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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혹박 Apr 11. 2021

3장. 뉴질랜드에 드디어 옴

꿈 아니다.

 해외 이삿짐을 보내면서 출국하기    동안 한국에서 머물 때의 짐과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이삿짐이 도착하기 전에 필요한 짐을 짐을 따로 구분해야 했다아이 둘의 짐까지 있어서 우리는 흔히 이민가방이라고 부르는  캐리어  개를  채웠다거기에 카시트  개까지출국 며칠  친정 식구와는 미리 작별 인사를 마쳤다공항엔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두었다아주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헤어지는 슬픔보다는 비장한 각오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공항에서 엄마 얼굴을 본다면 울지 않을  없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출국을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엔 시가 식구들이 배웅해 주셨다차에 실어야 했던 짐이 많아서 가족  명과는 집에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공항에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는데 나는 기분이 얼떨떨하니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아 내 일 같지가 않았는데아들을 멀리 떠나보내셔야 하는 시어머니께서 울기 시작하셨다. 엄마의 배웅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나는 울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평소 시어머니와 살갑지 않았던 나였지만 자식을 떠나보내며 우는 어미의 눈물을 보며 따라  수밖에 없었다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공항에 이른 아침에 도착하였다아직 영업시간이 안되어  닫은 면세점과  눈에도 작아 보이는 짧은 동선을 가진 공항 안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조차 많지 않아 아무래도 잘못된 곳에 잘못된 시간에 도착한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미 입국 심사대 바로  앞에  있었다인도인처럼 보이는  심사관과 눈이 마주쳤고그는 우리를 향해 웃으며 오라고 손짓했다방문 목적이 항상 여행이었을 때는  순간이 있으나마나  형식적인 절차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장기 체류를 목적으로 그것도  가족이  자리에  있으니 이것저것 질문에 답하는데 식은땀이 났다


 심사관이 우리 여권에 도장을 찍어줬고이제   많은 짐들을 기다려 찾아왔다카시트  개도 빠뜨리지 않고 말이다문제는  개의 캐리어와  개의 카시트  살이   아이그리고  다섯   아이를 어른 둘이 어떻게 이동하느냐였다바깥엔 차량 렌트 업체가 보내  셔틀버스가  있을 터였다남편과 나는 작전을 짰다남편은 커다란 카트  개를 가져와 짐을 모두 싣고나는 둘째 아이를 아기띠로 안았다남편이 카시트  개까지 위태롭게 얹은 카트 하나를 끌고내가   가벼운 카트를 끌고 아이에게  옷을 놓치지 말고  잡으라고 당부를 하고 공항 출구까지 직진했다출입문 밖으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남편은 우선 밖에 셔틀이  있는지 확인하고 오겠다며나와 카트  아이 둘을 남기고 밖으로 사라졌다그때 나는 조금 무서웠다누군가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로 와서 해코지할 것만 같아 두려웠는데 영어가 서툴러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하고 있었다그때 주변엔 공항 벤치에서 누워 자고 있던 외국인들  명과 옷차림이 깔끔하지 못한 외국인들  그리고 공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던 파리 떼들 조차 무서웠다내게 외국인 울렁증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바깥 외국인들이 남편에게 무슨 해코지를 해서 이대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만약 그러한 경우나는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어떻게  아이들을 지킬  있을까하고 나도 모르게 궁리하고 있는데 비에 홀딱 젖은 남편의 모습이 보이자 안도감과 함께 남편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다나도  모르는 낯선 곳이어서 그랬는지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남편이 없는  찰나에도   배로 느껴졌는데 남편의 지금 마음도 나와 같겠거니 하고 생각하니 뭉클했다

 

 남편은 우리를 공항 안에   카트를 가지고 셔틀버스까지  차례 왕복하였고우리 가족은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셔틀버스를 타고 렌터카 회사에 도착했다 사무실 안은 덥고 사람들로 북적댔기 때문에 나와 아이들은 사무실 밖의 렌트되기를 기다리는 차들 일렬로  있는 주차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남편은 30 정도가 걸려 열쇠와 계약서 같은 종이 더미들을 들고 나왔다남편의 영어 실력을 확인할 길이 없었던 나는 남편이 성공적으로 열쇠를 받아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 내심 믿음이 갔고사실  첫날 이후로 영어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남편에게 의지해 버리는 처지가 되었다.  

