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자 Oct 25. 2024

그녀에게

10.  담배 피우는 아가.

대낮의 북적이는 대형 쇼핑몰.

사람들로 꽉 찼지만, 조용한 엘리베이터 안.


"아가야.. 일로 온나.. 엄마 무릎 위에 앉아라"

순간, 엘리베이터 안, 사람들은 휠체어에 탄 할머니가 애타게 찾는 '아가'를 같이 찾느라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이때,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올해, 마흔세 살이 된 그녀의 아가(막내딸)는

있는 힘껏!! 그녀의 입을 틀어막는다.

술렁이는 엘리베이터 안.


그녀는 해맑은 눈으로 마흔세 살 아가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입을 틀어막아봤자 소용없다.)

"와 아가야?! 다리 안 아푸나?!"

(나는 엘리베이터 벽을 보고 서서 키득대며 웃었다. 마치, 그녀와 그녀의 아가와는 아무 사이도 아닌 양)

마흔세 살 아기는 사람들의 눈빛 세례를 한 몸에 받으며,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의 휠체어를 끌고, 부리나케 도망간다.


그렇다. 그녀의 아기는 올해로, 마흔세 살이다.



우리 집에 별이 이사를 왔다.


나의, 시커먼 아부지는 제사상 앞(그녀가 다 차려놓은)에만 앉았다 하면,

"아이고... 내가 대를 끊어 놓고.. 조상님들 면목이 없심미더" 하는 돌림 노래를 부르며, 그녀를 노려봤다.

(아들을 못 낳은 게, 꼭 그녀의 잘못인 듯)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서른여덟(당시로서는 늦은 나이). 늦디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으려고, 막내를 낳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의 시커먼 아부지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녀가 진통을 시작한 지, 채, 5분(시커먼 아부지가 의사 선생님을 부르러 간 사이)도 안 되어,

성질 급한 막내는 머리를 빼꼼 내밀며, 이 세상에 나왔고. (이게.. 다 내 큰 머리가 앞 서, 길을 잘 닦아 놓은 덕분일 것이다.) 불행히도 고추는 안 단 채였다.


언니와 내가 라면을 막, 한 젓가락을 떠먹고 있을 때였다.

그녀와 나의 시커먼 아부지가 작은 담요에 쌓인 아기를 안고 현관문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젓가락을 집어던지고, 아기를 보려고 달려 나갔다.

나는 그날의 모든 걸,  똑. 똑. 히 기억한다.

(그날 밤공기의 냄새, 깜빡 깜빡이던 마루 백열등의 온도, 그날따라, 시커먼 아부지의 유난히 벌렁거리던 콧구녕.. 그리고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그녀의 나른하고, 달콤한 미소까지도)


"우와.. 아부지 재주 좋네"

나는 시커먼 아부지와 너무, 작아서 손가락을 만지기만 해도 부서져 없어질 것만 같은 아기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도저히.. 시커먼 아부지 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기는 하얗게 빛났다.

나의 시커먼 아부지가, 하늘의 별을 따온 게 분명했다.

먹는 거 하면 아주 환장을 했던 나는,

인제 막, 하늘에서 우리 집으로 이사 온 을 구경하느라

먹다 남은 라면이 냄비 안에서 퉁퉁 불어 가고 있는 것도 까먹었다.

그날 밤은 아주 길고 반짝거리고 참말로, 행복했다.


그녀의 별은 어느새, 인간 밥을 먹고, 인간처럼, 오줌을 싸더니, 인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언니야 내..쉬(오줌) 하고 싶다."


그러더니,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고, 온 집을 엉망진창으로, 헤집고 다녔다.

좀 전까지 그녀의 오래된 화장대 위에, 올라앉아 그녀의 낡고 쿰쿰한 화장품을

온 얼굴에 떡칠을 하는 걸 분명 봤는데,

어느 순간, 시커먼 아부지 어깨 위에 올라앉아,

시커먼 아부지의 머리를 몽땅 뜯을 기세로, 잡아 뜯고 있었다.

