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극도의 흥분과 극도의 절망 사이 (6)
조울증을 의학용어로 달리 말하면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입니다. 이 용어는 서로 대립되는 두 극단인 지나친 낙관적인 태도와 지나친 병적 우울증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물론 병적인 조울증이 아니라 기쁘고 몹시 설레는 기대를 할 때 마음이 기분 좋게 흥분하다가 마음을 설레게 했던 사건이 과거가 되어 지나가면 흥분되었던 마음은 어느새 가라앉는데 이를 병적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흥분된 기쁨이 가라앉아서 다시 일상의 느낌으로 되돌아가도 그 상태를 병적인 우울증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양극성 장애의 조증과 일반적인 흥분된 기쁨 사이의 한 가지 중요한 차이는 다름 아니라 '기쁨 또는 행복감의 근거"입니다. 그리고 기쁨이나 행복감이 잦아들었을 때 그 기쁨이 자신의 기억 속에 곱게 남아서 때때로 그 기억이 떠오르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지는지 아니면 기억으로 소환된 조증의 경험이 사람을 당혹게 하면서 "그때 나는 도대체 왜 그랬지? 왜 그렇게 흥분해서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거지?" 하면서 조증 상태였던 자기를 마치 낯선 타인처럼 느끼는가 여부입니다.
물론 병적인 조울증이 아닌 상태, 이를테면 술을 과하게 마신 뒤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을 다음 날 깨어나서 기억했을 때도 "도대체 내가 어제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한 거야? 하면서 땅을 치고 후회할 수 있는데 좀 미묘한 차이지만 그렇게 땅을 치고 후회하는 어제의 말실수나 행동이 사실은 티만 내지 않았지 자신의 솔직한 속말이었다는 것은 장본인도 인정할 텐데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속으로 "술을 과하게 마셔서 잠깐 정신이 나갔었군"하면서 같이 속상해할 수 있습니다.
조울증 증상 중 조증의 상태에서 느끼는 기쁨은 환각과 비슷한 도취 상태라고 달리 부를 수도 있을 텐데 그 이유는 우울하고 답답하고 억울한 현실을 억지로 부정하면서 그저 흐뭇한 공상에 도취되어 느끼는 극도의 흥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런 흐뭇한 공상에 도취되어 있는 것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상태와 많이 다르지 않을 텐데 이때 중요한 점은 "내가 지금 공상을 하고 있을 뿐이다"라는 자각이 잘 들지 않고 그 공상을 마치 현실처럼 느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간밤에 아주 행복한 끔을 꾸다 깨어나면 아쉬운 마음이 들 수 있는데 조증은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헛헛하고 아쉬운 마음보다는 조증 상태가 지나가고 어쩔 수 없이 다시 각박하고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마주치게 되면 조증 상태에서 현실처럼 느끼며 경험한 것이 현실이 아니고 현실로 될 가능성도 찾을 수 없어서 심하고 깊은 우울증에 빠질 위험이 농후합니다. 이런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정도가 많이 약한 한 예를 들자면 어떤 일로 속이 많이 상하거나 우울할 때 우리는 코미디 영화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서 우울해진 기분을 달래 보려고 하지만 그 영화가 끝나면 마치 전신마취 상태에서 수술을 받고 나서 마취가 풀리면서 다시 감각을 되찾은 환자처럼 현실 속의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다시 의식의 층을 비집고 생각날 수 있습니다.
독일어 표현 중에 "etwas über sich ergehen lassen"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번역하자면 "무엇이 지나가도록 놔둔다"입니다. 이제는 원로 가수 대접을 받아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나이가 된 가수 김범수가 부른 노래 중에 "지나간다"라는 노래도 있는데 그 노랫말 중에는 "지나간다, 이 고통은 분명히 끝이 난다. 그 믿음이 없인 버틸 수 없어, 그 희망이 없었으면 난 벌써 쓰러졌을 거야, 무너졌을 거야, 그 희망 하나로 난 버틴 거야"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든 할머니들 중에는 "순리대로 살아야 된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김범수가 절규하듯이 간절하게 부른 그 노래의 가사에는 "버틴다"라는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 그건 마치 심한 몸살에 걸려서 겨우 잠시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아픈 경우에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대 맞고 대략 삼사일 누워서 끙끙 앓다 보면 낫겠지"하는 마음으로 앓으면서 기다리는 것과 많이 다르지 않은데 그 이유는 끙끙 앓으면서 몸살 기운을 견뎌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몸살로 인해 아프면 낫기를 기다리면서 쉬어야 하고 약도 거르지 말고 잘 챙기면서 몸살 기운으로 인한 통증을 견디는 것이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 입에 올리곤 하는 순리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때 그런 자세를 취하는 바탕은 싫지만 현실의 상태를 인정한 뒤 의지를 통해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면서 병이 낫기를(지나가기를) 기다리는 태도가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울증의 경우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마냥 부정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 쓰는 방법은 현실에서 물러나는 것도 모자라서 원본과 한참 다른 내용으로 원본 문서를 위조하듯이 현실을 제멋대로 짜깁기하고 거기에다 장밋빛 환상 같은 공상의 옷을 덧입혀서 누추하고 각박한 모순 투성이의 현실을 제 의식 속에서 쫓아내 버리고서 그 자리에 자신이 멋대로 가공한 공상을 앉혀서 "동화와 꿈속으로" 달아나 버리는 것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