 

 빌린 차가 터지도록 짐을 욱여넣고 미리 예약해 두었던 호텔로 향했다그곳에서 며칠 지내면서 남편은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차를 판매하고 있는 회사를 오가며뉴질랜드에서의 우리 차를 고르는  신중했다차를 구입하였으니계획대로라면 이제는 ‘ 구하기이다우리는  아이의 학교 근처의 집을 구하려고 애를 썼다그러나 임대매물이 별로 없어    시간만 흘러  아이 학교  등교일만 다가오고 있었다우리는 계획을 변경하여 내가 다니게  학교 주변으로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극적으로 마음에 드는  하나를 발견하였고렌트 의향서를 제출했다한국의 주택 임대차 풍경과는 달리 뉴질랜드에서는 집을 빌리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의향서를 제출하고집주인이 받은 의향서들 중에 마음에 드는 세입자를 골라 임대차 계약이 이루어진다뉴질랜드는 전세 제도가 없어  단위로 임차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집주인은 임차료 지불 능력을 담보해  직업이나 보증인을 고려하여 결정한다뉴질랜드에 아무런 연고가 없던 우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다행히도 우리가  임대차 계약을   있게 되었고 다행히도 비어 있는 집이라서 즉시 입주가 가능했다. 3 가까이 모텔 생활을 하던 우리는 계약서   바로 남편이 하루 종일 가서 벌레 퇴치와 청소를 했고 ( 바람에 나와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6시간을 놀아야 했다), 그다음 날  집에 입주할  있었다아무 살림살이도 없이 짐이라곤 캐리어 4개가 전부였는데 이동할   캐리어들이 그렇게 짐스럽고너무 많이 지고  것이 후회스럽더니   집에   모두를 풀어놓고 보고 있자니 너무도 왜소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집을 구하고 다음 남편의 생일을 맞이하였는데  이삿짐도 도착한다는 희소식과 함께 우리는 신이 나서 미역국도 끓이고, 간소하게나마 생일상을 차리고상이 없어서 거실 한복판에 돗자리를 펴놓고  가족이 둘러앉아 모처럼 웃었다일주일 전만 해도 모텔에서 지내고 있을 때라 둘째 아이 생일에 미역국 조차 끓여줄  없어서 동네 한국음식점에 가서 미역국을 주문하였는데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맛없던  미역국을 먹는 모습을 보는데  신세가우리 아이들의 신세가 처량하여 눈물이 복받쳐 올랐다. 아이들 앞이라 슬픔을 표시할 수도 없었고, 호텔방 하나에서 같이 지내고 있었으니   중에도 목놓아  수도 없었다. 깜깜한 방에 누워 '이거 꿈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나의 해외살이 중 가장 슬픈 날이었다. 그랬기에 남편의 생일날 우리 집에서 생일상을 차릴  있는 기쁨은 이루 말할  없었고그날  아이들이 있지 않는 다른  방에서 실컷   있었다거실에 앉아 아이들과 주전부리를 하고 있는데백인의 남성이 거실 유리문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이사  첫날 만났던 옆집 아저씨였다새로 이사 왔다고 하니 반갑다고 인사했었는데 오늘은 우리  거실 안을 들여다보더니 식탁도 없는  같은데 식탁 빌려줄까하고 예상치도 못한 호의를 받았다우리는 일주일  우리 식탁이 도착할 때까지 그의 식탁에서 편하게 식사를   있었다그때까지 가득  있던 외국인에 대한 적의가 조금은 녹는 듯했다. ‘어쩌면?’이라는 기대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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