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의 밤, 사이프러스 나무.

by 레푸스

병자의 밤, 사이프러스 나무. (신선비)


사람에게도 계절이 있다면, 언제가 제철일까. 탄력 있는 몸과 건강을 흔히 황금기라 부르지만, 진정한 제철은 몸의 절정이 아니라 마음이 완연한 가을빛으로 물들 때 찾아온다. 들녘의 노랑과 구리빛이 스며드는 시절, 그것이 나이듦의 황금률이다.


건강하던 시절은 어느새 겸손과 추억으로 남는다. 자기 알몸 앞에서 눈물 짓는 사람, 그가 어쩌면 성인일지 모른다. 노년이 아니라 병든 몸으로 그 알몸을 바라보며, 뼈와 살점이 남은 휑한 육신으로 고백하는 사람, 그 역시 자기 철이 든 사람이다.


어떤 밤은 미래를 향하고, 어떤 밤은 불안과 초조, 그리고 의연함으로 가득하다.

후자가 바로 병자의 밤이며, 침상의 시간이다. 나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사지마비 희소병 환자로서 이 글을 쓴다. 거대한 땅의 신비와 한 영혼이 맞닿는 바람, 그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 속에서 나는 나의 철을 맞이한다.


담대함도 희망도, 인류의 오래된 역사 속에서 병을 지닌 자들이 남긴 위대한 발자국이었다.

그들은 모두 성인들의 계보였다. 병든 몸으로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품은 이들, 오해받고 거절된 삶을 견디며 성화된 존재들. 그들의 모습은 저주나 포비아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간이 제철을 맞이하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이제 나는 서른 중반이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팠으니 내 인생은 때로 어색한 일처럼 느껴진다. “꿈이 뭐냐”고 물으면,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신약 치료제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 한마디에 나의 유년, 청춘, 그리고 지금의 계절이 모두 들어 있다.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밤처럼 내게 와

달과 함께 생명을 주는 희망으로, 조용히 용기를 건네는 것 같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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