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2010년 1월 25일~27일, 경진정공 주식회사
월요일 아침, 인천으로 오느라 일찍부터 서둘러 나왔다. 2층짜리로 나지막하지만 면적이 넓은 건물 앞 경비소 근처에서 팀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앞에 보이는 쪽은 사무 공간이고 뒤 쪽으로는 천고가 높은 1층으로 된 공장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여기가 ‘신년벽두부터 여자가 재수 없게…’를 들었던 바로 그곳이다. 게다가 나독립 선생님이 ‘경진정공 재고실사 자료 주세요’ 했을 때 여기저기 아무리 찾아봐도 서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에 뒀는지는커녕 심지어 어떻게 생긴 서류였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독립 선생님은 쓴소리를 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안달이 나서 부리나케 책상 여기저기를 샅샅이 뒤졌다. 서랍 구석에서 찾아내고는 나도 모르게 쾌재를 불렀다. 영어와 숫자가 가득한 두 장 짜리 서류에 회사 이름도, 내 이름도, 회사 쪽 입회자 이름도 없었다. 사실 처음에도 슬쩍 지나쳤던 서류인데 이게 경진정공의 재고실사 자료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대형 사고를 칠 뻔하기도 했고 해서 긴장되었던 건 물론이고, 지난주에 갔던 회사가 서비스업이었던 것에 반해 여기는 제조업이기에 긴장된 것도 있었다. 제조업이라면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고 해도 일단 기본적으로 규모가 어느 정도 되고, 원가회계라는 과목이 따로 있을 정도로 덩치가 큰 계정이 제조원가인만큼 제조업체의 회계처리는 그 복잡성도 대단하다. 제조원가의 흐름은 회사 전체의 영업 활동의 8할은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 이 회사는 자동차 회사로서 직접 납품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 즉 1차 협력사 (1차 밴더)에 해당한다. 나독립 선생님의 차를 비롯해 노대차 선생님의 차도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고, 김장수 선생님도 저기 걸어오고 있다. 오늘은 원대조 선생님도 감사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다. 작년 중간감사 시즌을 겪고 나니 원대조 선생님이 우리 팀의 에이스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고, 처음 봤을 때부터 이 팀에서는 유일하게 내가 상상해왔던 회계사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 원대조 선생님과 처음으로 이번 감사를 같이 하게 되는 것에 대한 기대가 크다.
나독립 선생님은 익숙하게 곧장 2층 회의실로 우리들을 이끌었고, 회의실 문 앞에서는 이미 ‘회계 감사, 1월 25일 ~ 27일’이라고 씌어 있는 A4용지가 붙어 있었다. 회의실 안에는 아무도 없지만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나독립 선생님은 전화기 옆에 놓여있는 구내번호 안내판을 보고 어딘가로 다이얼을 돌렸다.
“과장님, 저희 왔습니다.”
나독립 선생님을 따라 노트북을 꺼내놓는데 5분이 채 되지 않아 작업복 상의를 입은 다섯 명의 사나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차례로 이대령 재무이사, 박준위 부장, 김중사 과장, 조병장 대리, 그리고 이등병 직원. 중간감사 때 봤던 얼굴들이지만 처음 본 이후 몇 달 만에 다시 보니 대번에 얼굴과 이름이 연결되지 않아 혼자 잠시 혼돈에 빠져 있었다. 나중에야 명함을 꺼내놓고 기억을 끄집어냈다. 회의실 안 커다란 회의테이블 위에는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 자본변동표, 현금흐름표가 다섯 세트 놓여있고, 테이블 둘레로 벽 쪽의 낮은 수납장 위에는 ‘2009년 1월 1일 ~ 15일 원장’, ‘2009년 1월 16일 ~ 31일 원장’… 벽돌만 한 폴더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대령 재무이사만 남고 나머지 분들은 인사만 하고 나가는 것을 보아 일부러 얼굴을 비치러 온 것임을 알았다. 묘하게도 군대 문화가 느껴졌다. 이대령 재무이사님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우리 요즘 파업했잖아. 그래서 지난주까지도 생산 라인 들어갔다 왔어. 우리 직원들 너무 힘들었어. 결산 겨우 하면서 라인 들어갔다 오구.”
미소를 띤 채였다. 여유 넘치는 모습에서 어쩐지 강한 권력이 느껴졌다.
“작년에 이익이 많이 나가지고, 많이 요구하더라고. 감사받으면 많이 깎일 거라고 해도… 노조 똑똑해. 노조 안에 회계사도 있잖아. 이미 재무제표 가지고 분석 다 끝내고 감사받아도 얼마 정도일 거라고 딱 예상해서 요구하더라고.”
재무이사님의 말에 나독립 선생님은 재무제표를 넘기며 숫자들을 확인했다.
“그러네요. 이익이 많이 났네요. 매출이 늘었나요? 매출원가가 줄었나요? 매출은… 많이 늘었네요.”
나독립 선생님이 묻자 이대령 재무이사님은 말했다.
