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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 이유 없는 아침 햇살

그림책 '하나의 작은 친절'(마르타 피스터)

by 초연이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주는 건 아깝고, 받는 건 좋고. 받았으니 보답해야 하는데, 또 왠지 손해 보는 것 같고. 그 '손해'라는 게 어느 정도까지를 손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보답을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이 어려운 보답보다 더 어려운 것이, 나는 받은 것이 없지만 먼저 무언가를 주고 베푸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주고 베풀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 '나는 받은 것이 없는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유 없이', '단지, 그냥'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인 것 같아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이렇게 마음을 '계산'하는 일이 간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계산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이것밖에 되지 않았나, 싶어 괜한 자책과 반성과 가끔씩은 자괴감이 들기도 해요.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마음이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정말, 진심으로', '단지, 그냥' 누군가에게 베푸는 행위를 보면, 저 사람의 마음의 그릇이 얼마나 클까 싶어 부럽기도 해요.


그래서 주지도 받지도 않는 고립된 삶이 어찌 보면 편하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내가 자처한 고립이니, 그렇게 외롭지도 않습니다. 마음의 계산으로부터 해방된 느낌에, 몸도 마음도 편하기도 해요. 그렇게 자처한 고립을 유지하며 살다가도 가끔씩은 주춤하게 되기도 하는, 알 수 없는 제 마음을 살랑살랑 건드려놓은 그림책 하나를 만났습니다.





마르타 바르톨의 '하나의 작은 친절'입니다. 책 제목부터 '친절'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어,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직관적으로 보입니다. 표지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는데, 모두 뭔가 작고 큰 '설레는 일'들이 하나쯤은 있을 것처럼 보이면서,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는 글씨가 없고, 그림으로만 가득 차 있어요. 만화 같기도 하고, 글씨가 없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 어른이 보기엔 글씨가 없어서 이 그림을 좀 더 정밀하게 해석해야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또 다른 부담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만큼 '그림'책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 더 개운한 책이었어요.



책 제목에서도 예상할 수 있었듯이,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친절'을 베푸는 상황들이 그려집니다. 그런데, 이 친절들이 모두 계산되지 않은, '이유 없는 친절'이에요. 대부분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선뜻 마음을 내고 있어요. 초면인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은 다시 나에게 보답이 돌아올 거란 기대를 하기는 어려운, 정말 인간 본연의 선함을 다할 수 있는 친절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책의 여러 장면들을 보면서, 나라면 이런 행동들을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런 행동들을 꼭 해야만 난 좋은 사람이고, 마음의 그릇이 어느 정도는 '크다'라고 인정받을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나는 꼭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마음의 그릇이 커야만 하나, 에 대한 당위성을 의심해보기도 했어요. 책 속에서 친절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동안, 저는 그저 또 자처한 고립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이유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내려고 했어요.



누군가에겐 간절하고 애달픈 일이 누군가에겐 그저 지나가는 소음과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소음의 이유를 잠시 눈여겨볼 줄 아는 사소한 눈길이 참으로 클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준 마지막 부분입니다. 요즘은 그 사소한 눈길이 쉽게 '오지랖'으로 치부되기도 하더라고요. 실제로 정말 '오지랖'이었다 싶을 때도 있었고, 다른 사람의 행동이 '오지랖'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 눈길을 주기 전에 주춤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나의 이유 없는 선의가 '오지랖'으로 전락할까 봐 두려웠거든요. 그렇게 몸을 사렸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에서는 자칫 오지랖이 될 수도 있었던 행위가 정말로 가치 있고 뜻깊은 행복을 서로 느끼게 해 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문득 살면서 이런 뜻하지 않게 받는 일은 종종 있었던 것 같은데, 먼저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일을 이유 없이 한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는 반성까지도 해보면서, 진한 여운을 남기던 이 책을 고이 덮었습니다.






아침 출근길, 신호 받는 차 안에서 가만히 저를 응시하던 햇살에 눈이 갔습니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어떻게든 비집고 나와 저에게로 그 빛을 전달해 주려는 햇빛의 손길이 싱그러웠습니다. 이유 없이, 그저, '오늘도 힘내고, 수고해. 다 괜찮을 거야.'라고 애써 손을 뻗어내는 것 같았어요. 매일 가는 길에서 보던 나무들과 햇살이었는데, 유독 그날따라 저에게 햇빛이 베푸는 이유 없는 '친절' 같아 참 고마웠습니다.


친절. 참 고맙고, 감사하고, 즐겁고, 뿌듯하고, 어쨌든 '좋은'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제 스스로에게 되물었듯, 꼭 친절해야만, 친절을 베풀어야만 좋은 것은 아닐 겁니다. 아무리 이유 없는 친절인들, 나를 희생해 가면서까지는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정말로 내가 어느 순간, 불현듯, 손을 뻗고 싶을 때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의무사항이 아닌 선택사항으로, 옆에 둔 커피에 손을 뻗어 한 모금씩 하는 것처럼, 그렇게요. 대단한 게 아니라 그냥 툭, 어느 날 넌지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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