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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Oct 23. 2024

그녀에게

08. 아주 긴 안녕.

새우깡이 변신을 해서, 매운 새우깡이 되더니.. 이제는 먹태깡까지 나왔다.

새우깡이 먹태깡을 낳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절대.. 내가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폴더폰 할매


"쾅쾅쾅!! 수진아!! 쾅쾅쾅!! 수지.....나아아아아아"

언젠가는, 내가 저 할매 입을 기냥 확 꿰 매 버리고야 만다..

허구한 날. 우리 집 녹슨, 철대문을 나무 지팡이로 부술 듯이 때리며,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 

다름 아닌, 옆집(스머프 집 마냥 작아서,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집)에 사는, 

폴더 폰 마냥 허리가 굽은 할매(부영이 할매)다.

내가 아장아장 걷던 시절. 폴더 폰 할매 집에는 며느리와 손자가 함께 살았다.

하지만, 내가 학교를 갈 무렵. 며느리와 손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얼굴을 보였고,

어느덧, 그들의 발길이 끊기자, 폴더 폰 할매 혼자만 살았다.


"쾅쾅쾅!! 살아 있으면 콧구녕이라도 내밀어 봐라"

'아놔.. 시꾸럽다.. 진짜..'

나는 이제 막,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참이었다.

그러니깐,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방 구들장. 아래. 끝을 알 수 없는 땅 속. 저 아래까지 

내 영혼을 추락시키고 있는 일에 몰두하는 중이란 말이다.


"절에 있다카던데.. 점빵 여자가"

며칠 전, 시커먼 아부지가 샌드백인 양 두들겨 패버려서, 신발도 못 신고 도망간 그녀의

소식을 시커먼 아부지가 어린 우리에게 전했다.

'도망가라고 고래 때리놓고... 와 찾으러 댕기노?!'

똥구멍을 꽉 조이며, 암만 골똘히, 생각에 잠겨봐도.. 

시커먼 아부지의 시커먼 속내를 나는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를 보고 싶어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내 맘이.. 

흘러넘쳐, 눈 밖으로 '눈물'이 되어 흐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구들장 아래, 깊은 땅 속으로 내 영혼을 밀어 넣는 일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중이란 말이다.


"니 고 방 안에 있는 거 다 안다...!! 퍼뜩 안 나오나?!"

드디어 폴더폰 할매가 우리 집 현관문 앞까지 쳐들어왔다.

'아놔...'


나는, 지겹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한쪽, 손을 쫙 펴서 내밀면,

폴더폰 할매는 꼬깃꼬깃 드러운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턱 하니 내려놓는다.

"새우깡 하나캉.."

"소주 하나. "

다 안다. 할매는 내가 땅속 탐험을 할라 치면, 

어김없이 나타나. 새우깡 하나와 소주 하나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천 원으로 두 개를 사고 나면 200원 정도가 남았다. 난 그 200원을 아주, 당연한 듯이 내 주머니에 넣었다.)


"할매.... 허리 좀 피봐라"

나는 새우깡(늘 할매 돈으로 산 새우깡은 내 몫이었다.)을 입 안으로 밀어 넣으며, 

깡소주만 마셔대는 폴더폰 할매를 넌지시 보며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폴더폰 할매는, 조용히 내 옆, 그네에 앉아 깡소주만 마셔댔다.

나는 넌지시, 새우깡 하나를 내밀었다.

"암바사도 아이고.. 그기 모가 맛나다고!! 아나.. 새우깡이라도 좀 묵고 마시라.."

폴더폰 할매는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우리 둘은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그네에 나란히 앉아. 

한 사람은 깡소주를, 한 사람은 깡새우깡을 먹었다.


해가 지다 못해, 온 마을에 칠흑 같은 어둠이 쳐들어와도, 우리 둘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저만치 앞 서 가면, 폴더폰 할매는 (굽은 허리 탓에) 얼굴이 땅에 닿을 듯 걸으며 내 뒤를 쫓아왔다.