“작년에 전방산업이 실적이 좋았잖아. 7월부터 해가지고 내수, 수출 다 좋았다고. 후방산업에서도 우리가 이득을 좀 봤지. 매출원가가 늘기는 했어도 매출원가율이 줄어들었을걸.”
이대령 재무이사님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꽉 차 있었다. 나는 한마디도 끼어들지 못하고, 아니 끼어들 자리도 아니고 하는 생각에 노트북을 켜 놓기는 했으나 딱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귀로만 열심히 듣고 있었다. 어느덧 1시간이 지나 벌써 11시다. 11시 반에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말을 남기고 이대령 재무이사님이 나가자, 나독립 선생님은 프린트된 재무제표에 어싸인을 하고는 원대조 선생님에게 전달하면서 말했다.
“자, 회계하셨으니 감사합시다.”
몇 분 후에 원대조 선생님은 노대차 선생님에게 전달하고 김장수 선생님은 나독립 선생님의 재무제표를 요청해 어싸인된 것을 확인했다. 이제 내 차례가 되어 나도 내 재무제표에 어싸인을 표시했다. 그러고 나니 11시 반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자 1시 반이었다. 3일 중 반나절이 지나갔다. 서둘러 회사에서 받은 엑셀 파일들을 열어보는데 자료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 자료가 뭘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른 채 시간만 흘러 벌써 5시.
“기똥차 샘, 뭐 요청 안하노?”
점심식사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 함께 식사를 마치고 들어와 한 쪽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으로 뭔가 일을 하고 계셨던 심의구 이사님이 나를 보며 물으셨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눈만 꿈뻑꿈뻑하고 있었다.
“니, 계정 뭐 맡았노?”
심의구 이사님이 물으며 내 자리로 오셨다.
“유형자산 맡았네. 보자. 총괄표 만들었쟤? 응, 만들었네. 당기 취득, 처분 구했고. 취득 증빙, 처분 증빙 요청하면 되겠네. 감가상각[1] 재계산 검증[2]은 했노?”
내 엑셀 조서 파일을 살펴보셨다. 내가 ‘네.’라고 대답하며 쳐다보자 심의구 이사님이 물었다.
“와? 뭐 몰라서 그러노?”
“담보제공자산 검토하고 있는데 은행조회서랑 잘 안 맞아서요. 뭐랑 맞춰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의 대답에 심의구 이사님은 담백하고도 간결하게 답했다.
“조병장 대리한테 물어보래이.”
심의구 이사님은 우리 팀의 매니저이시다. 심의구 이사님의 아내 분도 회계사 출신으로 수험생 시절부터 연인 사이였다고 전해 들었다. 파트너이신 박직새 전무이사님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이지만 사실은 어리다. 박직새 전무님과 심의구 이사님은 대학 선후배 사이로 심의구 이사님이 Big Four 중 하나에서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중에 박직새 전무님이 파트너가 되시면서 우리 법인으로 스카우트되어 오셨다. 박직새 전무님으로부터 들었는데 심의구 이사님이 대학 시절 떡볶이 코트를 그렇게 입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하시다며... 얼굴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지금 내 옆에 조병장 대리님이 앉아 있다. 내가 보자 했으나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다른 팀원들이 의식된다. 나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했다.
“대리님, 취득하신 것 중에 이거랑, 이거랑 증빙 좀 주세요.”
나는 노트북 화면에 대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떤 증빙을 드리면 될까요?”
조병장 대리님이 반문했다. 할 말을 잃었다. 취득 증빙이 종류가 많은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있는 거 다 달라고 할까? 하는데 갑자기 ‘세금계산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세금계산서 주세요.”
나는 다시 명랑해져서 말했다.
“그거면 될까요?”
조병장 대리님의 질문에는 ‘그걸로 되겠어? 다른 것도 더 요청해야 하지 않아? 그걸로는 감사가 안 될 텐데…’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뭘 더 보면 좋죠?’라고 묻고 싶었으나 묻지 않았다.
“네.”
누구한테 물어야 할지 몰라 그냥 대답하고 말았다. 조병장 대리님은 가지고 왔던 ‘2010년’이라고 씌어있는 자신의 업무용 노트를 열어 내가 지목한 두 건의 유형자산 취득 품목의 전표 번호를 구입날짜와 함께 적었다. 다음은 처분 편이다.
“그리고 대리님, 작년에 처분한 것 중 이거…”
나는 말을 중단했다. ‘처분 증빙’이라고 말했다가는 ‘어떤 처분 증빙이요?’라고 또 되묻는다면 허를 찔릴게 뻔해 뇌에게 명령했다. 빨리 생각해. 빨리. 처분할 때 어떤 서류가 남지? 아하!
“입금된 증빙 주세요.”
내가 외치자 조병장 대리님이 또 반문했다.
“통장사본 드리면 될까요?”
참 난처했다. 통장? 사본이라고? 그거면 될까? 원본으로 봐야 제대로 된 감사 아니야? 그래!
“아니요. 원본으로 보여주세요.”
“저희가 통장을 실물로 사용하지 않는데 인터넷뱅킹 거래 화면 조회로 갈음될까요?”
“네.”
