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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태진 Dec 18. 2021

중독, 순간적 짜릿함과 끝 모를 불안 (1)

핸드폰이라는 새롭고 편리한 기계가 만들어졌을 때 이런 새로운 기계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 뿐 아니라 이전 세대와는 사뭇 다른 특징을 보인다고 여겨진 젊은 세대를 신세대니 X 세대니 부르다가 이제는 처한 여건상 취업,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와 그 밖의 미래 꿈들을 일찍부터 접어버린 N포 세대라고도 불리는 젊은 층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현상을 "핸드폰 중독"이나 "게임 중독" 등의 명칭으로 가리키곤 합니다. 이때 그 현상이 중독인지 아니면 그냥 취향에 바탕을 둔 "정상적인" 행동인지를 판별하기란 쉽지 않은데 이를테면 직장에서 은퇴한 뒤 뻔질나게 산을 찾는 초로의 남성들의 행동을 일종의 중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어렴풋이라도 그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행위가 중독인지 아니면 정상적이긴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친 지 여부를 가르기 위한 중요한 척도는 다름 아니라 그 행동을 본인이 스스로 멈출 수 있는지, 즉 어떤 중요한 일이나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그 행동을 멈추거나 미룰 수 있는지 여부이고 또 다른 척도는 그 항동을 멈추었을 때 금단증상, 즉 다른 일에 좀처럼 주의를 집중할 수 없고 그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이 지배하는가와 중요한 산체적 증상으로서 심한 병적인 불안과 통제할 수 없는 공격성이 나타나는가입니다.


은 어린아이들을 밤늦게까지 학원에 보내느라 아이들 취미 활동이나 여가 활동 등을 느긋한 마음으로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심리학 이론을 빌자면 상당 시간 동안 공부나 업무를 한 뒤 운동을 할 때 공부나 업무 활동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들이 운동을 하는 동안 재충전된다고 합니다. 이는 비단 스포츠 활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어서 다른 활동, 특히 단순한 활동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이를 풀어서 설명하면 더 이상 지식을 머릿속에 쑤셔 넣어 보려고 해도 마치 공이 벽에 맞고 튕기 듯이 머리가 더 이상의 지식을 수용하려 하지 않을 때 우리 마음은 간단할 뿐만 아라 손이 가는 활동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활동은 개인마다 취향이 달라서 콕 집어 이런 활동이다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우린 종종 "짬을 내서 무엇을 한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저는 이 표현이 요새 어린 학생들에게 적합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물론 주어진 놀이도구가 바뀐 점도 가볍게 여길 순 없지만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놀이는 상당한 시간과 여유로움을 필요로 할 텐데 요즘 아이들이 그렇게 느긋하게 오랜 시간 동안 놀이를 즐길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그 아이들에게 남아 있는 가능한 놀이는 편의점 밖 파라솔에 앉아 컵라면을 먹으면서 "짬을 내어" 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이나 동영상 보기 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경쟁적 사회에서 자유라는 가치만 유독 숭상하는 "경쟁 지상주의" 사회로 이행함에 따라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 동료를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고 흔한 경우는 아나지만 그중에 속내를 조심히 드러낼 수 있는 상대방이 아니라 의자 뺏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내가 뺐느냐 아니면 뺏기느냐를 겨루는 경쟁의 상대로만 보게 되어서 이전처럼 편안하게 친구나 동료를 대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가파른 수직적 관계 속에서 눈치껏 제 자리를 찾아야 하는 사회에서 특정한 개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기도 많이 어려워져서 낮아진 자존심 마술적이고 상징적으로 복원하기 위해서 게임 속 영웅을 알게 모르게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인기 없는 원로 정치인이 돤 손학규 씨가 예전에 대통령 후보일 때 내세운 공약 하나가 있는데 그건 일과 의 조화를 뜻하는 "워라벨"이라는 신조어로 잠시 대중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집단 최면에 걸린 듯한 한국사회에서 그 표현은 신선하고 강력한 충격을 주었는데 그건 제가 초등학생일 때 사회시간에 배운, 헌법에 명시된 8시간 노동, 8시간 여가 그리고 8시간 수면이라는 당연한 말을 표현만 바꿔서 말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워라벨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가치를 요즘 아이들, 그러니까 학교 수업이 파하고 나서 학원 몇 개를 뺑뺑이 돈  늦은 밤 집에 와서 졸린 눈을 바비면서 학원 숙제를 하고는 이른 새벽 시간에  잠을 잔다고 하기보다는 눈을 좀 붙이는 정도로 최소한의 수면을 취해야 하는 요즘 아이들의 고단한 삶에 대입해 보면 그 당연한 권리가 마치 멸종 직전의 희귀 생명체처럼 아주 희귀하고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건 언젠가 신문에서 접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표현과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칼 같이 가르는 것이 녹록지 않은 문제이지만 이를 가를 때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간이 그로 인해 견디기 거의 불가능한 고통을 받는가라는 문제 제기와 함께 그 고통이 인간의 정신적 심리적 성장을 촉진하는가 여부입니다. 즉 당사자로서 사람들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충동을 느끼는지와 함께 그 고통을 감내해야 마땅한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하는가 여부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가름에는 "그것이 과연 인간적인가?"라는 물음 제기가 빠져서는 안 되는데 이 말에는 그것이 인간에게 바람직한가?라는 문제 제기와 함께 그것을 한낱 인간이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는가라는 문제 제기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늠자로 판단할 때 비로소 괴소문처럼 떠돌아서 사람 마음을 근거 없이 몹시 불안하게 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정체불명의 "여론"이나 "입소문"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일례로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하려면 최소 몇 년 동안 하루에 14 시간 동안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는 입소문이 있는데 잠시 생각해 보면 이 말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말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루에 14 시간을 공부에 매진하면 남는 시간은 10 시간인데 이 10 시간 동안 씻고 밥 먹고 쉬고 수면을 취하는 활동을 전부 마쳐야 할 뿐 아니라 충분히 쉬지 못하면 주의를 집중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게다가 원치 않게 자꾸만 잡념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런 생활을 임용고시에 합격하기 위해서 1년만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게 여겨지고 그와 더불어서 그렇게 한들 그게 과연 적절히 쉬면서 하는 공부보다 효율적일까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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