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Read to 20, Feeling of you
장장 일주일 내내 흐리고 비가 왔는데, 정작 눈에 보여야 할 빗방울이 보이질 않았다. 빗속을 걸으면, 마치 안갯속을 걷는 듯 물방울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얼굴에 닿는 촉감만은 차갑고도 선명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안개비는 마음의 경계를 풀었다.
비가 내리는 첫날엔 우산도 챙기지 않고 집 앞 편의점을 가기 위해 외출했다. 가까운 거리인지라 거리낌 없이 우산도 챙기지 않고 빗속에 성큼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보았다. 몇 걸음 못 걸었는데도 어느새 흠뻑 젖어 버린 것이다.
대기에 가볍도록 둥실 떠있는 안개 같은 빗물은 모든 것을 촉촉이 에워쌌다. 부드러움과 촉촉함으로 생명의 부화를 재촉하는 각성의 계절. 이제는 겨울잠을 자던 생명이 알을 깨고 나올 준비를 마쳐야 하는 때, 본격 한 해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나의 긴장감은 점점 높아졌다. 봄이 다가오는 설렘보다는 3월, 한 해의 시작을 앞두고 온갖 걱정이 나를 찾아들었다. 먹구름 잔뜩 낀 하늘을 바라보며 내 마음도 어느새 근심걱정이라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이제 업무는 더욱 바빠지고, 대학원 수업도 일주일에 세 번은 들어야 한다. 논문 준비도 해야 하고 학교에 다닐 아이들도 살펴야 한다. 그러면서 가족과 내 건강도 챙기고 계획한 미래에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나의 걱정이 아이들에게 옮겨간 것일까, 두 아이도 모두 새 학기를 맞이하여 마음이 산란한 듯했다. 새로운 반의 선생님과 친구들은 어떠할지 궁금해했고, 자신이 잘해나갈 수 있을지 불안해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다가도 개학 이야기만 나오면 두 아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되는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개학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져서 인지, 아이들의 불안은 더해갔고 덩달아 나까지 날카로워졌다. 심지어 비가 내린 지 나흘 째 되던 날엔 큰아이가 갑자기 그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엄마! 새 학년 올라가서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을까요?"
아이의 눈물을 보니 덜컥 위기감이 몰려왔다. 엄마의 감정은 어쩜 그리 잘 전달되는지, 아이들의 불안감은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막상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이제껏 걱정했던 것은 가짜였을 뿐이었다. 아직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눈물은 진짜였다. 아이의 마음이 이리 흔들리는 상황은 내가 마주한 진짜 현실이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고, 꼭 안아주며 '걱정할 것 하나 없다고, 잘 해낼 것이라고' 다독였다.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틀었다.
떠나고 나서 보면 별게 없었어
큰 일 같던 것도 별일이 아닌 먼지처럼
괜히 바둥거렸어.
노래 가사는 경쾌한 리듬과 함께 나와 아이의 불안을 달래주었다.
"그래, 막상 시작해 보면, 별거 없는 거야. 지금은 큰 일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이와 나는 조용필의 Feeling of You를 들으며 함께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노래의 메시지가 우리의 마음속에 선명하게 파고들며 기분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후렴구가 시작되자 우리는 합창을 하기 시작했다.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발도 박자에 맞추어 움직였다. 어느 순간부터, 걱정과 근심은 잦아들고 흥겨움만 남았은 듯했다.
이제 뜨겁게 불을 피워 이제 느껴봐
너의 꿈을, for you, The feeling of you
모두 비워봐 머릿속을 이제 들어봐
너의 마음, for you, The feeling of you
노래 한 곡을 다 듣고 또다시 서너 번을 반복해서 들었다. 함께 노래를 듣던 아이는 이제 괜찮아졌다며 방에 들어가더니 한참 후에 방에서 나와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 제가 핸드폰으로 MBTI 검사를 해봤는데요, 제 성격이 내향형이라는 'I'래요. 그렇지만 'E'로 조금씩 성향을 바꿔가고 싶어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서 제가 걱정하는 부분을 바꾸어볼래요."
