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자 Oct 16. 2024

그녀에게

04. 달고나 집 사장님은 장사가 안 돼서 우짜노

그녀의 나이는 올해 여든한 살이 되었고,

더불어, 몸무게도 나이만큼 무럭무럭 불어나서 94kg(인생 최대의 몸무게 갱신)가 되었다.


사람들이, 그녀를 상대로 '씨름 선수 몸 불리기' 같은 실험 한 거냐고 내게 물으면,

나는 턱을 추켜 올리며, 대답했다. 

'할머니가 살 빠지면 그때부터 아픈 거야. 뭣도 모르면서'


"똑바로 말해 보세요. 그동안 뭐 뭐 먹였는지!!"

누군가, 뻔뻔하고 당당했던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순간이었다.

나는 얼얼한 뒤통수를 감싸 쥔 채, 눈만 끔뻑끔뻑거리며, 가만히, 그를 올려다봤다.

반 곱슬머리의 웨이브를 멋있게 빗어 넘긴, 꽤 핸섬한 외모에, 

젠틀한 매너까지 갖춘 일흔을 갓 넘긴 듯한 의사가

 '이런, 무식하고 답답한 여자를 다 보았나'

하는 눈빛으로, 책상을 탁탁 치며 나를 닦아세우고 있는 중이다.

"저 연세에 혈당이 300이면, 큰일 나는 거 몰라요?! 큰일 나는 거 보고 싶어요?!"


"아니요!!" (마음속으로만 아주 크게 외침)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와 눈도 못 맞춘 채,

애꿎은 신발 코만 콕콕 찍어댔다. (이게 현실이다.)

그즈음. 나는 그녀가 잘 먹는 거라면, 골고루 양껏 드렸다. 

(우울하거나 그분<치매로 인해 화가 날 때 하는 표현임>이 오실듯한 기미만 보이면 말이다.)


"그게.. 호박죽, 빵, 떡, 초콜릿, 꿀....달고나!!"

내가 주로, 그녀에게 주는 간식들을 쭉 읊어대자,

젠틀한 그 의사는 의자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책상을 손바닥으로 "쾅" 내려쳤다.

"달고나.. 지금 달고나라고 했어요?! 설탕 덩어리를.. 세상에"

'뭐 이런..."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는 의사와

감히, 눈도 못 마주친 채, 나는 그저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그의 말이 옳다. 내 잘못이다. (절대! 절대! 그녀가 큰일 나는 걸 보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녀 몸에 당뇨의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날 동안. 

무식하게 못 본 척 한 내 잘못.


그 의사의 긴 연설이 이어지자,

의사의 입 위로, 음소거 이모티콘이 뜨더니,

순간. 그녀도 누군가에게 지금의 나처럼(그녀가 죄인인 양)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던

그 옛날 그 교실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그 외 다수'였다.


고등학교 입학 원서를 쓸 즈음이었으니깐 늦은 가을이었을 게다.

전교 20등 안까지는 '마산 연합 고등학교'에 원서를 낼 수 있었고, 

그 뒤로, 전교 50등까지는 '김해 여고'에 원서를 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외의 학생들은 각 읍, 시내에 있는 농고, 여상, 공고등 

다양한 고등학교 중 한 학교를 선택해서 원서를 낼 수 있었다. 


럭키비키!! 운이 좋게도 나는 '그 외'(전교 50등 밖)에 속했다. 

그만큼 입학 원서를 낼 수 있는 고등학교도 다양했으니 땡!! 잡았달까?!


하지만, 그녀는 내가 '그 외 다수'에 속해서. 땡! 잡았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믿고 싶어 하지 않아도, 사실이니 믿어야 한다고 나는 그녀에게, 

넌지시.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그녀도 (하는 수 없지만) 현실을 받아들인 줄만 알았다.


"야.. 저쪽 교실에서 어떤 아줌마가 담임한테 돈 주는 거 내가 봤다"

"누구 엄만데?!"

바야흐로, 때는 학교 수업 시간이 끝난. 늦은 오후, 자율학습 시간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아이의 입에서 '돈 봉투'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오자 

순간, 조용했던 교실 안은 시끌벅적 난리가 났다.

