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sed on Oct 24, 2021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무언가를 얻었을 때 감정이 +1이라면, 무언가를 잃었을 때의 감정은 -2.5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은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슬펐던 기억을 더 많이 기억하고, 더 오래 기억한다.
나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행복하고 남들처럼 평범한 삶은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릴 적 누군가 '꿈이 뭐야?' 하면 과학자나 의사, 화가와 같은 꿈을 꾸는 나의 친구들과 달리, 어린 나의 꿈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자책스러워서, 억지로 '선생님'과 같은 아주 평범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식물을 키워서 행복해지지 않는다. 다만 식물을 키우면서 자연스레 진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보인다. 이렇게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해서 그동안 내가 겪은 고통들이 갑자기 행복한 기억들로 바뀌지는 않는다. 대신 행복한 기억들이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에 앞장서서 나를 지켜준다.
'그래서 행복해지는 법이 뭐야?'라고 물어본다면, 사실 아직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식물을 키우며 나의 삶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건 나에게 해당되는 사실일 뿐 모두에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식물을 키우면 행복해져요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공식이 아니다.
또한 식물을 키운다 해서 갑자기 불행하고 슬픈 일이 찾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제는 불행도 좀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다. 아프다고 소리치고, 도와달라 손을 내미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방법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불안과 고통을 꼭꼭 숨기고 숨겼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힘들지도 아프지도 않은 척했다.
누군가 힘들 때 '조차' 옆에 있어준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사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반을 누군가에게 덜어 놓음으로써 반이 된다고 생각한다.
기쁠 때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지만, 나의 기쁨을 나눔으로써 상대의 불안함이나 조초함이 '배'가 될 수도 있다. 이감 정은 질투와는 또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슬픔과 고통을 나누면서까지 가벼워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힘들고 불안할 때 내가 키우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가만히 쳐다도 보고, 허브를 쓸어 나는 신선한 향을 계속 맡기도 했다.
결국 나의 짐을 함께 짊어주고, 나의 불안을 덜어준 건 나의 작은 식물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내뱉는 불안과 고통을 그들도 다 느꼈으리라.
덕분에 집에 돌아오는 길은 항상 가볍고 상쾌했다. 결국 나에게 슬프고 슬플 때나 나를 지켜준 건, 한 없이 약한 나를 강하게 키워준 건 누군가 물을 주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누군가 옮겨 주지 않으면 평생 한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켜준 그들이었다.
시간은 한정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결국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이 지나고 나서야 지나간 시간들을 그리워한다. 그때 말하지 못한 것들, 혹은 그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후회한다. 그리고 행복했던 그때를 그리워한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 수많은 과거들이 쌓이고 나서야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불행하고 공평하게도, 이 소중한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만이 내가 보내고 있는 현재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행복이란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겐 많은 돈이, 어떤 이에겐 높은 명예가,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웃음이 될 수 있다. 행복의 의미는 사람마다 너무나 광대하고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나는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던 어느 과거의 나에게 행복의 기준은 돈이었다. 돈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결론만 짧게 말하자면, 결국 돈이 주는 행복은 잠깐이었고, 그 행복했던 기억들은 너무 쉽게 잊혔다. 동시에 나는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와 사랑이 행복이라고 믿었다. 이 행복 또한 돈과 같았다. 어렵게 얻었지만 너무나 쉽게 잃을 수 있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을 보내며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확실해지고 다양해졌다. 점점 확실해지는 나만의 행복한 것들이 늘어난다고 해서 불행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를 행복해주는 것들이 선명해질수록, 불행이 두려워지지 않아 졌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시간들을 낭비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억지로 붙잡지 않기로 했다. 돈이 행복의 기준이라 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 직장이나 돈벌이를 억지로 유지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찰나의 고통으로 함부로 결정해서도 안된다. 이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내 몫이고 선택이기 때문에 뒤에 따라올 어떠한 결과에도 토를 달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확신 또한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