나는 다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다음 진짜 중요한 파트로 넘어갈 차례인데 이건 뭐 이미 회계사 폼이 다 떨어져서 계속할 수 있겠나? 그때 다행히도 심의구 이사님이 말했다.
“안 가노?”
“가야죠.”
나독립 선생님이 답한 후 우리들을 향해 말했다.
“짐 싸십시오.”
“대리님, 내일 뵐게요.”
나는 탈출하게 된 것에 감사하며 대리님과의 일을 내일로 미루고 서둘러 짐을 쌌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 집에 가서 전기 조서 좀 더 꼼꼼하게 훑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튿날. 어제보다는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조병장 대리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10시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1분도 안되어 조병장 대리님이 손에 서류를 한 아름 들고 내 자리로 오셨다. 어제 요청했던 자료가 벌써 준비된 모양이다.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고 혼자서 조용히 살펴보고 싶은데 옆에 앉으셔서는 내가 서류 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내 눈이 어딜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제가 서류 좀 더 보고 이따가 여쭐 것도 있으니 전화드릴게요.”
조병장 대리님이 회의실 밖으로 나가고, 겨우 혼자가 되었다. 아직 커피도 못 마셨잖아.
안 되겠다. 원대조 선생님에게 S.O.S를 치자. 노대차 선생님은 자리를 비운 지 오래라 전부터 힐끔힐끔 원대조 선생님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원대조 선생님~~~”
마우스로 한창 작업 중인 것 같아 언제 불러야 하나, 방해해도 되나 망설이다 끝을 길게 빼 이미 부탁조로 들리도록 불러봤다. 원대조 선생님이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저 좀…”
원대조 선생님이 여전히 말이 없이 내 자리로 오셨다.
“취득 증빙으로 세금계산서를 요청해서 받았는데 공급가액[3]으로 비품이 계상되었는데 이렇게 부가세[4]는 빼고 계상하는 게 맞는 건가요?”
“그렇죠. 부가세는 공제받을 거니까 비품 구입가액에서 빠지는 거죠.”
“저…그럼 이건 세금계산서가 아니라 인보이스인데 왜 이걸 주신 걸까요?”
나는 영문으로 된 문서를 보이며 주저하며 물었다.
“이건 수입한 거네. 인보이스로는 부가세 공제를 받을 수 없으니 이 금액이 취득가액이에요. 만약에 금액이 다르다면, 매입세액 공제를 목적으로 수입세금계산서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으니 수입세금계산서 있냐고 물어보면 되구요. 우선 여기 이 금액에 취득 당시 환율을 적용해서 제대로 환산된 건지부터 확인해봐요. 역사적 원가 알죠?”
“환율이요? 어디서…”
나는 말끝을 흐렸으나 원대조 선생님은 내 노트북을 보며 말했다.
“서울외국환중개 쳐 보세요. 거기에 일자 별 매매기준율 있으니 그걸 적용하면 됩니다.”
거침없이 답하는 모습이 프로페셔널해 보이고 멋지다.
“그리고 저… 담보제공자산이요. 은행조회서 하고 대조하는 거 맞죠? 근데 어느 부분은 맞고, 어느 부분은 안 맞아요. 안 맞는다면 회사가 잘못 기재했단 뜻인가요?”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고 원대조 선생님은 간결하고도 자신 있게 대답했다.
“차이 나는 부분을 하나하나 해소해서 클리어해야 합니다. 차이 나는 부분 전부 표시해서 차이 소명해달라고 우선 해보세요.”
원대조 선생님은 이렇게 갈무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12시가 거의 다 되어간다. 이등병 직원이 들어와 내려가자 했다. 오늘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자고 이대령 재무이사님이 아침부터 얘기해 놓은 터였다.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는데 작업복 입은 아저씨들이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고, 어떤 이들은 이미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작업복 입은 저들을 보니 재고실사 때 공장에서 내가 들었던 말과 그 후 겁도 나고 불쾌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자리에 앉은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이미 몇몇은 식사를 마쳤고, 내가 다 먹기를 기다리는 시선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여고와 여대를 나온 나는 이렇게 많은 사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빨리 먹어야 한다. 너무 많이 떠 왔다. 다 못 먹겠다. 근데 맛있다.
[1] 회사가 자산을 구입하는 때에는 현금이 지출되었다고 해서 즉시 비용으로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취득가액을 사용 기간 동안 안분하여 해당 상각액만큼 당기 비용으로 인식하는 절차를 말한다. 관련 비용은 감가상각비, 관련 비용의 누계는 감가상각누계액이며, 취득가액에서 감가상각누계액을 차감한 것을 해당 자산의 장부가액이라고 한다. 재무상태표에 나타나는 금액은 장부가액이다.
[2] 회사가 계상한 금액이 맞는지 검증하기 위해 외부 감사인이 직접 계산을 해보아 그 결과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을 재계산 검증이라고 한다.
[3] 부가가치세법 상의 용어로 세금계산서에는 공급가액과 부가가치세액이 구분되어 기재되어 있으며, 이 둘을 합쳐 공급대가라고 한다.
[4] 부가가치세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