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2010년 2월 1일~3일, 주식회사 디엔에이
아침 일찍 사무실에 들렀다. 오늘 가게 될 회사로 가지고 갈 서류들을 챙기러 왔다. 그전에 갔었던 두 회사 모두 심적 부담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함께한 선생님들 덕분에 든든했던 지라 앞으로 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할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집합하기로 한 논현로의 어느 건물 앞 카페에 들어가니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원대조 선생님이 커피를 주문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 인사를 하고 카운터에서 먼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 우리 지정[1]받은 거라는 거 들었죠?”
커피를 한 모금 한 원대조 선생님이 심각하게 말했다.
“네. 그렇게 듣기는 했는데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 어떤 차이를 불러오는지 아리송하여 물었다.
“그건 곧 감사 리스크[2]가 크다는 뜻이지요. 고로 이번 감사는 빡 셀 것이다.”
원대조 선생님이 대답하며 지금 막 열리고 있는 카페의 문 쪽을 바라봤다. 심의구 이사님, 나독립 선생님, 노대차 선생님이 차례로 들어왔다. 심의구 이사님이 우리에게서 커피 주문을 받아 직접 카운터에서 주문하고는 우리 테이블로 와서 앉으며 물었다.
“다 왔노? 김장수 샘 아직 안 왔네”
심의구 이사님의 말과 동시에 창 밖으로 느긋하게 걸어오는 김장수 선생님이 보였다. 김장수 선생님이 자리에 앉자 심의구 이사님이 말을 이었다.
“여기 우리 지정받은 거 알쟤? 설 연휴에 내 친구한테 연락 왔는데… 연예인 주부자 남편이 작전주 한다는 얘기 들어 봤나? 내 친구 아는 사람이 조그맣게 증권 방송하는데 그러면서 알게 된 사람이 작전했다가 감방 들어갔단다. 곧 나올 예정이라 카는데 주부자 남편한테서 연락 왔단다. 새로운 작전 하자고. 그게 여기대이.”
“진짜예요?”
나독립 선생님이 놀라며 말했다.
“ 모르쟤. 작전 그 세계가 헛소문도 많고, 사실이라고 해도 중간에 자빠지는 경우도 많아서… 아무튼 증선위에서 연락 온 것도 있고 하니 잘 보래이.”
“회계하셨으니 감사합시다.”
나독립 선생님이 외쳤으나 뭐 볼 게 없다. 감사 리스크 크다고 심의구 선생님이 다섯 명이나 배정한 데다 본인도 필드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맡은 계정은 기타 당좌자산들인데 선급금[3]이랑 단기대여금[4]이 전부다. 그것도 순액[5]이 각각 2천만 원과 3천만 원 수준도 안 된다. 지난번에 갔었던 학원업 하는 회사랑 제조업에 비하면 꼬꼬마 수준이다. 코스닥[6]이라도 명색이 상장산데 왜 이래? 선급금과 단기대여금 명세서를 보니 와 리스트가 무척 길다. 선급금 나간 데랑 단기대여금 나간 데 왜 이렇게 많아. 발생 날짜가 10년도 더 된 것도 있고, 회사명으로 기재된 것도 있고, 개인으로 기재된 것도 있고, 선급금 지급 내용을 보면 업종이랑 무관해 보이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바이오 업종이라고 들었는데… 전기까지 누적된 선급금과 대여금에는 100% 대손충당금이 설정되어 있다. 즉, 2천만 원과 3천만 원은 모두 당기에 발생한 거래였다. 손익계산서를 보니 매출도, 매출원가도, 판관비[7]도 그로 인한 당기순손실[8]도 금액이 참 아기자기하다. 아니 영업이 되고 있기는 하는 건가? 저런 매출금액으로 어떻게 3천만 원을 한 개인에게 대여해줬지? 전기까지 대손충당금이 100% 라니 빌려주고 회수할 생각을 아예 않는다는 건가? 회사가 영리적이지를 않네. 왜 이래? 이상하네. 회의실에 들어온 지 채 30분도 안된 시간이었다.
