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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Nov 04. 2024

그녀에게

12.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나는, 우리가 다녔던 국민학교 '병설 유치원 1회' 졸업생이다.

이 말인즉슨, 어른 걸음으로 왕복 한 시간 되는 거리를

그녀가 매일 아침 어린 나를 업고,

학교 앞까지 그 먼 거리를 데려다줬다는 말이다.


아침밥을 먹고, 왕영은 언니가 하던 (당시, 절찬리 상영 중이던)

"뽀뽀뽀"를 넋을 놓고 보고 있노라면

"수진아 유치원 가자~~" 하며, 채비를 끝낸 그녀가 마당에 서서 나를 부른다.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뽀뽀뽀'를 향한 아쉬움을 뒤로 한채,

마당으로 달려 나가 냅다 그녀의 등허리에 업혔다.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 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이더니~~"

유치원 가는 길, 그녀는 율동까지 해 가며, 나에게 노래를 가르쳤다.

그러면, 지금도 음치, 박치인 내가 그녀의 소프라노 같은 노랫소리를 따라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러 제꼈다.

그러면, 그녀는 늘 그랬듯.. 내 노랫소리에 작게 '호호호' 웃었다.


그러다. 우리는 손가락을 같이 넓게 쫙 펴서는

길가의 코스모스며 장미며, 갈대며... 손에 잡히는 대로 만져댔다.

"꽃은 꺾으면 안 된다.. 아가야"

그녀가 하는 말과 동시에 나는 꽃을 꺾어서 그녀의 귀뒤에 꽂아 버린다.

"아이구...호호호"

나는 그녀의 등허리에 얼굴을 파묻고 비빈다.

그저.. 그녀의 다정한, 웃음소리가 좋아서 말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시간은 금방 흐른다.

어느새, 학교 앞, 디딤돌 다섯 개쯤이 놓인 작은 시냇가에 이른다.

우리가 헤어질 시간이다.

나는 돌 하나 건너고, 뒤 돌아보고 또 하나 건넌 후 돌아보고를 하다가

끝끝내 돌을 다 건너고 나서도, 그녀를 돌아보며.. 손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댄다.

마치, 이것이 끝인 것처럼!!

그러다 보면. 눈물 콧물 범벅이 된다.

그렇게 매일 아침.. 우리는 대성통곡을 하며 유치원을 오갔다.


내가 손을 흔들다 지쳐 돌아서 갈 때까지.

내가 아주 안 보일 때까지.

항상. 그녀는 그 자리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나는... 가끔 그녀가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을 상상해 본다.


삼도천은 꽤 길고도 먼 길이니.

내 작은 간으로는 도저히!! 그녀 혼자 보낼 수 없으니...

우리 세 자매가가 저승사자의 멱살을 잡든

엎어치기를 하든.. 돈이라도 쥐어 주든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기필코!! 우리 세 딸들은 그녀의 삼도천 가는 길을 동행하고 말 것이다.


"엄마~~ 인제 가자"

채비를 끝낸 우리가 부르면.

그녀는 보고 있던 '가요무대'가 채 끝나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내 등허리에 냅다 업힐 것이다.

그 옛날. 내가 그랬듯.


"맘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이번엔, 그녀가 아침저녁으로 불러대는 노래를 같이 부르겠지.

물론.. 음치 박치인 내가 화성을 넣는 것이 모두들에게 민폐인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함께 부른다는 데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모두들 귀를 막고, 웃을 테지만 말이다.)

"한 번만 만나줘요~~" (딸들)

"안 만나줘요~"(그녀)

같은 노래도 아닌데 우린, 또 이렇게 이어서 부르며 까르르 한바탕 웃을 것이다.


그러다... 삼도천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을 꺾어서 그녀가

세 딸 손에 똑같이, 꽃반지를 야무지게 묶어줄 것이다.

"아가야.. 손 내밀어봐라.. 엄마가 해줄께"

"엄마.. 내부터... 치사하게... 막내 먼저 해 주냐... 마지막까지.."

난, 또 쓰잘데 없는 막내를 향한 질투로

슬쩍 그녀의 심기를 건들지도 모른다.


"저.. 바다 봐라.. 힐링해라 마!!"

그럼.. 그녀는 또 나를 달래느라 삼도천으로 시선을 돌리리라.

한참.. 우리 넷은 세상 태어나 첨 보는 삼도천을 내려다보겠지.


-영화 제 8요일 ost

Maman la plus belle du Monde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


Maman c`est toi. la plus belle du monde

Aucune autre a la ronde n`est plus jolie

Tu as pour moi, avoue que c`est etrange

Le visage d`un ange du paradis

엄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 당신

주위의 어떤 여인도 더 예쁘진 않아요

당신은 천국의 천사 모습은 야릇한 것이라고

나를 위해 귀띔해 주셨죠


분명, 그녀의 미스코리아는 이 틈을 타서 제 멋대로

영화 '제8요일'의 주제곡을 틀어놓고

음악에 맞춰, 그녀를 끌어안고, 삼도천 위에서 '왈츠'를 출 것이다.

퐁네프의 연인들처럼~~

그럼, 키 큰 미스코리아 품에 안겨.. 그녀는 잠시 빵댕이를 흔들흔들

작은 꽃처럼 흔들며 분위기에 흠뻑 젖어 행복해하겠지?!


하지만.. 바로 그때.

막내와 나는 그녀를 미스코리아 품 안에서 뺏어와

손을 잡고 신나게 댄스 타임을 갖고 말 것이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아싸~~~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우리 넷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흥에 취해 열심히 손가락을 하늘로 찔러대는

춤사위를 한바탕 흥겹게 벌일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렇게... 삼도천 끝에 이르고,

드디어.. 우리가 그녀의 손을 놓고 보내줘야 할 시간이 오면.

담담하게... 그녀의 손을 놓으리라..

그럼. 그녀는 어릴 적, 꼭 나처럼 한 걸음 가다 돌아보고

또 한걸음 가다 돌아볼까?!... 돌아볼 것이다.


마침내... 더 이상 걸음을 내딛을 수 없는 끝에 이르면,

그녀도 참았던 눈물 콧물을 쏟아낼까?!... 쏟아낼 것이다.


그럼.. 우리는 영영 떠나지 않을 것처럼 그 옛날 그녀처럼,

그 자리에 나란히 서서

오랜동안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리라.

잘 다녀오라는 듯이... 다시 만나자는 듯이 말이다.


어릴 적.. 그녀가 나에게 아니, 우리에게 그랬듯.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돌아가 그래도... 그 와중에... 즐거웠다고 그녀가 말했으면 좋겠다.


p.s "그녀에게" 연재는 이번화를 마지막으로 끝낼까 합니다.

묻지도 궁금하지도 않았을 이야기인데.. 함께 웃고 울어 주신 분이 한분이라도 계시다면

덕분에... 참말로 행복했고,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꾸벅)


언젠가... 또 다른 글을 쓸 용기가 생기는 날이 오면 그날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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