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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y Oct 24. 2021

추운 겨울을 보내야지만 피는 꽃

Revised on Oct 24, 2021

식물들이 성장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는 겨울이 오면 가드너들은 한 숨 여유로워진다. 그렇다고 마냥 놀 수 많은 없다. 내년 봄에 피울 식물들을 겨울 동안 미리 준비해 놔야 하기 때문이다. 발아가 오래 걸리는 씨앗들을 미리 실내에서 심어 싹을 틔울 준비를 해놓기도 하고, 꼭 겨울을 보내야만 꽃을 피우는 양파와 꼭 닮은 겨울 구근들을 미리 땅에 심어놔야 한다. 나는 이 두 가지 준비를 좋아한다.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겨울 구근 꽃들은 대표적으로 튤립과 히야신스, 프리지아, 수선화 등 우리가 아는 봄을 대표하는 향기로운 꽃들이다. 이런 아름답고 향기로운 구근들이 꽃을 피우고 난 후에도 계속 심어둘 정원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물리적으로 공간의 한계가 있는 가드너들은 꽃이 핀 후 땅에서 구근들을 수확하여 건조한 곳에 반년 정도 보관해 둔 뒤에, 월동 준비를 끝내고 난 후 다시 정원이나 화분에 수확해둔 구근들을 심어준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히야신스의 꽃 향기는 어느 꽃 보다 향기롭다 (사진: 나)



이런 겨울 구근들을 이 차가운 겨울 땅에 심는 이유는, 겨울 구근들은 일정한 추위에 노출되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않기 때문이다. 땅 속에서 차가운 겨울을 보내고 나면, 날씨가 따듯해지는 초봄부터 싹을 틔운다. 그리고 완전한 봄이 되면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그래서 봄이 되면 우리는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향기로운 꽃향기를 맟을 수 있고, 눈을 돌리면 보이는 아름다운 꽃들로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튤립과 보라색의 무스카리, 대표적인 겨울 구근들이다 (사진: 나)



재밌는 사실 중 하나는, 만약 겨울 구근들을 봄이 아닌 여름이나 그 보다도 더 늦게 피우기위해 시기를 조정해서 심고 싶다면, 구근들을 겨울에 심지 않고 보관해두었다가 원하는 시기에 맞춰 냉장고에 넣어두어 가짜로 겨울을 보내고나게 한 후 심으면 내가 원하는 시기에 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겨울 구근들은 추운 시간을 보내야지만 꽃을 피운다.


참 억울하다. 편하고 따듯한 곳에서만 자라고 싶은데, 겨울을 겪어야지만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렇게 버티고 견뎌 피운 꽃들은 개화 후 일주일 이내에 꽃이 지고만다. 후에 꽃이 지고 난 자리에 남는 것은 초록잎 몇 장 뿐이다. 또 다른 신기한 사실은 꽃이 진 후에는 더 이상 구근에서는 새 꽃과 잎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남은 잎들로 여름을 버티고 버텨 초록 잎이 갈색 잎이 되어 시들고 나면 이제 구근의 할 일은 끝이 난다.


이제 마지막 잎 마저 시들어 떨어지면 구근들은 그 자리에서 향기로운 꽃이 피어있었는 줄도 모르게 땅속으로 자취를 모두 감춘다. 이 구근들을 조심스레 꺼내어보면 몸집을 키워 더욱더 크게 성장해 있거나, 혹은 그 옆에 조그마한 새끼 구근을 만들어 번식을 해놓은 걸 볼 수 있다.


꽃을 피우는 데에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 꽃 아래 흙 속에서 자신의 뿌리이자 몸통을 누구보다 크고 강하게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이는 다가올 겨울을 더 잘 버티기 위함일 수도, 내년에는 더 크고 많은 꽃을 피우기 위함일 수도 있다.


겨울 구근의 삶을 보면 나 스스로가 반성하게 된다.


내 삶에 가끔 혹은 잠시 찾아오는 겨울을 겪으며 나는 춥고 힘들다며 문을 꽁꽁 닫고, 창문으로 조금의 바람도 들어오지 못하게 닫아버렸다. 그리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겨울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나가서 바람에 맞설 생각도, 추위에 맞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겨울이 지나고 난 후에 밖으로 나오면, 아주 약한 바람이나 추위에 버티지 못하고 병이 들었다.


내년 봄 아름다운 꽃을 피워줄 겨울 구근들을 상상하며 나 또한 같이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한다. 더 이상 춥다고 숨거나 웅크리지 않으며 겨울을 보낼 것이다. 해가 짧아져 어두운 시간들이 더욱 길어져도, 어둠과 추위를 무서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을 것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은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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