나는 걷다 돌아보다.. 걷다 돌아보다 하며. 폴더폰 할매와 거의 동시에 집 앞에 도착했다.

"밥은?!"

나는 괜스레 발끝에 걸리는 돌멩이를 팡팡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폴더폰 할매는. 더는 묻지 않고, 돌아서서 집으로 올라갔다.


다음 날, 새벽. 으스스한 한기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놀라 잠을 깨서 나가보니,

그녀가 돌아와, 연탄불을 갈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나는 조용히... (실은, 감격에 가득 찬 채) 그녀를 뒤에서 으스러질 때까지 껴안았다.

"부영이 할매 집에 연탄 있는가 모리겠다."

그녀는 연탄집게에 연탄을 한 장 집어 들고 앞서 갔다.

내는 손을 호호 불며, 졸래졸래.. 그녀 뒤를 쫓아갔다.


"아구.. 연탄 불이 꺼진 지.. 한참 됐나 보네"

그녀는 아궁이를 열고, 폴더폰 할매 집 연탄을 갈고 난 뒤. 

성큼성큼 걸어가, 할머니 방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연탄불 앞에서 손을 녹이고 있었다.

"수진아... 집에 먼저 가.. 있어라."

"와..?!"

내가 휙 돌아보자, 그녀는 잽싸게 방문을 닫아 버렸다. 


그날 새벽. 폴더 폰 할매는 영영 돌아오질 못할 먼 길을 떠났다고 그녀가 슬픈 눈으로, 알려줬다.

'치.. 내한테 맨날 천날 심부름만 시키더니.. 인사도 안 하고 치사하게... 가는 법이 오데 있노'

나는 할매가 듣지도 못할... 혼잣말을 아주 크게 했다.


폴더폰 할매가 정말로, 치사하게 인사도 없이 가는 덕분에.. 

나는 폴더폰 할매가 갈 때, 허리를 꼿꼿이 채로, 눈으로 세상 구경을 하고 갔는지

아님. 허리가 굽은 채로 땅만 보고 갔는지 끝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오랫동안... 나는.. 아니.. 나이가 그때의 그녀만큼 먹은 지금도. 그 사실이 몹시도, 궁금하다.



아주 긴 안녕


우리가 안방 드나들듯 했던, 그 (고향) 길, 한가운데 서서 그녀가

"딸아.. 요가 오데고" 물었을 때.. 나는 직감을 했다.

그녀와 맞잡은 손을 언젠가, 놓아야 할 순간이 오겠구나.

그땐, 그녀의 죽음 따윈, 한 번도 상상해 본 적도 없을 만큼, 그녀의 몸이 건강했던 시절이었다.

그랬기에, 아팠다.


그렇게, 꽃이 피고 꽃이 졌다.

호랑이처럼 딸 들 앞에서 잔소리를 해대던 그녀는.

"내 니 말 잘 듣제?!" 하는 아기가 되었다.


그렇게, 꽃이 피고 꽃이 졌다.

지팡이를 짚다가, 보행기를 끌다가, 인제는 휠체어 없이는 걷는 게 힘들어져 버린

그녀는 영락없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렇게, 꽃이 피고 꽃이 졌다.

파리채를 휘두르며 "저그... 공부 안 하면 성냥 공장 보내삔다." 하던 무섭던 그녀는

내 배를 어루만지며 "내가 요서 나왔나?!"

하며, 시집도 못 가본 딸을 졸지에, 여든한 살짜리 딸이 있는 엄마로 만들어 버리는 개구쟁이가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매일 조금씩. 이별하는 중이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아주 긴 안녕'을 서로에게 고하고 있는 중이다.


p.s 폴더폰 할매처럼.. "안녕"을 고하지도 못한 채, 나의 그녀를 보내게 했더라면.

난 당장 하늘로 튀어올라.. 하늘에 계시다는 높은 분 멱살이라도 잡아 흔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하늘에 계시다는 높은 분은 언행을 조심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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