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도 할 수 있는 놀이

우리는 흙놀이라 부른다

by choy
어린 유칼립투스의 분갈이 하기전 모습 (작년 여름)


새 식물을 들여 새로운 화분에 분갈이를 하면서 앞으로 이 식물이 커갈 모습을 상상하면 설렌다. 고맙게도 분갈이를 해주자마자 새로운 집으로 옮겨주어 고맙다고 인사하듯이 금방 새 잎을 내어주면, 또 나는 그 새순 하나에 마치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웃으며 즐거워한다.


가드닝 혹은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끼리 농담 삼아 분갈이를 하거나 새로운 식물을 사들이면 오늘 ‘흙놀이’했다고 한다. 이런 흙놀이를 시작하면 시간은 무의미해진다. 해가 뜰 때 나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이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이 들지도, 하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눈 앞의 흙을 다지고, 내 앞의 식물만 생각하면 된다.


터질 것 같은 머릿속과 답답한 마음을 생각할 틈도 없이 저 좁아 보이는 화분들의 식물들을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하고, 그 중간중간 쉬면서 잡초를 뽑는다. 잡초를 뽑다 보면 식물들 아래 보이는 시든 잎을 정리해 주거나 벌레 먹은 잎을 따주어야 하고, 그 와중에 또 다른 다친 곳은 없는지, 또 다른 곳에 상처가 생긴 곳은 없는지 확인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지치기를 하고, 수도 시설이 없는 옥상에 물을 주기 위해 양손 가득 물조리개를 들고 계단을 수차례 왔다 갔다 하다 보면 해는 지고 이제 조용한 어둠만 있다.


나는 이것이 흙놀이가 주는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불안과 걱정을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제 어두워지면 내가 사는 도시도 조금 조용해진다. 하늘이 맑으면 정말 밝은 보름달이나 이쁜 초승달을 볼 수 있다. 그럼 이제 옥상 의자에 앉아 나의 식물들과 또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늘만 바라본다.


옥상에서 본 초승달 (사진: 나)


내가 종종 혼자 있는데도 혼자 있고 싶을 때 하는 일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위로가 온다. 선선한 저녁 바람 때문인지, 하늘에 뜬 달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이 답답한 날에 흙놀이를 하고, 옥상에 잠시 앉아있다 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크게 풀린다.


가드닝 혹은 반려식물은 키우는 일은 우리를 다시 어린아이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정말 사소한 것에 행복하고 웃을 줄 알며, 바람만 불어도 기분이 좋았던 그때.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현재를 순수하게 느끼며 즐길 수 있게 해주며, 지금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결국 현대 가드닝은 힘든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사람들이 만든 취미 중 하나이다. 절대 여유롭고 배부른 사람들만이 하는 고상한 취미가 아니다. 오히려 손에 흙을 묻히고, 온몸 땀투성이가 되는 오히려 노동에 가까운 취미다. 그래도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그 노동을 흙놀이라고 부른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흙놀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놀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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