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sed on Oct 24, 2021
우리 집 옥상에는 할머니가 꽃을 키우신다. 할머니는 3층에, 나는 2층에 사는데 할머니는 반층을 올라가실 때마다 잠시 쉬어야 할 만큼 힘들어하신다. 우연히라도 계단에서 마주치면 나는 좀 오래 걸린다며 먼저 올라가라며 충분히 넓은 계단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비켜주신다.
이번 여름이 끝난 후 습한 기운도 가시고, 상쾌하고 청량한 날씨가 계속되어 한번은 이불을 옥상에 널어 말렸더니, 그 바삭하고 보송한 느낌이 좋아 한동안 모든 이불과, 빨래를 옥상에 널었다.
3층 할머니 집을 지나가야 갈 수 있던 옥상에는 할머니가 소중하게 키워오신 꽃들과 상추, 가지 등 여러 채소들이 심어져 있었다. 옥상 한편에는 빨간색 제라늄 꽃들이 한 밭을 이루고 있었다. 그 와중에는 장미꽃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여름이 끝난 후 물이 모자라 꽃을 피우려다 피우지 못한 꽃봉오리를 애처롭게 달고 있었다.
제라늄은 건조한 흙을 좋아하고, 건조한 환경에서 잘 버티는 꽃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아마 할머니의 제라늄 꽃들은 모두 자연스레 개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옆에는 무엇인지 모를 식물도 있었는데, 할머니께 여쭤보니 하나는 빨간색 꽃이 피는 달리아(달리아)라는 꽃이고, 하나는 이름 모를 국화 같은 꽃이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올해는 장마가 길어서 그런지 두 꽃 다 안 피었다고 하셨다.
꽃이 필 때는 절대 화분의 물을 말려서는 안 된다. 꽃이 피는 개화시기에는 식물에게 가장 중요하고 에너지가 많이 드는 시기라 물을 말리는 순간 꽃을 피울 힘을 자신의 몸을 유지하는 것에 써버리기 때문에 꽃이 피지 않는다. 꽃 봉오리가 맺히더라도 물이 모자라는 순간 꽃부터 말려 떨어뜨린다.
하지만 계단 하나도 올라가기 힘들어하시는 할머니에게 매일 옥상의 장미꽃과, 달리아, 그리고 이름 모를 국화 같은 꽃에 물을 주는 것은 할머니에게는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이거 꽃 필 거 같아요'라고 위로드렸지만, 할머니는 곧 서리가 내릴 거라고 올해는 늦은 것 같다고 섭섭해하셨다. 그래서 내가 아침저녁으로 물을 줬다. 가끔 추운 날에는 낮에 온도까지 확인하며 물을 줬다. 비가 온다고 하곤 충분히 비가 내리지 않아 뿌리까지 비가 닿지 않은 날에도 올라가서 물을 줬다.
고맙게도 이미 꽃봉오리가 있던 장미는 금방 꽃을 피워준다.
꽃잎이 가장 먼저 생기는 제일 겉의 꽃잎은 조금 상처가 있지만 세상 빛을 보길 기다렸던 봉오리 안쪽 꽃잎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싱싱하고 반듯하게 얼굴을 내민다. 이렇게 식물은 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주는 대로 보답해 준다. 그 모습이 누구보다 솔직하고 순수하다. 마지막까지 버티다 상처 입고 찢어져 버린 첫 꽃잎들 조차 장미에겐 한 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장미옆에 자리 잡은 달리아는 이미 크게 꽃을 피우고도 또다시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다. 이름 모를 국화도 늦게나마 꽃봉오리를 올려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11월이 들어서며 정말 추운 날도 있었지만 얼마나 꽃 피우길 기다렸는지 그마저도 버티며 꽃을 올렸다.
물만 주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꽃을 피워준다. 죽은 애들을 살린 것도 아니었다. 아직 꽃 피우지 않은 식물에 물만 주었을 뿐이다.
꽃봉오리를 모두 올려둔 후 할머니를 옥상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할머니 여기 보세요 여기 꽃봉오리 올라왔어요!'라고 말하니 할머니가 웃으시며 행복해하셨다. 그러면서 '이거 피면 엄~청 크고 이쁜 꽃이 피어, 우리 며느리가 이 앞에서 4만 5천 원이나 주고 어버이날 사 왔어' 라며 한껏 자랑을 하시며 행복해하신다. 나는 달리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달리아는 내가 좋아하는 꽃임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에게는 모르는척하며 엄청 기대된다며 꽃이 빨리 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늦게라도 좋으니 마지막까지 힘을 다해 피는 꽃들을 보며,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도 꽃피우지 않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봐주고, 목마른 자신에게 물을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잠시 힘들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방치해 둔 나의 사람들이나, 나의 생각이나, 나의 바람 같은 것들이 아직 피우지도 못한 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피지 않은 것뿐이다. 시들어 죽은 것도 아니며, 할머니의 걱정처럼 늦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간절하게 자신을 바라봐주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