그때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이 손에 자료를 잔뜩 들고 들어왔다. 건네받은 명함에는 부사장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학자 같은 이미지에 목소리도 참 영롱하다. 회사 소개를 해 줄 요량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손에 들려 있던 것은 회사 소개서와 사업설명서 같은 PPT 자료였다. 회사 소개서를 보니 설립 이후 회사 이름이 참 많이도 바뀌었다. 회사 이름을 보니 업종이 예상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어쨌든 육안으로 예상되는 업종만 해도 이미 다섯 개다. 가만있자 지금 이름도 작년 말에 바뀐 거잖아. 작년만 해도 바이오 업종이 아니었네? 부사장은 전기와 당기 재무제표와 관련되어 있었던 업종 그러니까 작년까지 영위했던 IT 사업의 내용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그에 따른 재무제표에 대해서 연결 지어 설명해 주었다. 이미 한 시간이 지나갔다. 조근조근 말씀이 많으시구나. 반짝거리는 눈도 보았다. 그 다음으로 지금 사업, 그러니까 사명을 바꾸고 난 후 준비하고 있는 신사업에 대한 설명이 시작됐다. 정확하게는 이 사업으로 아직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다. 아직 준비 중이란다. 그래서 매출을 발생시키고 있는 IT 사업을 완전히 접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이 걸로도 한 시간이 지나갔다.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사무실을 쭉 훑어볼 수 있었는데 사무실 크기가 생각보다 작고, 책상 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직원수가 10명이 채 안될 것만 같았다. 점심식사에는 입사한 지 1년이 안된 회계 과장도 함께 했다. 그 회계 과장님과 함께 길을 걸으며 혹시 다른 데 지점도 있느냐 물으니 이게 다라고 했다. 음… 상당히 규모가 작구나. 이 사람들만으로도 법인이 제대로 굴러갈 수도 있는 건가? 점심을 먹으며 오간 대화 속에서 부사장님의 이력을 들을 수 있었다. 이 회사에 근무한 지 12년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회사의 연혁과 동일하다. 회계 과장의 말로는 이 분이 이 회사를 설립했다. 전 대표이사이자 주주였단다. 부사장님의 눈 빛이 반짝반짝거렸던 건 지난날 벤처회사를 설립했을 정도로 재기발랄했음을 입증했던 것일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오후에 회장님이 오실 거라 했다. 회장님?
오후 늦게 회장님이라는 분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건네 주신 명함에는 대표이사 직함이 찍혀 있었다. 이름을 보니 아까 주주명부에서 본 최대주주의 이름과 동일하다. 아, 그래서 회장님, 회장님 하는 거구나. 선급금과 단기대여금에 관해서는 이미 감사를 다 마친 것 같아 회사에 대한 정보를 이것저것 수집하고 있는 중이었다. 회장님은 부사장님과 함께였다. 회장님은 우리와 각각 인사를 나누고 부사장님을 보며 말했다.
“우리 바이오 사업에 대해서도 얘기했나?”
자신의 신 사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톤으로 부사장으로부터 이미 충분히 들은 바이오 사업에 대한 얘기를 되풀이했다. 아까 부사장님도 돈키호테 같았는데 회장님에게서는 더욱더 현실감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나중에 회계 과장님에게서 들으니 작년 말에 최대주주가 되면서 대표이사로 왔다고 했다. 자기보다도 입사일이 늦다고 덧붙이며 말이다. 결국 내가 느낀 것은 사업 전망에 대해 뜬 구름 잡는 회장님과 부사장님, 그 뒤처리를 하고 있는 듯한 회계 과장님, 회계 업무보다는 회장님을 보좌하는 일이 더 많은 회계 직원 이렇게 4명을 제외하고 나면, 6명 정도의 직원이 남는데 그 사람들로 비즈니스를 제대로 하고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런 게 유령회사인가? 더 이상 볼 게 없네 하고 있는데 나독립 선생님이 물었다.
“기타 당좌자산 담당 누구지?”
“저요”
내가 대답했다.
“기간 귀속 테스트할 거죠?”
“네.”
대답은 했지만 기간 귀속 테스트를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나독립 선생님, 뭘로 해야 하죠?”
나는 할 수 없이 주저하며 물었다.
“2010년 1월 1일부터 현재까지의 기타 당좌자산 과목들 원장 요청해요.”
