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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Oct 13. 2024

그녀에게

03. 미스코리아 & 미스 고릴라

"우리 큰 딸은 미스코리압 미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심지어 길 가다 그녀의 휠체어를 나와 함께 밀어주는 친절한 시민들에게도

그녀가 누군가와 얼굴만 마주쳤다고 하면, 하는 말이다.


170cm의 71kg, 51세.

누가 봐도 '미스코리아'보다는 뭐랄까.. '미스 고릴라'에 가까운데...

"엄마 이름이 뭐야?!"

"내 이름... 장... 이.. 수진..." 하며,  

이제는.. 기억에서 그녀 자신의 이름도 조금씩 지워가고 있는 그녀에게 

큰 딸은 진짜 미스코리아일까?! 언제까지 미스코리아일까?!...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국민학교 스타였던 언니.


언니는 우리가 다녔던 국민학교 스타였다.

아니,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손바닥만 한 읍내에서 언니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했다.

아직, 국민학생인데, 웬만한 선생님들 키를 따라잡을 만큼 큰 키에, 

공부도 언제나 전교 일등이었고, 

게다가 전교회장을 할 만큼 리더십도 타고났었다. (여기서 플러스, 동생들을 건드리는 남자아이들을 한 방에 코피 터뜨리는 완력까지 겸비했다.)


그래서, 그녀는 국민학교 소풍날이면 늘, 선생님들 김밥 도시락에, 

없는 형편에도 꼭! 읍내 시장에 나가 통닭까지 튀겨서 언니의 손에 들려 보내야 직성이 풀렸다. 

그때, 맡았던 읍내 시장 통닭 냄새를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그때는 퀵이나 배달 같은 시스템이 없었기에, 

그녀는 꼭 소풍 하루 전 날, 통닭을 튀겨와서 전기밥솥 위에 얹어 놓았다.  

그러면, 통닭 냄새에, 미치고 팔짝 뛰기 일보 직전에, 나는.

'저 통닭 냄새를 밤새 맡다 죽느니, 살점이라도 떼어먹고 엄마한테 맞아 죽는 편이 낫겄다."

하고, 늘 기특한 생각을 해냈다.


생각은 그저, 생각에서 그쳐야 할 법인데,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워낙에, 급한 성격인 데다, 행동력은 공부 외에는 좋은 편이었으므로, 즉각 행동 개시에 나섰다.

그녀가 부엌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통닭이 든 까만 봉지를 슬쩍 들어, 맛있어 보이는 닭의 살점을 쭉 찢어서 입에 한 움큼 넣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휙휙' ,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면, 

영락없이 그녀가 날린, 파리채가 내 얼굴을 직통으로 때렸다.

"문디 가스나!!"

비싼 통닭에 손대지 말고, 얌전히 찌그러져 있으라는.

저 무시무시한 다섯 글자에 나는 꼬랑지를 내리고, 깨갱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살벌한 눈빛을 보는 이라면, 누구나 항복을 했을 터.)


그렇게, 소풍날 아침이 되면, 

그녀의 미스코리아는 가방 가득 통닭과 선생님들 김밥 도시락까지 싸서, 

나보다 늘 다섯 발 앞서 당당하게 긴팔과 긴 다리를 휘휘 저으며, 학교로 향했다.

나는 '학교 그까이꺼 내일 도착하면 우때'... 

하는 마음으로. 미스코리아와 거리를 벌리지도 좁히지도 않은 채 따라가며, 

겁나게 미스코리아 뒤통수를 노려봤다.


"야 퍼뜩 안 오나"

나는 미스 고릴라가 된 전직 미스코리아의 부름에 빨리 가는 척을 했다.

"8 곱하기 9는 얼매고?"

그랬다. 그녀의 자랑, 그녀의 자부심, 그녀의 사는 이유.. 

자아가 생기고 철이란 게 들면서. 

야쿠르트 아이스크림을 나에게만 먹이던 착했던 미스 코리아는 

그렇게 싸가지 없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그녀는 미스코리아에게 열광적인 응원과 지지를 보냈고, 

나는 그녀들에게서 점점 멀어져 갈 수밖에 없었다.


미스 고릴라가 되다.


"우리 큰딸은 서울로 직장 댕기고, 둘째는 아파가.. 아이고 내 돌본다고 집에서 주방장 하고.. 막내는 공부를 마이 못시키가 내가 미안하지예"


누가 물어보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데, 

그녀는 세 딸을 만인에게 꼭! 소개를 하신다.

그녀에게 아직, 큰 딸은 누가 뭐래도 '자랑'이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직장을 다니며,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리키는 똑똑하고 키 크고 멋있고, 돈 잘 버는 딸.

"그래서 내는 행복한 할머니라요"


"엄마.. 막내랑 나 소개할 때는 저 멘트 말고 뭐 좀 신박하고 멋있는 거 없어?!"

하고 묻고 싶지만, 물음을 나는 꼴깍 삼킨다.

365일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나고,

찢어지게 가난해서 쌀을 외상으로 사다 먹어도

그녀가 늘 위풍당당하게 어깨를 쫙 펴고, 고개를 들고.

촌동네 골목길을 런어웨이 삼아 모델 워킹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삶의 오롯한 '동아줄'인 큰 딸이 있었단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리고, 새삼 쉰 한살이나 먹은 이제는 미스 고릴라가 된 전직 미스코리아에게도 억수로 고맙다.


p.s 미스 고릴라의 등짝이라도 올리고 싶지만, 본인의 극심한 거부권 행사(초상권 침해다)로다가

이 지면에 소개를 못함이 몹시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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