그러는 걸, 보고 내가 막 집을 나설라 치면,

"언니야 내캉 같이 놀자"

런닝구와 빤스만 입은 채로, 어느새, 내 뒤꽁무니를 쫓아 나와

나보다 앞장서서, 동네방네를 휘젓고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유니 델꼬 나가면 내 맘대로 몬 노니깐.. 엄마가 좀 봐라"

하는 내 말에..

"절간 같았던 집이... 애기 때문에 환해졌다."

자신의 아기가 혹시나, 밥을 먹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며 아기(밥그릇 숟가락 들고, 우야든 둥 먹이려고) 뒤를 마치, 껌딱지처럼 쫓아다니던

그녀는 막내가 뛰어나가는 뒷모습을 길게 보며, 살포시 웃었다.

"말이가 방구가?!"

그때쯤, 나는, 내 말에는 대꾸도 없던 그녀도, 나만 쫄쫄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던 막내도 미워지기 시작했다. 


전편에서 말했듯,

그 시절 우리 집은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

"염소 집 여자가 막내를 저그 집에 달라카대...저그가 잘 키아 준다꼬..."

동네 사람들은 다 알았다.

우리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그녀의 전재산이 얼마인지.

그리고, 나의 시커먼 아부지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그녀를 샌드백 삼아 권투를 해대는지.

(밤마다.. '우리 엄마 좀 살려 주이소' 하며.. 우리가 두드린 대문의 수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이)


염소집은, 우리 시커먼 아부지만큼, 시커먼 염소를 백 마리쯤 가지고 있는 부잣집이었다.

그 집에는 제법 큰 오빠와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가 있었다.

"딸도 있고, 아들도 있는 집인데... 와 우리 막내를 달라카지"

나로서는 희한했다.


"아가.. 그 집 가면... 맛있는 것도 많고, 이쁜 옷도 입을 수 있는데.. 그 집 가서 살래?!"

그녀는 막내를 붙잡고 물었다.

그날도, 친구 순수(이름처럼, 순수하지 않았던 모양)한테 얻어터져서 뺨이 뻘겋게 부어오른 (매일 얻어터지고 꼬집혀도, 순수와 놀고 싶어 했더랬다.) 막내는 울었다.

"싫타.. 내 엄마캉.. 살끼다.. 내 딴 집에 보내면 안 돼"

막내는, 그녀의 팔에 매달리며, 길게 울었다.

조금 귀찮았지만.. 내 동생인데.. 나도 팔등으로 괜스레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그녀의 아기를 오랫동안 허리에서 내려놓지 않고, 업고 다녔다.

동네 사람 다 보란 듯이.

염소집 아줌마 보란 듯이 말이다.


"아이고.. 니가 맨날천날 너그 엄마 등에 업히 댕기던 그 아가?!"

시장 상인들이 멀쩡한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막내(중학교 교복을 입고)를 신기하게 보며,

기가 막혀, 다들 한 소리씩 거들 정도였으니.. 알만하지 않은가?!




담배 피우는 아가.


'염소집 아줌마'가 막내를 갖고 싶어 했던 그때.

그녀의 나이만큼. 딱 그만큼. 그녀의 아가는 나이를 먹었다.


두어 달 전. 그녀의 아가가. 거제도 출장이 잡히는 바람에.

그녀와 나. 그리고, 그녀의 미스코리아는 신이 나서 가방을 싸서 노래를 부르며, 따라나섰다.

그녀는 집 밥 외에는 그 어떤 외식도 다 싫다고 하신다.

심지어, 장어구이 집에서는 숟가락도 리실만큼 외식거부의 전적이 화려하시다.

아놔... (귀찮지만) 덕분에 우리는 그녀와의 외출 시에는 항상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할머니.. 여기서 그런 거 드시면 안 되지...."

그날, 거제도를 향하던 중, 우리는 휴게소에 들렀다.

셋 딸은 그녀가 도시락에 곁들여 먹을 곰탕을 주문하고, 그 외 우리가 먹을 음식을 주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때마침, 그녀가 앉은자리 앞에 있던 도시락을 보고, 휴게소 직원 여자(20대쯤 보였다.)가

삐딱하니 서서.. 팔짱을 딱 낀 자세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더니, 같잖은 듯한 표정을 보이며 했던 말이다.

