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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와 교회의 브로맨스

성곽도시 뉘른베르크 ②

by Total Eclipse






외국의 대도시나 미식으로 유명한 도시에서는 메뉴 고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혼자 가는 여행에서도 야끼니꾸를 먹을지, 수프카레가 나을지, 전통의 오꼬노미야끼가 답인지 갈등은 멈추질 않는데, 일행을 동반한 여행에서는 신경전을 벌일 때도 있다. 넌 똠얌꿍, 난 스테이크, 저 녀석은 길거리 팟타이. 보통 이럴 때 종착지는 한식집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뉘른베르크에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적어도 성벽 안에서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시간은 절약되고 스트레스는 고개를 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경쟁 상대라도 있어야 선택이란 걸 해 볼 텐데, 독점이다. 앞서 나간다기보다는 홀로 존재하는 느낌이다.

브라트부어스트 호이슬레(Bratwursthäusle). 군침이 도는 이름이여!

20240819_192128.jpg 성 제발트 교회 옆 브라트부어스트 호이슬레


'구운 소시지 집'의 직역인 '브라트부어스트 호이슬레'는 위치마저 매혹적이다. 성 제발트 교회(St. Sebalduskirche) 옆구리와 닿을 듯한 위치에 단을 높여 호젓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뉘른베르크 대표 소시지 집은 1312년부터 이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는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성 제발트 교회가 1225년에 공사를 시작해 1300년대 이후 양식을 바꾸며 개조를 거듭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중세 교회와 소시지 집은 역사를 공유한 형제와도 같다는 얘기다. 1312년이면 고려 충선왕 4년. 지구 반대편 고려라는 국가에서 무신정권이 세를 잃고 권문세족이 발흥하던 혼란의 날에, 뉘른베르크의 맛집에서는 먹음직한 소시지가 온몸을 굴려가며 미식가들의 식탁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고려시대 맛집에서 먹방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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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_193245.jpg 뉘른베르크 브라트부어스트를 즐기는 사람들


정육점에서 자체 생산해 즉석에서 소를 넣어 만들었다는 뉘른베르크의 명물. 손가락 길이 아담한 사이즈의 소시지 풍미도 소문대로지만, 샛노란 감자 샐러드의 감칠맛은 감히 따라올 곳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 감자가 감칠맛이 난다. 양배추 절임인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는 소시지의 단짝이다. 이왕이면 궁합을 맞춰 먹어줘야 한다. 물론 독일 생맥주 한 잔쯤은 기본이다. 식사 시간이 되기 전 여유 있게 들어온 덕분에 빈자리가 하나둘 채워져 결국 만석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양념 같은 즐거움이 된다. 평생의 자랑거리가 하나 늘었다.

"나 이래 봬도 700년 된 맛집에서 소시지 먹어본 사람이야."

'뉘른베르크 소시지'는 유럽연합의 지리적 표시 등록으로 뉘른베르크 이외의 지역에서는 명칭을 쓸 수 없고, 뉘른베르크 내에서도 엄격한 기준을 충족한 곳만이 그 이름을 달고 메뉴로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중세부터 검증되고 유럽이 인증한 뉘른베르크 소시지, 그거 참 일품이다.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성 제발트 교회 안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불경할 데가. 파헬벨이 연주했다는 파이프 오르간은 전쟁의 폭격으로 파괴되었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었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교회는 겉보기보다 내부가 협소하다. 경건함은 훼손되지 않고 오히려 날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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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발트 교회


교회를 나와 성에서부터 이어진 완만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성곽 도시 북쪽의 돋은 지형은 남으로 가면서 평탄해지는데, 경사를 따라서 가기만 하면 페그니츠 강 방면인 것이다. 뉘른베르크의 핵심인 성곽 안은 도보여행에 안성맞춤이다. 명소 간의 거리가 우선 지척이고, 걷다가 고개를 돌리면 중세의 증인들이 여행자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현장, 마르크트 광장이 널찍하게 펼쳐지고, 광장을 수호하는 프라우엔 교회( Frauenkirche, 성모 교회)가 하늘로 비상하듯 솟아있다. 교회 건물의 어깨선을 따라 작은 십자가 첨탑들이 장식돼 있어, 승천의 드라마가 현실에서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광장에 모인 제국도시 뉘른베르크 시민들의 자부심이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에 이어진다.

20240820_161220.jpg 프라우엔 교회가 서 있는 마르크트 광장


철학자이자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여행 전문가다. 나는 그의 열혈 팬이다. 문장은 삐걱대는 일 없이 연결되고 개별로 보이던 문단은 어느새 맞물려 들어간다. 일상을 철학으로 번역한 글이 어쩌면 그렇게도 쉽고 재미있을까. 까마득한 깊이의 지식과 탄산수 같은 재치를 감출 수 없는 그의 글에선 둥그스름한 인간성마저 묻어난다. 지난 시대의 학자도 아닌 것이, 나보다 불과 두 살 위 형님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물이 모든 걸 다 가져간 느낌. 감탄만 하다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존경심과 열등감을 잘 버무려 정신의 영양제로 삼는 방법밖에는 없겠지. 이런 그의 글이 있다.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중에서


우리나라에도 광장은 있다. 역사에 남을 의미로만 따진다면 광화문 광장 같은 또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유럽의 광장에서 우리는 꽤나 짙은 농도의 이국적 감성을 들이마신다.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처럼 명소로 굳어진 곳일 필요도 없다. 소도시의 질박한 광장이어도 좋다. 그러니까 굳이 '넓을 광(廣)'이 붙지 않아도 되는, 소소한 규모의 터라도 괜찮은 것이다. 세계사적 사건의 무대가 아니면 어떤가. 저녁 무렵 맥주 한 잔으로 삶을 들이켜고, 정치를 안주 삼던 곳이면 되는 거다. 수 백 년, 길게는 수 천년 전부터 선조들이 어울렁더울렁 얼굴을 맞대왔던 공간이 우리는 신기했던 거고, 야외에 또 하나의 집 역할을 했던 안식과 오락의 공간이 부러웠던 거다. 마르크트 광장을 수놓은 많은 이방인들은 그보다 훨씬 적은 뉘른베르크 현지인들의 삼삼오오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각자의 고향에 유서 깊은 광장이 있었다면 결코 눈독 들이지 않았을 공간, 유럽의 광장은 우리가 갈망했으나 얻지 못했던 공공의 보금자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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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던 길을 따라 그대로 걸어가면 페그니츠 강이 흐른다. 성곽도시의 남과 북은 이 강을 기준으로 나뉜다. 얼음처럼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페그니츠 강의 진녹색은 황톳빛 다리와 맞닿아 중세의 무게감을 더한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 중에 꼭 건너야 할 하나가 있다. 사법 선진도시 뉘른베르크의 증거이기도 한 그곳을 찾아 방향을 바꾼다. 물론 동서남북의 방위는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난 인간 나침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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