개체들이 무심하게 그를 지나치는 것과는 달리 타인이 겪는 고통에 가슴 아파하고 그 가해자에게 분노할 줄 아는, 씨앗의 형태로서의 선천적인 성질을 갖춘 인간이기 때문에 말이지요. 하지만 이 선천적인 능력은 주어진 환경의 조건들 때문에 방해받기도 하고 때론 가로막히기도 합니다. 물론 자신의 속내를 모두 드러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가끔 우리는 가까운 누군가에게 마음속 아야기를 꺼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남들 눈에 유치하게 비칠 것이라던가 심심풀이 땅콩처럼 험담의 소재가 되어서 두고두고 흉 잡힐 것이라는 불안하고 우울한 예상을 하게 되면 좀처럼 그 속 이야기를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머리를 써서 자신의 속 마음을 말로 표현하려 들어도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어서 시원치 않게 느낄 뿐 아니라 설사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고 해도 자신만큼 완전히 그 속 마음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런 얘길 하면 "그게 가능해?" 하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저는 주로 혼자 있을 때, 특히 하루의 고단함을 뒤로하고 내일 맞게 될 고단한 일상을 위해서 쉬는 늦은 저녁시간에 우리 안에서 조용히 건네 오는 소리, 즉 "오늘 이런 일이 있었잖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렇게 할 수도 있었겠어. 그리고 아까 그 친구한테 한 말은 생각해 보니 좀 경솔한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해. 늦긴 했지만 다음에 그 친구를 만나면 그때 미안했다는 느낌을 은근슬쩍 표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아 참,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내일 발표 날이잖아. 꼼꼼히 준비했으니까 큰 걱정은 없지만 그래도 원치 않게 실수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지 않는 건 아냐. 뭐, 그런다고 큰 일 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잘해 내고 싶기는 해. 아마 잘할 거야. 앞서서 미리 꼼꼼히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지도 않고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 보면 잠도 안 와서 내일 발표를 기대보다 못할 수 있으니 잠이 안 오더라도 눈 꾹 감고 잠이 들기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지" 등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믿는데 그런 내면의 소리를 우리는 흔히 "잡념"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잡념이라고도 불리는 그 소리는 분명히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굳이 언어로 정교화하지 않아도 마치 선문답을 주고받는 것처럼 내용뿐 아니라 거기에 실린 자신의 감정과 욕구도 충분히 알아듣고 느낄 수 있습니다.


얼핏 보아서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상태가 바람직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때 이런 질문이 제기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사는가?"라는 질문 말이지요. 그래서 스트레스는, 특히 감당할만한 스트레스는 때론 "호기심" 또는 "궁금함"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우리를 자극하고 앞으로 등을 떠밀기도 합니다. 마치 재미있는 책을 볼 때 책 속의 사건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됨에 따라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즉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어서 끝을 맺을까 하는 궁금증과 호기심 때문에 좀처럼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현상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이때 중요한 점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을 무조건 자꾸만 피하려 들면 앞서 언급한 "민감화의 법칙"처럼 그 스트레스 자극의 강도가 주관적으로 점점 거세지고 이에 대한 내면의 반응은 질적으로 변해서 마치 광폭한 괴물이 되어버린 것처럼 또는 고삐 풀린 말처럼 사나워질 수도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흔히."내 마음인데 내 마음대로 안 돼" 또는 "내 마음인데 나조차도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자극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마음의 상태를 때론 꽤나 힘들더라도 정직하게 인정할 때 그리고 그와 함께 그 스트레스를 견디고자 할 때 비로소 그 마음이 나와 동떨어진 낯설고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마음"인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그제야 마음의 내적 지원을 받아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자극에 대항할 수 있는 심리적인 힘이 상당히 커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삶은 "장밋빛 인생"이라는 제목을 가진 어느 흘러간 샹송의 제목처럼 항상 비단길은 아니어서 때론 예상치 못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기도 하고 때론 "내게 왜 이런 일이"하며 속상해하고 화도 나는 우연과 마주치기도 해서 슬프고 화나고 우울해지기도 하는데 물론 제한적이긴 하지만 삶의 이런 비극적인 측면을 견뎌내려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들로 인해 생겨나는 정직한 감정의 결들, 동어반복이지만 즉 슬픔과 분노와 우울함 등을 정직하게 인정하면서 견디고 때로는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해결해 보려고도 해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주변에 있는 누군가의 작은 위로와 도움을 받기도 해야 할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혼자서 "외롭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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