나는 나독립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대로 회계 과장님에게 자료를 요청했다. 그러나 전기와 당기에는 없던 선급비용 계정에 상당히 많은 금액이 갑자기 계상되어 있다. 그 선급비용의 내용들을 보니 주부자에게 선지급한 5천만 원의 광고선전비도 있고, 어떤 개인에게 지급된 알선수수료 2억 원도 있다. 아직 사업이 구체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아 판매할 아이템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광고료부터 선지급되었다? 주부자 남편의 작전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알선수수료. 회계 과장님에게 어떤 내용인지 질의했다. 회계 과장님 왈, 작년[9]에 투자자를 소개받고 그 수수료를 올해 초에 지급했다는 것인데 원천징수 및 신고[10]를 하지 못해 비용 처리하지 못하고 선급비용으로 계상해 두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급한 금액을 원천징수 후의 금액으로 두고 원천징수세액 차감 전의 금액을 역산하여 그 금액을 당기 비용으로 처리할 것과 해당 원천징수세액은 수정 신고 및 납부할 것을 요구했다. 생각보다 나의 요구사항이 쉽게 받아들여졌다. 나 말고도 다른 선생님들 수정사항도 꽤 많이 받아들여졌는데 재무제표 숫자에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이렇다 할 자산도 없어 자산총계도 거의 바닥인 마당에 이런 거액을 수수료로 지급하다니 이해가 안 되어 물어보니 올해 1월 에 유상증자를 해서 자금 투입이 꽤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회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이 있다고? 주식이란 무엇인가? 주식회사란 무엇인가? 재무제표란 무엇인가? 주주는 회사의 주인이라 배웠다. 과연 이 주인들은 자신의 회사에 대한 애정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리고 그 속에서 회계감사란 무엇인가? 처음으로 회의감을 느꼈다. 어쩌면 앞으로 오랫동안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할지도 모르겠다.
[1] 일반적으로 회계감사는 자유 수임제가 적용되어 감사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회계 감사인을 선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증권선물위원회가 회계 감사인을 지정하여 주는 데 증권선물위원회에서 투자 종목 감리 결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가 그 한 예이다.
[2] 감사 위험이란 감사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으로 고유 위험, 통제 위험, 적발 위험의 곱으로 산출되는데, 감사인이 각각의 위험을 판단하여 목표로 하는 감사 위험에 도달하기 위한 적발 위험을 도출해낸다. 그 적발 위험이 높게 나오면 회계 감사 시 적발되지 못한 오류에 대한 수용 가능 정도가 높으므로 감사 절차의 기준이 낮아도 좋다는 뜻이고, 낮게 나오면 적발되지 못한 오류에 대한 수용 가능 정도가 낮으므로 감사 절차의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뜻이다.
[3] 용역이나 재화를 공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미리 지불된 금액으로 흔히 일반 상거래에서 말하는 계약금이 선급금에 해당한다. 거래가 완료되면 이는 자산으로 재분류된다.
[4] 쉽게 말하면 1년 이하의 대여금을 말한다.
[5] 선급금과 단기대여금과 같은 화폐성 자산은 회수 불확실성에 따라 대손충당금으로 설정하도록 되어 있다.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된 만큼 대손충당금을 설정하게 되면 지불된 총금액에서 대손충당금을 차감한 금액을 순액이라고 부른다.
[6] 코스닥 등록 법인을 줄여 말하고 있음. 기업의 주식이 공개되는 시장의 유형 세 가지는 유가증권 시장(코스피라고 함), 코스닥, 코넥스이다. 그중 코넥스는 2013년 7월에 개장하였으므로 이 당시에는 두 시장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주로 중소기업 또는 벤처기업이 상장되어 있는 시장으로서 이곳에 상장한 해당 기업(협회등록법인이라 함)의 주식 또한 감독당국으로부터 감독과 관리를 받고 있다.
[7]판매비와관리비의 줄임말이다.
[8] 회사의 최종 이익이 당기순이익인데, 이 최종 이익이 (-) 금액인 것을 당기순손실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적자다.
[9]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2009년도에 대한 감사를 2010년에 수행하는 것이므로 2009년은 재무제표 일 기준으로 당기에 해당하지만 감사 시점에서 보면 작년이다.
[10] 법인이 개인으로부터 인적 용역을 제공받고 대가를 지급하는 경우에는 그 개인의 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세액을 차감하고 지급한 후 공제한 세액은 국세청에 신고 및 납부하도록 되어 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