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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Oct 18. 2024

그녀에게

06. 나는 왕이 될 상이다.

"니 앞머리, 안 치우나?! 가위로 다 짤라뿐다 확 마!!"

분명, '솔' 정도 높이로다가 코를 '드렁드렁' 골며 기절해 자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그때 시간이, 새벽 3시 정도였다.) 눈을 번쩍 뜨더니,

내 얼굴을 보며, 버럭, 화를  낸다.

나는 너무 놀라,

'아 엄마 깼어?'/ '왜 깼어?'/ '알았어. 앞머리 치울게' 중에서,

어떤 리액션을 취해야 할까 잠시 고르던 사이,

"드르렁드르렁"

그녀는 다시, '솔'정도의 높이로다가 일정하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나는 쌕쌕 애기처럼 잠든 그녀의 귀에다 나지막이 속삭인다.

"암만 그래도, 내 앞머리는 못 치운다... 엄마"


내 앞머리에 대한 그녀의 집착.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필코 앞머리를 잘라대는 끈질긴 내 고집.

누구 하나, 지지 않는 우리의 이 길고도 오래된, 싸움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큰 (관)상이다.


'맴맴맴맴'

때는 바야흐로, 1977년 7월 7일.

낮동안 뙤약볕이 내리쬐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며 노을이 내리던 저녁이었다.

그녀는 인제 막, 세상 빛을 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를 그녀의 뱃속에서 끄집어내어 주기 위해

터질듯한 배를 안고, 동네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우리 병원에서는 요아는 몬 낳습미더."

"와예?! 선생님"

힘을 쓰다 쓰다 결국, 새파랗게 질려 기절해 버린 그녀와

그런, 엄마가 진짜 죽은 줄만 알고, 세상이 찢어져라 울던 갓, 세 살이 된, 언니를 대신해서

시커먼 아부지가 의사에게 물었다.

"머리가... (손바닥을 머리 위로 크게 동그라미 한 채로)이따만해서"

그랬다. 나는 너어무~~ 머리가 커서, 결국, 인근 대학병원에 가서야,

의사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세상 구경을 했다고 한다.


"큰 상이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이 세상으로 온 첫날부터.

그녀는 내 커다란 얼굴 중 특히, 이마를 보면 꼭 이렇게 말했다. (마치, 신이라도 온 냥, 심오한 눈빛을 빛내며)


그러니,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 이마를 내가 앞머리를 잘라 덮고(머리가 크니 나로서는 최선이다.) 다니니,

그녀는 지금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화를 내기 일쑤다.

"니 그 앞머리 가위로  다 짤라뿐다. 확 마!!"




"나는 왕이 될 상이다."


나는(그녀의 예언대로 큰상이 되기 위해) 한때, "김은숙" 작가를 꿈꿨었다.

작가 교육원을 나오고,  공모전에 만 오천 번쯤 낙방을 하고, 

그러다 시트콤에 공동 작가로 일을 하게 되었고, 

꽤 유명한 드라마 작가님 밑에서 보조작가도 했다.

그렇게 8년의 시간을 오로지! 목표 하나만 가지고 달렸다.

그리하여, 두둥!!  드디어, 이름만 들어도 다 알만한 제작사와 '집필 계약서'를 쓰던 날.

그녀는 밥 먹던 숟가락을 휙 집어던지고, 일어나서 둥실둥실 춤을 추며 이렇게 말했다.

"봐라.. 엄마 말이 딱 맞제?! 니는 큰 상이다."


나는 그녀의 예언을 진짜로 믿게 되었다. (또한, 앞머리도 반으로 얌전히 갈라, 양쪽 귀 뒤로 살포시 넘겼다.)

난생, 처음 계약금을 받고, 그 돈으로 난생처음 가보는 비싼 횟집에서 그녀에게 랍스터를 쐈다.

그녀는 행복해하며, 그 많은 랍스터를 독점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꽤 값비싼 볼펜, 노트, 연필, 지우개 등을 샀다.

"이 정도 사치는 부려도 돼"

하는 행복한 허세를 부리며.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법.

쓰고, 수정하고, 고치고, 수정하고를 3년째 하던 지리했던 어느 날,

회의를 하던 중, 나는 쓰러졌다.

그날! 나를 위해, 앰뷸런스가 3대가 달려오는 동안,

회사 사람들이 돌아가며,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한다.

