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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Oct 23. 2024

그녀에게

07. 그녀의 도둑.

그녀에겐. 오래된 잠버릇이 하나 있다.

그녀가 인지 장애가 시작될 무렵부터 지금까지니, 10년도 훨씬 넘은 듯하다.

그 잠버릇이란, 지갑과 통장, 돈뭉치와, 도장등이 들어 있는 '그녀의 핸드백'을 꼭 끌어안거나,

것도 힘들라치면. 핸드백 줄이라도 팔목이든 다리든 어디든.. 

자신의 몸에 칭칭 감아야만! 그제야, 편히, 잠에 든다는 것이다.


오뉴월에도 얼어 죽게 만들어 주고 싶은... 그녀의 "도둑 망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엄마.. 통장에 돈 많아.. 나중에 엄마 저 세상 가면, 너그 셋이 똑같이 갈라(나눠)해라."

그나마, 요즘엔.. "도둑 망상"이 꼬랑지를 내리고, 주춤하는 중이다.


"이 도둑년아!! 니 죽고.. 내 죽자!!"

그녀의 악다구니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아득히 먼 옛날(?!) 그때.



사과해야지. 나한테!!


그때가.. 8년 전쯤일 거다.

그녀의 "돈 망상"이 만개하듯 피어오를 때쯤이었으니깐.

그녀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우체국을 참새 방앗간 드나들듯, 하며, 

돈을 집어넣었다가, 뺏다가 하느라 비질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날도, 네댓 번은 우체국에 들른 모양이었다.


그녀, 가라사대.

분명! 돈(전 재산)을 몽땅 다 찾아서, 우체국 직원에게 맡겨놓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한 뒤,

화장실에 잠시 갔다가 나오는 사이, 돈이 몽땅 다!! 행방불명 됐다고 했다.

그 시각, 그녀가 우체국에 갔는지 아닌지를 도통 알 수가 없던 나(볼일 있어 다녀옴)를 붙잡고,

그녀는.. 용이 뜨거운 불을 내뿜듯.. 내 온몸을.. 온 마음을 불에 태워 죽일 듯, 악악 댔다.

"돈 찾아온나.. 이 도둑년!! 니가 그 우체국 여자캉 짜고 내 돈 빼돌맀제?!"

그녀가 몇 년 동안,  좋은 거 하나 안 사서 쓰고, 길거리 오뎅 하나 안 사 먹고, 

모은 전재산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고

지. 금. 은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는 여유가 생겼지만,

당시에는, 나도 같이 입에서 불을 뿜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었다. 


하는 수 없이, 언니와 나는 우체국으로 가.. 머리를 조아리며, 양해를 구해, 

그녀의 전 재산이 몽땅 사라진 그날의 cctv를 돌려 봤다.

cctv 속, 그녀는 찾은 돈(현금 다발)을 핸드백 안에 얌전히 넣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유유히 우체국을 빠져나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카메라가 거짓말을 할리가 있냐는 우리에게.. 그녀는

"우체국 그 여자들 아니면 누가 그랬노?! 도둑년이 수지이(수진)란 말이제?"

그녀는 거의 일주일 넘게. 그녀의 전재산 중, 십원도 구경 못 해 본 나를 도둑년(장발장처럼 빵이라도 훔쳐 먹었다면, 덜 억울하겠다 싶은 심정이었다.)으로 확신하며 들들 볶아댔다.


"여보세요.. 여기 경찰선데요..*** 할머니 지갑을 잃어버리셨죠?!"

그녀의 전재산인 바로 그!! 현금 다발(과 통장)을 주운 사람이 

다행히도 경찰서에 만원 한 장도 빼지 않고 그대로 갖다 주신 후, 유유히(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지만, 이름도 남기지 않으셨다.ㅠ) 사라졌다고 하셨다.

"찾았으면 됐제.. 내 보고 우짜라꼬?!"

현금 다발을 가슴에 아기처럼 소중하게 품고, 

그녀는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미는 중이다. 

아주 얄밉다 못해.. 아주 그냥 내 딸이었으면 한대 쥐어박고 싶을 만큼이었다.


"우짜기는!! 몰라서 묻나?! 엄. 마. 가 사과해야지.. 나한테"

하마터면 핏대를 세우며, 소리칠 뻔했다. 

아니.. 나 좀 보라는 듯 그녀 앞에 퍼질러 앉아 어린아이마냥 펑펑 울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한마디도 못했다.

혹시나, 돈이 모자라지나 않은지 돈다발을 세며, 행복해야 하는 그녀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니깐?!

그건 아니다.

그 순간!! 오래전. 내가 그녀의 소중한 '만원'을 훔치고 뻔뻔하리 만치, 지금의 그녀처럼 오리발을 내밀었던, 

어릴적, 그날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던 날.


그녀의 눈이 눈물을 머금은 소를 닮아, 유난히 슬퍼 보인다고 생각을 막 했을 참이었으니,

때는, 국민학교 4학년쯤이었다.


우리 집은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여기서, 정확하게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도통, 감이 잘 오지 않은 분들이 있을 테니, 설명을 덧붙이자면,

우리 집에서 국민학교까지.. 아이들 걸음으로 걸어서 꼭 40~50분이 걸리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기다리 봐라"

비 오는 날 아침. 그녀는 등교를 하려는 언니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급하게, 자신의 지갑과.. 시커먼 아부지의 가다마이 주머니.. 부엌 찬장... 안방 장롱 안을 뒤져,

우리 손에 들려 보낼 차비를 모으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가방을 멘 채로, 그런 그녀를 빤히 보고 서 있었다.

