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 도시 뉘른베르크 ①
낯선 곳에 발을 들여놓을 때 습관이 있다.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그래왔고, 평생 그럴 것이다. 여행을 앞두고 목적지의 볼거리, 맛집에 대해 꼼꼼히 알아본다는 게 아니다. 이 도시는 이 나라의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주변 지형은 어떤지, 내가 서 있을 그곳에서 동서남북 방향으로는 무엇이 있을지. 그러니까 집착에 가깝게 파악하려는 것은 위치와 방향이다. 수십 년 전부터 세계지도에 마음을 빼앗겨 오긴 했어도 이 정도의 지리 광인이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미친 자는 할 말이 있다고, 여행지에서 나의 위치와 주변이 파악되면 유리한 게 참 많다. 일단 덜 헤맨다. 고색창연한 동고서저의 마을이라 했으니 언덕 초입의 맛집은 오른쪽 횡단보도를 건너면 되겠지. 이동이 편하다. 케이블카 타는 곳이 동남쪽이면 트램 정류장은 바로 여기일 거야. 도시의 역사가 빨리 흡수된다. 도시의 서쪽이 폴란드와의 국경 부근이면 나치의 군대는 저쪽 강을 건너 진격했겠구나.
성곽으로 둘러싸인 옛 제국도시에서는 별다른 동서남북의 감각이 어김없이 발휘될 것이다. 플젠에서 40여 분을 달리면 이정표의 언어가 달라진다. 체코어보다는 그나마 익숙한 독일어. 건물의 색조가 옅어지고 과속 단속 지점이 급격히 많아진다. 엄격과 질서가 지배하는 땅이다. 친절한 내비게이션 음성의 명령을 하달받아 다시 한 시간 반을 내달린다. 바이에른 제2의 도시, 뉘른베르크(Nürnberg)다.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지만 준엄한 나치 전범 재판이 열렸던 곳. 꿈같은 동화와 추상같은 판결이 공존하는 도시, 뉘른베르크는 아수라 백작이다. 고급 호텔을 제외한 대부분의 숙박은 성곽 경계 바깥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 벽을 기준으로 생활인과 탐방객은 나뉜다. 현실의 삶을 바깥에서 해결해야 성곽 안에 넘실대는 과거의 환상으로 빠질 자격이 있다. 안과 밖이 노골적으로 구획된 도시, 그래서 다시 한번 아수라 백작일 수밖에 없는 뉘른베르크다.
안달이 난다. 중앙역을 따라 이어진 주 도로에서 바라본 성곽 안의 윤곽부터 사람을 설레게 했기 때문이다.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뉘른베르크 성을 향해 바삐 걸어간다. 왼쪽 발바닥이 채 땅을 디디지도 않았는데 오른쪽 다리가 지면을 박차고 다음 걸음을 준비 중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말하자면 서울의 사대문 안쪽으로 진입하는 셈인데, 해자 위에 놓인 다리를 따라 아치형 천장의 진입구로 앞선 관광객들을 따라가면 될 일이다.
진입구 터널의 끝. 갑자기 중세의 도시가 눈앞에서 부활한다. 도시 전체가 중세와 근대의 건물로 뒤덮인 도시도 매력적이지만 둘레의 경계 안에서 느닷없이 등장하는 과거의 유산들은 암흑 속에서 펑~하고 등장하는 영화의 첫 장면과도 같다. 나는 아수라 백작의 반대쪽 얼굴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꿈에 그리던 뉘른베르크다.
유럽 한복판에서 번성했던 과거가 찬란하다. 1219년 자치시 인가를 받아 16~17세기에 잘 나가는 제국도시로서 명성을 떨쳤던 뉘른베르크. 흠잡을 곳이 없었던 행정과 사법체계로 주변 도시들의 부러움을 샀던 곳이자, 제조업과 상업의 발달로 문화예술 수준도 드높았던 모범 도시. 뒤에서 다루게 될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와 캐논의 작곡가 파헬벨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혼자서 잘해도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버둥거릴 수밖에 없는 법. 대륙의 교역이 신대륙 항로의 개발로 무참히 쇠퇴해 버린 탓에 뉘른베르크는 자체 제국도시의 지위를 잃고 바이에른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독일 최초의 철도가 깔리면서 근대 공업도시로서 덩치를 키우려던 것도 잠시, 뉘른베르크는 나치당의 중심 도시가 되어 세계인들의 눈총을 받게 되었고, 결국 2차 대전 중 연합군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뼈저린 아픔 또한 잉태하고 있다.
왜 이 도시를 그렇게 그리워했던가. 역사적으로 완벽하게 대비되는 양가적 감정을 체득하고 싶어서였을까, 시각적으로 끌어당기는 모든 것들에 앞서 반해버린 탓일까. 팔자 좋은 고민이 이곳에 오게 된 까닭이었으니 샅샅이, 힘들게 이 안쪽을 탐색해봐야 한다. 숲을 보고 나무를 만나야겠다. 그러려면 뉘른베르크 성부터 오르는 게 이치에 맞을 것이다. 성에 올라 뉘른베르크의 스카이라인을 조망해야겠다. 디테일은 그다음, 내리막길을 따라 성내를 남북으로 양분하며 흐르고 있는 페그니츠 강변으로 내려가면 되겠지.
붉은 파도의 엄습이다. 프라하의 붉음과 같거나, 한 톤은 더 진한 듯한 적색의 넘실거림. 성곽 너머 멀리 신시가지의 건물군까지 막힘없이 시야에 들어온다. 비둘기 깃털과도 같은 어두운 구름은 풍경을 서늘하게 내리누르고 있다. 감탄하는 것은 당연한데 설명할 수 없는 서글픔이 등에 붙은 청테이프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이 감정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지. 지배하고 지배당했고, 우러름을 받은 뒤 저주를 받은 도시의 영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진벨탑을 내려와 내리막을 따라 빙글 돌면 14세기부터 존재했었다는 우물, 티퍼 브루넨(Tiefer Brunnen)
을 볼 수 있다. 안내인은 50 미터 아래 우물 바닥까지 촛불을 내려 실제 깊이를 체감하게 한 후 우물 위로 끌어올린다. 상하의 이동 중, 일렁이는 불빛은 미동을 포착하기조차 어렵다. 고요한 우물의 내부에서 공기는 널뛰며 흐르지 않는다.
조망에 탁월한 요새, 뉘른베르크 성의 건물군에선 결연한 방어의 의지보다 고적(古蹟)의 아취가 되직하다. 전후 복구라는 덧댐의 흠집에도 불구하고, 11세기 중반 하인리히 3세가 이 거성을 건설할 당시의 웅혼한 기세는 오늘날에도 변질되지 않았다. 성의 내부 전시물들을 다 둘러보고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구수한 냄새가 온몸을 휘감는다. 위장이 두 다리에 가스라이팅을 한다. 어서 가서 뉘른베르크의 명물을 맛봐야 하지 않겠냐며. 때로는 즉각 본능의 부하가 되는 것이 현명한 여행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