MBTI 결과 하나로 스스로를 평가하기엔 섣부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계획을 짜는 모습이 매우 기특했다. 나는 아이의 결심을 응원해 주었다.
결론을 내린 아이는 조금씩 밝게 기운을 차렸다. 'Feeling of You'를 흥얼거리며 평소처럼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숙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아이를 보고 나는 안도하면서도 한편 나 자신도 돌아본다. 나는 어떤 면이 부족할지, 무엇에 더 노력하며 좋을지, 하고 말이다.
나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본다. 불안감이 높아 항상 어떤 일에 앞서 미리 크게 걱정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꿈이 좌절되었던 많은 순간들도 스쳐간다. 크고 작은 바람들이 스러지기도 하고 꺾이기도 하며 내 것이 되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다. 그때마다 나는 얼마나 크게 좌절했나.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생각하며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의심하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노래 가사처럼, '지나고 나서 보면 별게 없었'다. '큰일 같던 것도 별일이 아닌 먼지처럼 괜히 바둥거렸'었다. 내가 걱정한 것보다는 잘 풀렸던 일들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그렇다. 내가 노력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미리 많은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빗물에 흠뻑 젖어버리는 것처럼, 조금씩 생겨난 염려와 근심과 걱정은 어느 순간 내 마음을 뒤덮어 태양을 가린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봄이다. 새로운 한 해의 일상이 제대로 시작되는 3월. 앞으로의 모든 나의 날들이 숨을 쉴 수 있게 내 마음에 먹구름처럼 가득한 근심과 걱정을 털어내련다. 마음을 가볍게 먹고, 대신 내 눈앞에 '꿈'과 '사랑'만 놓아두자.
나는, 아이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 한번 'Feeling of You'를 크게 틀어두고 베란다로 나갔다. 짐이 잔뜩 쌓여있는 베란다를 청소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봄이니까. 베란다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비워낸 뒤 작은 화분 하나를 들이고 싶어졌다.
베란다를 청소하며 내 마음도 비워낼 것이다. 그리고 예쁜 화분 하나를 들이면, 화분과 함께 조용필의 'Feeling of You'를 들으며 3월의 봄 햇살을 나눌 것이다. 핑크빛 화분 안에 담긴 소담한 연녹색 풀을 상상하며, 나는 손을 더욱 분주히 움직였다. 이 노래를 내 마음에서 잊지 않는 한, 나는 조금 더 밝은 모습으로 올 한 해를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조용필 20집(Road to 20 Prelude), <Feeling of You>
노래 조용필, 작곡 Didrik Thott, Niclas Kings, 조용필, 작사 김이나
떠나고 나서보면 별게 없었어
큰일 같던 것도 별일이 아닌 먼지처럼
괜히 바둥거렸어
돼야만 한다고 믿었던 일들도
멈추고 나서 보면 착각이었어
나는 어디에,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이제 뜨겁게 불을 피워
이제 느껴봐 너의 꿈을, for you
The feeling of you
모두 비워봐 머릿속을
이제 들어봐 너의 마음, for you
The feeling of you
이름도 붙지 않은 거릴 걷다가
발길이 닿지 않는 어느 외딴 먼 곳에서
하루쯤은 따분하고 싶어
늘 불안해서 채우고만 싶던
모든 날들이 숨을 쉴 수 있게
걱정 없이 밤을 새도 좋겠지
이제 뜨겁게 불을 피워
이제 느껴봐 너의 꿈을, for you
The feeling of you
모두 비워봐 머릿속을
이제 들어봐 너의 마음, for you
The feeling of you
네 기분은 어때?
그 무엇보다 제일 중요해
너의 마음이
더 고민하지 말고
오늘을 위해 살아가야지
지금을 위해
우린 이렇게 함께 있지
미랜 끝없이 펼쳐 있어, for you
The feeling of you
어둠 이겨낸 새벽으로
비를 밀어낸 하늘 위로, for you
The feeling of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