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식물이 나를 키우는 이야기 27화

라이킷 14 댓글 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choy Aug 11. 2021

초기 무늬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시간이 지나면 떨어질 잎입니다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식물이었던 무늬 몬스테라 (몬스테라 알보)를 구입했다. 무늬 몬스테라는 희귀 식물로 기존 몬스테라에서 흰 무늬를 가지고 있어 희귀 식물로 분류됐고, 이러한 희귀성은 점점 커져 무늬 몬스테라 (몬스테라 알보)는 점점 가격이 하늘로 치솟았다.

작년 여름 농장에서 본 아름다운 무늬의 알보 몬스테라 (무늬 몬스테라)

이미 크고 멋진 무늬를 가지고 있는 무늬 몬스테라는 너무 가격이 비싸, 무늬 몬스테라의 유묘(어린 모종)를 찾아 구입했다. 가격이 워낙 비싸서 인지, 아직 어린 유묘인데도 무늬가 없다고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 듯했고, 판매자분은 아래와 같은 내용의 쪽지를 동봉하여 식물을 보내주셨다.

"꼭 읽어주세요!"

1. 몬스테라 유묘(어린 모종)는 초기에 약할 수 있으니 재배분에서 1달 정도 기르신 후에 분갈이해주세요.
2. 식물이 기울어져 있는 경우 지지대 세워서 기댈 수 있게 해 주시면 도움이 됩니다.
3. 초기 무늬 패턴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유묘(어린 모종) 때 가지고 있는 무늬는 시간이 지나면 떨어질 잎입니다.
4. 물은 겉흙이 마를 때 흠뻑 주면 됩니다

식물을 키운 경험이 길다면 길고 자신 있다면 자신 있는 나도, 이런 비싼 식물은 혹시 키우는데 다른 팁이 있을까 하여 같아 꼼꼼히 주의 사항을 읽어보았다.

역시나 무늬 몬스테라도 몬스테라인지라, 흔히 키우는 관엽식물들처럼 겉흙이 마르면 물을 주고, 분갈이 시 적응할 수 있게 기간을 주라는 말, 그리고 기울었을 때는 지지대를 사용하라는 기본적인 말들이었다.

그런데 이 중 한 문장을 읽는 순간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초기 무늬 패턴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유묘(어린 모종) 때 가지고 있는 무늬는 시간이 지나면 떨어질 잎입니다."

이 말에 참 공감이 갔다.

무늬가 있는 식물들은 보통 어릴 때는 무늬가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점점 크면서 무늬가 생기는데 사람들은 어린 모종을 사면서 벌써부터 화려한 무늬를 가지고 있길 바란다.

내가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식물의 무늬는 달라진다. 빛을 많이 보여주고, 물이 마르지 않게 혹은 과다하지 않게 주는 것. 사소하지만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추후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무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무늬를 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오고 오래된 잎이 하엽진다. 이처럼 당연한 자연현상이 나는 우리 인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비록 나의 유묘(어린 모종) 시절에 나의 잎에 화려하고 선명한 무늬가 없을지라도, 이는 신경 쓸 일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나의 가장 오래되고 여린 잎들은 하엽지고, 그 잎을 떨구어낸 에너지로 누구보다 선명하고 가치 있는 무늬의 새 잎에 나올 것이다. 비록 기대했던 새 잎에 무늬가 안 나오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이 또한 신경 쓸 일이 되지 않는다. 새 잎은 준비된 순간 항상 나온다. 시간이 멈추지 않는 이상 새잎은 멈추지 않는다. 다음 나올 새 잎에는 더욱 튼튼하고 선명한 무늬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가만히 시간만 흐른다 하여 선명한 무늬의 잎이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충분한 햇빛 (광합성)과, 물 주기, 그리고 신선한 바람(통풍) 적당한 영양을 꾸준히 충분하게 공급해 주어야지만 다음 잎에 무늬를 기대해도 좋다.

식물을 키우는 데 있어서도 무임승차는 허용되지 않는다. 말라죽기 전에 물을 주고, 과습으로 뿌리를 썩히고, 혹은 아무 빛도, 바람도 들지 않는 먼지 가득한 저 구석에서는 식물도 목숨을 유지하는 것에만 신경 쓸 뿐, 가치 있는 무늬를 내는 일은 그들에게도 사치일 뿐이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의 나이.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나의 초기 무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시간이 지나도 화려하고 선명한 무늬를 가지고 있지 않아 앞으로도 그런 무늬를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고 보니, 참 어리석고 한심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나의 인생을 식물의 유묘(어린 모종)와 비교한다면 지금 참 많이 자랐다. 강한 비바람과 태풍도 맞아 상처도 있고, 그 깊은 상처들이 결국엔 아물었지만 나의 잎과 줄기에 큰 흉터가 되어 이쁘게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다.

혹시나 내가 유묘때 가지고 있던 생각을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한다.

"초기 무늬 패턴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유묘(어린 모종) 때 가지고 있는 무늬는 시간이 지나면 떨어질 잎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