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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Oct 16. 2024

그녀에게

05. 기저귀 해도 괜찮아.

세상 태어나 첨 보는, 체크무늬 가다마이(양복 재킷)를 입은 아부지가

교실 뒤, 다른 친구들 엄마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날은 아마.. 지금으로 치면, 학부모가 참여하는 "공개 수업"을 하는 날이었던 것 같다.

(당시, 국민학교 4학년)


우리 교실에, 그것도 엄마들 사이에.. 시커먼 우리 아부지가 출연한 것을 발견하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짐짓. 놀란 척도, 아는 척도 하지 않은 채,

(명탐정)셜록처럼, 나는 그의 뒤통수를 따라 조용히 눈동자만 굴렸다.


아부지는 점잔을 빼며 (평소 같지 않게) 다른 엄마들처럼, 게시판에 붙은 그림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담임 선생님이 나타나, 아부지를 끌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냉큼, 아니 슬며시 상체만 들어, 아부지의 뒤통수가 옮겨 다니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와 조래 깔롱을 부리고 왔노.. "


아부지와 담임 선생님은 무슨 작당모의라도 하듯,

머리를 맞대고, 내가 쓴 글짓기 원고를 들여다보며, 속닥속닥 이야기 중이다.

나는 당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들리지 않아 답답했고, 궁금해서,

의자를 박차고 당장이라도 복도로 뛰어나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사실 용기가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저만치, 앞서 가던 아부지가 나를 휙 돌아봤다.

손가락 사이로 풀잎들을 눕히며, 아부지 뒤를 휘적휘적 쫓아가던 나는 움찔 멈춰 섰다.


'음메~'

마침, 아부지 뒤에 풀을 뜯고 있던 소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딱 들어왔다.

'잘한다.. 고래 뒷걸음질 치가 우리 아부지 엉덩이라도 팍 차뿌라'

"그 참.... 흠흠"

나를 한참을 건너다보던 아부지는 할 말은 많지만 도저히,

내뱉지 못하겠다는 양 혀만 끌끌 차더니, 다시 앞서 갔다.


마루 끝에 걸터앉아, 훌훌 양말을 벗고 있는 아부지를 등뒤에 놓고,

나는 수돗가에 앉아 손을 비누로 빡빡 씻고 있었다.

이때, 부엌에서 나오는 그녀를 향해 아부지는 '버럭' 소리쳤다.

"그 아한테 쫌 잘해주라"

영문을 모르는 그녀는 아부지와 나를 번갈아 봤으리라.

"수지이(수진)가 지만 주워 와가 기른 딸이라고, 원고지에 열 장도 넘게 써놨더만."

순간, 내 등 뒤로 내려 꽂히는 그녀의 매서운 눈빛을 느끼며,

냉큼, 얼굴이라도 씻어야 할까.. 아님 발이라도 씻을까 잠시 망설였다.


"글을 을매나 잘 썼는지.. 그 온 엄마들 다 같이 봤다."

그랬다. 담임은 아부지 뿐만 아니라, 친구들 엄마를 다 불러 모아 내 글을 낭송했다.

"똑바로 해라 마"

아부지는 그녀에게 '결정타'를 날리며, 가다마이를 오른 팔목에 걸친 채,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버렸다.


(도저히 그녀의 표정이 궁금해 못 참는) 나는, 서서히 일어나 몸을 돌려 그녀를 올려다봤다.

처음 보는 그녀의 슬프게 일그러진 표정.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냅다 소리쳤다.

"그라게.. 내 도시락에도 분홍 소시지 좀 넣어주지.. 와 내만 머스마 맹크로 상고머리고.. 와 내만 머스마 운동화(사촌에게 물려받은) 신고 학교 가야 하노.. 와 내만 맨날 날 식은 밥 주노.. 와 내만 미워하노 말이다."


그렇게, 유리창 하나 사이로 마주 하고 선, 그녀와 나는

팽팽하게 서로를 노려보며, 수만 가지의 물음과 대답을 쏟아냈다.






엄마가 니 애 안 먹이제?!


올해 여름은, 가히 기록적인 폭염을 갱신하는 나날들이었다.

땀인지 빗물인지 구분이 안 되는 물을 쏟아내는 날들이 대다수였으니깐.


그녀가 침대에 올라가는 시각. 저녁 9시가 되면

일단, 양다리에 팬티 기저귀를 끼고,

그 안에, 일본 선수들 마냥 크고 두꺼운 속 기저귀를 입는다.

그게 끝이 아니다. 

그녀의 에어매트 ( 욕창 방지용) 위로, 깔개 두 개를 겹쳐 깔아야만

그녀의 취침 준비가 완벽하게 끝이 난다.

그렇게, 그녀는 수많은 기저귀들과 함께하는 무더운 올여름을 오롯이, 혼자 견뎌냈다.


생리를 하는 날이면, 두꺼운 오버나이트를 착용한 채 자야 하는 모든 여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날이 되면, 얼마나 귀찮고, 짜증 나고, 답답한지를.


그러니, 그녀는 오죽했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 길고 무더웠던 올여름 내내 말이다.

"엄마.. 기저귀 많이 입게 해서 미안해"

그녀의 보드라운 살갗 위로 기저귀 발진이 심해지는 날.

나는 진심으로 미안해졌다.

"개안타.. 할매가 오줌을 맨날 싸는데..이래 자야지.. 우리 딸은 천재다"


그녀가 첫 소변 실수하는 날.

샤워를 끝낸 그녀의 팬티를 입히려던 순간이었다.

다리 사이로 뜨거운 소변이 흐르자, 그녀는 놀라다 못해,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보낸 듯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할매가 노망이 났나 봐.. 우야꼬.. 미안하다.. 딸아"

순간, 허둥대며, 소변을 치우느라.. 나는 그 쉬운 ' 괜찮다'는 대답도 해 주지 못했다.

그 말 한마디 생각해내지 못한 나를..그녀는 '천재'라 부른다.


"기저귀 마이 입히도 개안타.. 엄마가 니 애 안 먹이제?! (힘들게 안 하지?!)"

여름 끝에, 그녀는 내게 되물었다.

그녀 때문에 내가 힘들지 않으냐고.. 말이다.


그랬다.

내가 주워 온 딸이라고, 그녀는 내게 너무 나쁜 엄마라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글로 써서, 온 동네방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했던, 그 시절.. 내가!!

그녀의 심장을 얼마나 후벼 팠는지... 그녀를 얼마나 무너지게 했는지.. 그녀가 얼마나 무섭고 슬픈 표정을 지었는지.

그녀는 또 기억에서 지우개로 빡빡 지워버렸다. 고맙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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