이윽고, 응급실안에서 '코드 블루' 방송이 정신없이 나오자,

병원 내 수많은 의사들이 응급실 안으로 나를 살리려, 뛰어 들어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고도 했다.


그날, 나는 '부정맥' 때문에, 심장마비가 왔다.

자칫, (그 날, 나를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달려주지 않았다면), 5분만 지체했음..

나는, 지금. 여기 이 지구에, 사랑하는 그녀 곁에 없을 뻔했다.


까마득한 오래 전, 체육 시간. 

체육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면, 아이들은 일제히 잘도 달렸다.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달리면서 나온 것처럼.

하지만, 나는 잘 달리지를 못했다. 달리고 싶지 않았다. 달리는 행위가 싫었다.

달릴 때, 느끼는 내 귀를 간지럽히는 바람.. 외에는

달리기가 왜 좋은지..왜 달려야 하는지 딱히, 이유를 못 찾았달까?!

100M 달리기 기록이 23초면 알만하지 않은가?!

지금도, 내가 달리는 모양을 보는 사람들은 ..

달리는 행위를 한다기 보다는 그저, 아장아장 걷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런, 내가 쉬지도 않고, 그리 오래 달리기를 했으니, 심장이 멈출 만도 했다.


그렇게, 그녀의 '큰상'인 나는 심장에 '페이스 메이커(심장 박동기 :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면, 심장에 쇼크를 주어, 원 상태로 돌려놓는 심장에 다는 작은 기계)'를 달고

6년째, 그녀를 케어하며, 밥 솥을 운전하는 중이다. (왕이 될 상은 개뿔!! 다시, 앞머리도 내려 이마를 덮었다.)




그래도, 나는 큰 상이다.


"큰 상이다."

그녀의 치매가 이제, 막 첫 모퉁이를 돌며 깊어질 때, 나는 이 말이 너무 싫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나한테 어쩌라고.

"그만해. 그럼.. 내가 일할 수 있게 해 주든가.. 집에서 엄마 돌보고, 살림하면서 어떻게 글을 쓰라고?!"

하며, 글이 손에 잡히지 않는 매일 매일을.. 모두 그녀 탓으로 돌렸다.

"미안하다.. 딸아.."

순간, 그녀는 작은 아기가 되어, '엄마가 나 때문에 화가 많이 났나' 싶은 듯, 내 눈치를 살피며

내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니깐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딸아... 둘째 데리고 병원에 가봐라.. 아프다.. 아가"

분명! 나와 둘이서, 저녁도 잘 먹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도 부르고, 

신나게 놀았는데, 그녀가 퇴근한 큰 딸을 붙잡고 뜬구름을 잡고 있다.

"엄마.. 나 괜찮아"

무슨 얘기인가 싶어, 화장실에서 급히, 뛰어 나가는 나를 가만히, 올려다 보더니

그녀는 주먹으로 가슴을 쳐댔다.

"니가 아프면.. 엄마는 무너진다... 딸아.."

한동안, 나는.. 우두망찰.. 그 자리에 못 박혀 있었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내가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건데..

몽땅 다! 그녀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그렇게.. 6년이 지났다.

"니는 이마가 큰상이다... 엄마 살아 있을 때 해봐라."

그녀는 여전히, 앞머리를 손으로 억지로 쓸어 넘겨 치우며, 말한다.


그렇게, 넘어진 채로만 있지 말라고, 이제는 그만 일어서서 걸어 보라고, 

그러다 보면 예전처럼 다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달리기도 할 수 있다고.

그러니, 다시 글을 쓰라고!!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를 내며, 세찬 물개 박수를 보내는

녀식의 딸을 향한 뜨거운 응원걸. 나는 이제야 안다.

우리는 이렇게, 인생의 또 한 모퉁이를 손을 잡고 돌고 있다.



"엄마.. 내가 왕이 될 상이지?!"

오늘 아침, 밥을 먹으며

위풍도 당당하게,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이야.. 왕은 안되지.. 키가 작아서 안돼.. 왕 그 밑에!!"라고

그녀는 운동장만 한 내 이마를 까뒤집으며 말했다.

아놔!!


P.S '김은숙'작가처럼 되겠다는 꿈은 개나 줘버리고, 그래도 하루하루 글 쓰는 게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꿈을 브런치를 연재하며 이제 막 다시, 꾸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그녀의 말이 맞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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