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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태진 Dec 29. 2021

중독, 순간적 짜릿함과 끝 모를 불안 (4)

동의하지 않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알코올이나 섹스나 도박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단어들이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장면 때문에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느낌을 풍기기는 하지만 반가운 친구와 오만에 만나 함께 하는 술자리나 말로 옮기자니 좀 민망하긴 하지만 신혼초에 사랑하는 배우자와의 동침 그리고 설날 같은 명절 때 점 100원짜리 화투를 치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제가 왜 그렇게 말씀드리는지 이해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건강한 충동에 이끌려서, 다시 말해서 마음이 동해서 그런 행동을 가끔 반복해서 한다고 그 행위에 중독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충동은 심심하거나 불쾌한 일을 당하거나 속상할 때 마음을 달래기 위한 성질을 갖고 있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강박적으로 쫓기듯이 하는 중독 행위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으실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면 반복하는 행위가 중독인지 아난지 어떨게 구분할 수 있냐?"라고 말이지요. 사실 이 질문 앞에서 명확한 답변을 드리기 쉽지 않은데 그건 제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기도 합니다. 조금 사설을 늘어놓자면 젊을 때 저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날이 저문 뒤 사흘이 멀다 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습니다. 그때 주머니 사정도 사정이었지만 2차, 3차까지는 가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어느 정도 술을 마시면 몸에서 거부 신호가 와서 누가 강제로 제 입에 술을 들이 붇지 않는 한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 간 뒤 독일인들의 음주 문화와 비교해 보니 독일인의 시각으로는 우리나라 남자들은 전부라고는 할 수 없어도 알코올 중독으로 보이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독일이라고 해서 알코올 중독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앞에서 저는 중독증에 걸린 사람이 속으로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 중독 행위를 반복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말 앞에 생략된 말은 "왜냐하면"이라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때 사회적인 윤리적 관습이 개입할 수도 있지만 경험을 통해서 학습한 "예상되는 불이익"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내가 이런 행동을 했더니 이런 좋 않은 결과가 초래되었다"는 경험칙에 의해서 "내가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똑같은 또는 비슷한 불이익을 당하겠구나"라는 불안을 동반한 예상되는 불이익 말이지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떤 분은 "그럼 주식 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봐서 그 손해를 메우려고 다시 주식에 손을 대는 것도 중독이냐?"라고 물으실지 모르겠는데 그 질문에 저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답변드릴 것입니다. 물론 손해 본 금액을 되찾고 그와 더불어 이익도 챙기려는 목적으로 계속 주식에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는 행위를 주식 중독으로 볼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중독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중요한 척도는 다름 아니라 "무엇을 잊기 위해서" 또는 "무엇이 생각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는 행위 인가와 더불어 그 행위를 하지 않으려고 할 때 심한 불안감, 때로는 견디기가 거의 불가능한 블안과 초조함을 느끼는가 여부입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그 무엇이 다름 아닌 자신의 정신과 마음속에 정서적으로 강하게 충전되어 있는 두렵고 불쾌한 기억, 때로는 우리가 트라우마라고도 부르는 마음속 깊이 각인된 상처입니다. 이 정신적 외상은 심한 불안이라는 정서를 동반하는데 그 이유는 "또다시 비슷한 상처를 원치 않게 받으면 어떡해"하는 예기 불안(anticipatory anxiety) 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보다는 마음속 깊이 각인된 상처를 상처로 인하지 않아서, 다시 말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그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 상처를 왜 입게 되었는지에 대한 불편하지만 정직한 진실과 마주하려 하지 않고서 생뚱맞은 이유를 기 자신에게 강요하는 "합리화"를 자꾸만 시도하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걸 우는 흔한 말로 "남 탓하기"나 둘러대기 식 "변명"이라고도 말합니다. 또는 그 반대로 거의 전적으로 남의 탓인데도 블구하고 자꾸만 자기 탓으로 돌려버리려는 시도를 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귀신은 속여도 자기 자신만큼은 못 속인는 옛말처럼 이런저런 변명을 둘러대며 스스로에게 강요해도 자신만큼은 속일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는 더 커져만 갈 것이고 점점 더 커지는 두려움과 공포를 잊고자 소위 정신을 뺏긴다는 표현에 어울리는 행위를 점점 더 강박적으로 하게 될 텐데 우리 정신과 마음은 이런 헛된 회피 시도를 어떻게든 막으면서 마치 검사가 증거를 들이대면서 피고인을 압박하듯이 스스로에게만큼은 정직해질 것을 간곡하게 요구합니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변명으로 속이려 드는 헛된 시도를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정신을 빼앗기는 그런 회피행위를 하는 동안은 잠시 편안해질 수 있어도 그에 대한 심리적 산체적 대가는 만만체 않은데 그건 그 행위를 멈추고 나면 두렵고 공포스러운 기억이 다시 떠오를 뿐 아나라 가슴이 심하게 떨리면서 초조하고 불안해지고 심하면 밤에 잠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불면증 증세도 나타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전의 삶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삶, 즉 눈에 들어오던 저녁노을이라던가 작은 숲 속에서 나는 나무 향기 그리고 오후의 나른한 햇빛 같이 잠시 마음을 쉬게 해 주던 외부의 자극들이 더 이상 내면에 수용되어서 정서적으로 해독되지 않고 마치 몹시 무서운 공포영화 속의 끔찍하고 괴기스러운 장면에 눈이 고정된 듯이 세상이 온통 지옥처럼 보이거나 점점 자신과 멀어져서 이상하고 낯설게 여겨지는 두려운 삶을 살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표현해도 좋다면 사방이 깨끗한 유리로 된 벽 너머에 사람들이 모여서 쌍쌍이 춤도 추고 맛있는 술이나 음료를 마시면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그 너머 온통 유리로 된 은, 그러나 출구가 없는 방 안에서 유리 너머 그 광경을 혼자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 같은 불쾌하고 섬뜩한 느낌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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