그녀는, 안절부절 못한 채,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십원 짜리 동전들을 세고 또 셌다.

"하나.. 둘.. 셋.. 넷.."

아무리 세고, 또 세 봐도.. 10원짜리 동전은 아홉 개 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버스비가 한 사람당 200원쯤이었을 거다. 그러니, 한 사람 몫의 차비도 안되었던 것이다. 우린 늘 차비가 없어서 먼 거리를 걸어 다녔다.)

"우리 걸어가도 된다."

눈치가 빤했던, 세 살 위인, 언니는 내 손을 잡아끌고 집을 나섰다.

"와.. 버스 타고 가면 좋잖아"

눈치가 없던 나는 그녀와 언니 사이에서 갈등하며 이렇게 외쳤다.


그러던 어느 날,

허구한 날, 방구들 지고 앉아 콧구멍을 파다가, 콧구멍도 너무 오래 파 지겹다 싶으면 때려치우고,

하릴없이 이발관에 나가 술을 마신 뒤, 애먼 사람을 붙잡고, 쌈박질을 일삼던,

시커먼 아부지에게 버스를 사줄 요량으로(당시, 버스 기사는 현금 장사였기에, 수입이 짭짤했다. ) 

그녀는 공장이며, 식당...등을 하루 두 군데씩 뛰며, 한 푼 두 푼 돈을 마련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월급을 받아온 그녀가, 만 원짜리 뭉치로 꽤 되는 현금을 자신의 장롱 젤 안쪽에 넣어 두는 걸 

하필, 마루에서 놀던 내가 봐 버린 게,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어느, 기분 좋은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난 그녀가 무슨 007 작전이라도 펼치듯, 자신의 장롱 깊숙이 넣어둔 돈뭉치에서, 

딱!(거짓말 아니다.) 만원을 훔쳐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갔다.

친구와 함께 갔는데.. 그 친구네 집은 내가 주로, 배냇저고리를 즐겨 입던 시절부터 

소장사를 하는 아부지가 있었기에, 꽤나 부유했다. (주로, 내가 먹고 싶었던 과자, 음료수, 딱지, 팽이들을 다량 보유했던 친구였음)


나는 친구에게 '내두 돈 좀 있는 사람이야'하고 자랑하고 싶어서인지.. 아님.. 너무 갖고 싶어서인지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아무튼.. 문방구에 가서.. 딱 만원 어치의 물건을 샀다.

마분지.. 색종이.. 딱지.. 팽이.. 딱 핀 뭐 그딴 잡다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조금 나눠줬다.

그날, 나는 기분이 째지게 좋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리를 비틀어 대며, 춤을 추며, 집으로 갔다.


그리고, 조용한 며칠이 지났다. (아무도, 내가 한 짓을 못 알아차린 것에 감사하는 날들.)

꼬박 일주일 후!!

나는 벽돌인지.. 시멘트인지 정체 모를 그 중간쯤 되는 크기의 돌멩이를 머리 위로 바짝 들고, 

마당에 서서 벌을 서고 있는 중이다.

"똑바로 안 드나.. 저녁이고 뭐고 없다. 내리라 카기 전에 내리면 우예 되는지 알제?!"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그 돌멩이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내느라 똥줄이 빠졌다.

자신이 무슨.. 얼음 왕국의 엘사라도 되는 것처럼, 돌멩이 마냥 차가워진 그녀가, 

예의 그 차가운 눈으로, 마당에 선 나와 눈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나는 절대, 그녀가 나와 눈이 맞출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니... 줄 수 없었다.

"잘몬했심미더. 안 카나?!"

나는 입을 한 일자로 꾹 다문채, 잘못을 빌지 않았다.

'그까이꺼.. 만원이 뭐... 내두 유지이(유진)이 맹크로.. 좋은 거 갖고 싶어가 그랬다. 와'

당시,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나는. 

뭘 잘했다고 혼자 뇌까리며, 아무 죄 없는 땅만 노려봤다.

마치, 그것이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되는 양!!




어쩌면, 그녀의 붉은 열꽃 같았던, "도둑 망상"은 날개를 달고,

그날, 그 마당에서 몽니를 부리고 서 있던 나를 보고 온 듯했다.

딸 셋 중, 정확히 나를 지목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녀가 옳았다.

나는 "그녀의 도둑"이다.


"엄마.. 나 겨울 조끼 하나만 사줘 봐"

"쪼오오.... 끼?!"

놀란, 토끼눈이 된 그녀가 나를 빤히 보며 묻는다.

"웅.. 엄마도 있잖아.. 나는 없어.. 하나 사줘 봐.. 십만 원쯤 할 걸"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외로 꼬고, 내 눈을 피하며

"엄마.. 돈 읎는데..."

들릴 듯, 말듯, 목 안으로 기어 들어가는 소리를 낸다.

"그럼.. 어떡해. 붕어빵이라도 사줄 거야?!"

"붕어빠아아앙?! 그거는 을만데?!"

오호라!! 이번엔 꽤 자신만만한 목소리다.

"몰라.. 세 마리에 천 원?!"

"좋았어!!.. 그거는 엄마가 사준다. 딸아"


올해는.. 우야든 둥!! 

그녀가 핸드백에서 천. 원을 꺼내서 내게 붕어빵을 사주게 만들고 말리라.

그리고!!

나는 어금니로, 붕어빵을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얼어 죽을 저놈의 "도둑망상"의 날개를  댕강..부러뜨릴 묘수를 생각하내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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