그때 한참 유행이었던 만화 "은비가 내리는 나라"를 교과서 밑에 숨긴 채, 

책상에 코를 박고 보고 있던 나는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무슨 불구경이라도 난 양, 창문 앞에 몰려든 아이들을 비집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전기에라도 감전된 듯, 온몸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복도 건너편 교실.

그곳에는 유난히 눈두덩이가 두꺼워서 

그 아래 자리한 눈동자가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 노려보고 있는지 

당최! 구분이 안 가는 담임에게, 돈 봉투를 내밀며, 

오물이라도 뒤집어쓴 양, 

마치, 자신이 죄인인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서 있는 그녀가 있었다.


아뿔싸!!

저것이 말로만 듣던 '와이로..' (뒷돈)란 말인가.

(그즈음, 몇몇 친구들의 부모가 담임에게, 와이로를 먹여서, 택도 없는 인문계 입학 원서를 쓴다는 루머가 우리 사이에 돌았다.)

돈 봉투를 내밀며, 공부 못하는 자식을 둔 자신이 마치, 죄인 인양 오도카니 서 있는 그녀에게

눈두덩이가 두꺼웠던, 담임은 (삿대질인듯한 손모양을 하며) 화가 난 듯 무어라 무어라 

끝없는 연설을 퍼붓었다.


난 당장! 튀어올라, 그 눈두덩이를 물어뜯고 싶었지만..

난 당장! 튀어올라, 한없이 고개만 주억거리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곳에서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차마, 용기가 없었다.


그랬다. 그날 이후 나는 루머의 주인공이 돼서, 

내 성적으로는 택도 없는 인문계에 입학 원서를 냈다.

그리고.. 밤 열두 시까지 파리채를 휘날리며, 

내 등짝만 주시하는 그녀의 감시망 안에서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추운 마룻바닥에 상을 펴고 앉아) 

공부를 해야만 하는 '고난의 행군'을 시전 했다.


"D-DAY" 까지는 30여 일.

내가 문제집을 보는 건지.. 문제집이 나를 집어삼키는 건지 모를 

물아일체의 시간들이 가고,

나는 '김해여고'에 가서 입시를 봤다.


그리고,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첫 등교를 하는 날,

그녀는 돌아 앉아 손빨래를 하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내가 입은 교복은 그 이름도 유명한 

(식하고, 지조 없고, '멍멍' DOG같은 여학생들이 다닌다는... '일명 무.지.개 학교' ) 

'00여상'의 교복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해, 딱 4점 차이로 인문계에 낙방을 했다.)


그녀가 눈두덩이 담임 앞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던, 

그 장면만  화상처럼 내 가슴팍에 품은 채.

난 그렇게... 고등학생이 됐다.




한 달에 한 번 만이다.


"앞으로 달고나 안돼"

그녀가 당뇨 진단을 받은 뒤, 

마치,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나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밥, 국, 반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그녀의 입에 넣지 못하게 했다.


"딸아.. 인자 우리 집에 달고나 없다."


"인자 너그 작은 언니가 달고나 안 준다."


"그 많던 내 달고나는 다 오데 갔노?!"


입맛을 떨어뜨린다는 당뇨약을 먹고, 그녀는 입맛을 잃어갔다.

덕분에 살이 쭉쭉 빠져 78KG에 달하는 날이 왔다.

그녀는 그렇게 달고나 없는 삶을 맞으며, 생기를 잃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깊은 슬픔에 잠겨, 심지어, 눈물마저 머금고서는

"딸아!! 달고나 집 사장님은 장사가 안 돼서 우짜노"

라고 하셨다.

'오 마이 가뜨!!'


'엄마 한 사람 안 사 먹는다고 달고나집 안 망해!!'

하고 싶지만, 핼쑥해진 그녀의 귀여운 걱정에, 나는 맘이 약해졌다. 

"한 달에 한 번 만이다" 하며,

다시, 슬그머니 냉장고 안 깊숙이 감춰 놓은 달고나 하나를 꺼내 그녀의 입에 넣어준다.

달고나를 빨 때,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고, 뒤로 한껏 젖히는 그녀가 사랑스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