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태진 Mar 01. 2022

이타주의와 유토피아 그리고 이기주의 (1)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옛 속담 중에 "남이 당하는 고통보다 내 손톱 밑에 낀 가시로 인한 고통이 더 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속이 왜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제 짐작으로는 이타주의가 공허하게 말로만 표현될 뿐 사실은 다들 자기 자신만을 챙기면서 사는 행태를 비꼬거나 아니면 그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 속담이 틀린 것은 아닌데 그 이유는 그 어느 누구도 고통을 당할 때 자연스럽게 자신의 고통에 온 신경이 쏠려서 남들의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속담이 기는 뉘앙스는 마치 갑자기 정지된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 이유는 완전히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자신의 고통을 해결한 뒤에 신경이 더 이상 손톱 밑에서 느껴졌던 통증으로 향하지 않게 되고 그에 따라서 정신과 마음은 외부세계로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따입니다. 그런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는 속담 하나를 더하자면 그놈이 그 놈이다, 또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을 지닌 "도토리 키 재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확인해 본 것은 아니지만 제게 이 표현은 세상 풍파 속에서 고통을 거듭해 당하면서 누군가 도움을 주기를 바라다가, 또는 계속되는 절망 속에서 인간에 대한 여린 희망을 놓지 못하다가 결국엔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세상살이를 긴 세월 동안 경험한 결과 인간에게 완전히 절망해 버린 나이 지긋한 분들의 인간관이나 세계관을 보여주는 말로 읽혔습니다.


절망이란 흔히 희망의 반대말로 쓰이는데 그렇다면 그런 분들이 가지고 있었던 희망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좀 유치한 얘기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꿈을 준다"라고 표현되는, 어릴 적 보았던 동화나 만화영화 속에서 권선징악의 집행자인 주인공을 통해서도 인간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과 희망을 품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런데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왜 그런 영화나 동화 속 주인공의 모습 이른바 "이상적인"이라는 표현이 덧붙여질까요? 그리고 대체 "이상적인 것"은 또 무엇 알까요? 흔히 우라는 "이상"을 지향한다, 또는 지향해야 한다고 표현합니다. 이상적이란 사전적인 뜻으로는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인데 철학적 개념을 덧붙이자면 "실현 가능한 절대적 아상""실현할 수 없는 절대적 이상"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이상적이라는 표현에는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렘을 바탕으로 "그렇게 되겠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상태가 그런 이상적인 모습보다 못해야 하는데 이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러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 즉 현재의 세상도 그 기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는 전제를 반드시 필요로 하고 그렇게 이상적인 모습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는 경우에 따라서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할 때 느껴지는 현재의 불만족스러움 때문에 이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발동되기도 합니다. 이를 우리는 흔히 "불의를 참지 못하는" 청년들을 일컬을 때도 쓰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의 상태와 매우 가까이 있는 정서는 다름 아닌 "체념"과 "냉소"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전에 다른 글에서 소개한 잔인한 심리학 실험을 다시 인용하자면 우울증을 연구하기 위해 몇 명의 심리학자들이 완전히 폐쇄된 철장 안에 개 한 마리를 가두고서 철장 바닥에 고압의 전류를 흐르게 했더니 한동안 펄쩍펄쩍 뛰며 어쩔 줄 몰라하던 그 개는 이윽고 철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낑낑대며 소변을 찔끔찔끔 흘렸습니다. 저는 이 실험을 교과서에서 접하고 체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는데 굳이 설명하는 게 바보스러울 정도로 그 개는 안전한 곳을 찾아 도망 다녀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음을 경험을 통해 확인하고 도망갈 희망을 잃은 채 체념했음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인간에게 적용해 봐도 그리 다르지 않을 텐데  꽤나 오랫동안 자기가 애써 추구하던 이상적인 모습이나 상태로 자기가 변하거나 세상이 변하지 않음을 깨닫거나 때론 현실 그 반대 방향으로 자꾸만 바뀐다면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자기의 기억과 마음속에 누적된 부정적인 경들로 말미암아 "애써 봤자 소용도 없고 나만 자꾸 이용당하거나 손해를 본다"는 생각 때문에 결국은 마음속에 그렸던 "이상적인" 상태에 대해 체념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적 상태로서 아직 그 이상적인 상태를 포기하지 않 사람들을 보면서 코웃음을 치며 냉소적이 될 수 있습니다.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