그녀는, 그 어린 여직원 말에 못내. 놀랐는지. 도시락을 잡은 손을 발발 떨며 눈만 끔뻑거렸다.


당시, 화장실에 다녀오던 그녀의 아가는.

"그니깐.. 그쪽 말고.. 윗사람 있을 거 아니에요?! 당장 나오라고 해요!!"

시커먼 아부지가 하느님 몰래 훔쳐온 별처럼 빛나고 순했던 (맨날 맞고만 다녔던) 막내가

기어이, 점장이란 사람을 불러낸다.

"아니.. 휴게소 법이(도시락을 먹으면 안 된단다. 처음 안 사실) 그렇다 해도.. 아까 직원 말투가 잘 못 된 거죠.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시는 겁니까?! 사과하세요. 우리 엄마한테 당장"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배꼽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배꼽티에, 힙한 바지차림의 막내가 약 먹은 닭처럼 쪼아대자

그 어린 여직원과 담당자는 고개 숙여 사과했다. (물론, 언니와 나도 참지 않고, 가세했다.)

"그냥 못 넘어갑니다. 민원 제기 할 겁니다. 제가!!"

거기다 막내는 쐐기를 박아버린다.


그녀가 등허리에서 내려놓지 못했던 작고 순했던 아가는,

인제, 힙하고 센 언니가 되어 그녀를 지키고 있다.

 



"모린척 해라.. 딸아.. 절로(저쪽으로) 가자.. 우리 막내 안 보이는 데로"

거제도 호텔,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막내를.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하고 있는 그녀와 내가 목격하고 말았다.

"엄마.. 나 담배 피우고 올게."

막내는 늘 그녀에게 솔직히, 자신이 애연가임을 말한다고 해도,

눈으로 직접 본, 그녀가 적잖이 놀랐을 거 같아

나는 얼른, 휠체어 핸들을 꺾어 막내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급하게 자리를 옮겼다.

"저것이.. 아부지 닮았나 봐 그자 엄마?!"

내가 웃으며 무마하려, 그녀에게 농담을 던졌다.


막내 가졌을 때... 너그 아부지한테 배를 맞았어.. 막달이었는데..

내는 아 떨어졌을까 봐... 울면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개안타고 아는 무사하다고..

뱃속 아는 개안은데..

아지매 대신 내가 경찰에 신고해 줄까요 물어보더라고..

근데.. 내가 아이라예.. 개안심미더 캤어.. 아만 건강하게 잘 있으면... 내는 개아나예 했제!!


세상 태어나 첨 듣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치매가 온 지금에야 꺼내놓는 이야기였다.

막내를 잃어버릴뻔했다는 그날의 이야기는... 말이다.

나는 그녀를 조용히, 그러나 빡세게 껴안았다.


나는 안다. 자신이 부족했기에.. 그녀의 소중한 아가를 염소집에 입양 보내야 하나..

찰나.. 그녀가 고민했었다는 걸.

그 끝도 없는 슬픔을 마주했던, 그녀의 찰나의 얼굴을 나는 기억한다.


"딸아.. 막내 밥 차리주라"

"딸아.. 막내 밥 다 묵었다.. 치아라"

"딸아... 막내 델꼬 드가서 씻기주라"

"딸아... 막내 옷 입히주라"

"딸아..막내 손이 텄는갑다.. 약 좀 발라주라"

"딸아.. 막내 발 주물러주라"


그녀의 마흔세 살 아가를 위해.. 그녀가 요즘 내게 하는 말이다.

막내를 자신의 등허리에서 내 등허리로 옮겨 태우려는 그녀의 쩨쩨한 꼼수다.

그러면 난 당연히..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며,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래... 엄마..(작은 소리로) 절대 안 해!!"


"아가.. 이리 온나.. 옳지.. 수돗가에 손 씻고... 발도 씻고... 엄마한테 업힐래?! 맘마 주까?!"

오늘도, 그녀의 꿈속엔, 온통 그녀의 아가.. 그녀의 별... 그녀의 막내가 가득하다.


p.s 담배를 좀 줄이기를 바라며.. 그녀 인생에 별빛 같았던 그녀의 아가에게 이 글을 보내는 바이다. 크흠..

이전 09화 그녀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